목록논문 에세이 번역 책 (114)
정치는 어려워
‘인터넷 마녀사냥’이라는 말이 있다. 마녀사냥은 14~17세기에 유럽에서 이단자를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하던 일을 가리키며,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18세기 이후 점차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20세기에도 마녀사냥은 ‘반공주의’의 형태로 계속됐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 마녀사냥들의 공통된 특징은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삼아, 그러나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특정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부족한 확실성과 넘치는 확신의 모순적 결합이 마녀사냥의 핵심이다. 근대의 핵심어는 확신이 아니라 의심이다. 근대적 사유의 시작을 알린 철학자 데카르트는 확실성의 토대를 얻기 위해 심지어 자신의 존재까지 의심했다. 계몽주의 시대의 정점에 자리한 철학자 칸트는 모든 것을 비판의 대..
11일에 제19대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가 실시된다. 입법부인 국회는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매우 중요한 권력 기관이다. 견제가 없으면 행정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고, 그 권력 앞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무력해진다. 국민이 국회의 구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국회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행정부의 권력을 견제하고,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물론 국회 역시 하나의 권력 기관으로서 견제되어야 한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때문이다. 국회를 다른 권력 기관을 통해 수평적으로 견제할 수도 있지만, 국민이 직접 정당과 선거에 참여해 수직적으로 견제할 수도 있다. 국회의원 선거는 행정 권력을 수평적으로 견제할 입법 권력을 새롭게 구성하는 ..
2012학년도 1학기가 시작되었다. 개강과 함께 확정해야 할 것은 수업시간표만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에서는 등록금 인상률을 개강 후에 학생자치기구와 협의하여 확정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올해에는 인하율을 확정하게 될 것 같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오늘날 대학교육은 거의 의무교육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재정적 부담은 그 동안 학생측이 지나치게 많이 져왔다. 몇 해 전부터 이 사실을 지적하며 그 부담을 사회적으로 나누어 질 것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른바 ‘반값등록금’ 운동이다. 한번 높아진 기대는, 게다가 그것이 실현된 사례를 목격한 이상, 앞으로 쉽게 낮아지지 않을 것 같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대학생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일시적으로 등록금 인하 압력을 대학에 가했다. 그리고..
1. 프라이버시와 평등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조차 안다”는 말이 있다. 이웃과 얼마나 친한지를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옛날 농경사회에 나와 너의 구분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신혼 첫날밤, 신랑과 신부가 있는 방 문의 창호지에 침을 발라 구멍을 내고 엿보는 풍경 또한 과거의 너-나 없었음의 표현이다. 옛날 유럽의 왕실에서는 왕과 왕비가 신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합방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과거에 마치 프라이버시가 전혀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사실 ‘프라이버시’는 늘 있었다. 오늘날 프라이버시로 생각하는 것을 옛날에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을 뿐이지, 프라이버시는 언제나 있었고 그것은 언제나 침해되지 않아야 할 부분으로 간주되었다. 과거에도 프라이버시는 침해되었다. 신..
독일 유학중의 일이다. 장시간 논문작성을 위해 앉아 있다 보니 건강이 점점 안 좋아졌다. 척추 주변의 신경이 눌렸는지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며 차라도 마시면서 ‘신경’을 누그러뜨릴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 결국 모든 게 신경성이란 말인가. 주의를 가끔씩이라도 분산시킬 활동이 필요했다. 유학 초기엔 그래도 이래저래 할 일들이 많았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도 많았고 수업에도 들어가야 했으며 돈도 벌어야 했으니, 머리도 바빴지만 몸도 무척이나 바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학위논문 작성을 시작하면서 인간관계도 단순해졌고,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수업에도 들어가지 않으니, 움직일 일도 점차 없어졌다. 그저 책상 앞에만 앉아 있게 되었다. 노래가 하고 싶어졌다. 교회 ..
1.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헷갈리는 일이 많다. 도대체 속을 모르겠다. 무슨 생각들을 하며 사는 건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다. 북한이라는 이상야릇한 곳에 사는 사람들 말이다. 501마리의 소가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건너가는가 싶더니, 소들의 뱃속에 무슨 몹쓸 것을 집어넣었다며 시비다. 김정일이 정주영을 만나 사진을 찍었는데, 어른이라고 가운데 모시고 찍었다고 한다. 오랫만에 보는 흐뭇한 광경이다. 그 덕분인지 금강산에 가는 유람선이 드디어 11월 18일 첫 출항을 하게 되었다. 서먹서먹하던 남북한이 이제 좀 사이가 좋아지나 했더니, 간첩선이 출몰했다는 소식이 또 들려온다. 북한 땅 어딘가에 거대한 지하 핵시설이 있다는 미국 측의 주장에 한반도에 다시금 긴장이 ..
사상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관용에 대한 생각들 1. 내가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결코 히딩크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2002년 가을, (이곳 독일에서) 이웃나라인 네덜란드에 여행을 간다고 얘기했을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매번 들은 얘기가 “너, 히딩크 고향에 가니?”라는 질문이었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한참동안은 “히딩크 고향은 가봤니?” “기왕에 간 거 히딩크 고향에도 좀 다녀오지 그랬니” 하는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하필 시기가 월드컵의 감동이 채 사라지지 않은, 그래서 히딩크라는 사람의 이름이 아직 우리 머리 속을 맴돌던 때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네덜란드와 히딩크를 연결시키는 것이 단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 것 같지만은 않다. 얼마 전에 한국어 수업 시간에(나는 베를린 세..
1. 분단과 통일의 도시 베를린에 내가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99년 3월 1일 늦은 밤이었다. 3년도 더 되는 시간이 흐른 지금,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해서만 당시의 느낌을 되살릴 수 있지만,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사건 하나는, 그 즈음 한국 유학생 한 명이 유럽 어느 도시에서 여행 도중 북한 사람들에 의해 납치 당한 일이었다. 결혼과 함께 시작한 유학생활이니 만큼 신혼을 핑계삼아 없는 멋도 부려볼 수 있었겠지만(모든 새신랑이 적어도 한 동안은 말끔하지 않던가), 행여 돈 많은 집 자식으로 보일까봐 2000년을 바라보는 당시에 80년대 말 패션을 하고 다녔던 것이 기억난다. 북한의 실질적인 위협 앞에서 나의 어설픈 관념적 친북(親北)은 그렇게 첫발부터 맥을 못 추고 말았다. 2..
폭력적인 문화 문화가 폭력적일 수 있을까? 한때 ‘문화’시민은 좌측통행을 한다고 지하철역 계단에 써 붙여 두던 것을 생각하면, 문화는 뭔가 질서정연한 것이어서, 문화가 폭력적일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오늘날의 대중‘문화’ 또는 시위‘문화’가 폭력적이라고 하는 말들을 생각하면, 식인풍습이나 여성할례가 폭력적이지만 나름의 문화인 것처럼, 폭력적인 것도 얼마든지 문화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문화가 폭력적이라는 지적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모든 문화가 어느 정도 폭력적이어서 우리가 폭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우리 사회가 폭력을 상대적으로 더 세련되게 처리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2010. 보수는어떻게지배하는가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앨버트 O. 허시먼 (웅진지식하우스, 2010년) 상세보기 알버트 오토 허쉬만(Albert Otto Hirschman)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1915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서 공부했고, 스페인, 프랑스, 북아프리카, 이탈리아에서 직접 전쟁을 치렀으며, 남미에서 경제고문관으로 일했고, 미국의 유명한 대학들에서 가르쳤다. 그의 이런 독특한 이력이 반영되기라도 한 듯이 그의 학문은 여러 분과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여러 나라와 지역을 아우르며, 추상적 이론과 구체적 현실의 복잡한 관계를 매우 절묘하게 드러낸다. 그를 유명한 개발경제학자로 만든 다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