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논문 에세이 번역 책 (117)
정치는 어려워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사회에서는 사람의 타고난 신체 조건도 ‘자산’으로 평가된다. 딱히 출중한 외모가 필요 없는 분야에서도 그 조건이 좋으면 환영받고 그렇지 않으면 능력을 보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자신의 외모에 다양한 수준의 투자를 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정신적ㆍ신체적 상처가 남기도 한다. 타고난 외모를, 그저 단정히 하는 정도를 넘어, 바꾸려고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뿐만 아니라, 정작 필요한 능력을 계발하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할 시기에 대학생들이 그런 일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자체가 개인과 사회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자아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타인의 시선과 반응, 눈빛과 표정을 통해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성범죄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범죄자에게 전자발찌도 채웠고 범죄자의 신상정보도 공개했지만, 재범을 원천적으로 막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는 ‘화학적 거세’라도 해보자고 한다. 병적인 성욕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범죄의 원인일까? 성범죄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성범죄에 대한 사전의 공포와 범죄자에 대한 사후의 증오만 커질 뿐, 범죄를 예방할 수도 없고 범죄자를 효과적으로 처벌할 수도 없다. 모든 범죄는 사회적 범죄이다. 성범죄의 발생, 그 빈도의 증가와 형태 변화도 모두 사회적 현상이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흔히 여성의 신체 노출이나 음란물과 같은 성적 이미지의 범람을 원인으로 지적하곤 한다. 그래서 그 범람을 막으면 문제를..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과 함께 시작된 유럽의 근대 국민국가 체계는 19세기 말에 한반도가 있는 동아시아로까지 확장되었다. 그것이 식민주의의 형태로 확장되어 안타깝게도 조선은 근대 국민국가 체계의 정당한 일원이 될 수 없었고, 탈식민화 이후에는 미-소 양극 체계 속에 남과 북으로 각각 나뉘어 속하게 됨으로써 통일된 국민국가를 이룰 수 없었다. ‘통일국가’ 건설과 근대적 ‘주권국가’ 건설은 지난 20세기의 시대 상황이 우리에게 부과한 과제였지만, 또한 그 시대 상황 속에서 우리가 동시에 이룰 수 없었던 모순적인 과제였다. ‘주권국가’ 건설을 우선시 하여 ‘통일국가’ 건설의 과제 해결을 뒤로 미룬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이 국민국가 체계 속의 정당한 구성원임을, 즉 주권국가임을 최소한 수사적으로(rhetor..
‘인터넷 마녀사냥’이라는 말이 있다. 마녀사냥은 14~17세기에 유럽에서 이단자를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하던 일을 가리키며,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18세기 이후 점차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20세기에도 마녀사냥은 ‘반공주의’의 형태로 계속됐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 마녀사냥들의 공통된 특징은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삼아, 그러나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특정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부족한 확실성과 넘치는 확신의 모순적 결합이 마녀사냥의 핵심이다. 근대의 핵심어는 확신이 아니라 의심이다. 근대적 사유의 시작을 알린 철학자 데카르트는 확실성의 토대를 얻기 위해 심지어 자신의 존재까지 의심했다. 계몽주의 시대의 정점에 자리한 철학자 칸트는 모든 것을 비판의 대..
11일에 제19대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가 실시된다. 입법부인 국회는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매우 중요한 권력 기관이다. 견제가 없으면 행정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고, 그 권력 앞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무력해진다. 국민이 국회의 구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국회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행정부의 권력을 견제하고,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물론 국회 역시 하나의 권력 기관으로서 견제되어야 한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때문이다. 국회를 다른 권력 기관을 통해 수평적으로 견제할 수도 있지만, 국민이 직접 정당과 선거에 참여해 수직적으로 견제할 수도 있다. 국회의원 선거는 행정 권력을 수평적으로 견제할 입법 권력을 새롭게 구성하는 ..
2012학년도 1학기가 시작되었다. 개강과 함께 확정해야 할 것은 수업시간표만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에서는 등록금 인상률을 개강 후에 학생자치기구와 협의하여 확정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올해에는 인하율을 확정하게 될 것 같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오늘날 대학교육은 거의 의무교육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재정적 부담은 그 동안 학생측이 지나치게 많이 져왔다. 몇 해 전부터 이 사실을 지적하며 그 부담을 사회적으로 나누어 질 것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른바 ‘반값등록금’ 운동이다. 한번 높아진 기대는, 게다가 그것이 실현된 사례를 목격한 이상, 앞으로 쉽게 낮아지지 않을 것 같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대학생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일시적으로 등록금 인하 압력을 대학에 가했다. 그리고..
1. 프라이버시와 평등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조차 안다”는 말이 있다. 이웃과 얼마나 친한지를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옛날 농경사회에 나와 너의 구분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신혼 첫날밤, 신랑과 신부가 있는 방 문의 창호지에 침을 발라 구멍을 내고 엿보는 풍경 또한 과거의 너-나 없었음의 표현이다. 옛날 유럽의 왕실에서는 왕과 왕비가 신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합방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과거에 마치 프라이버시가 전혀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사실 ‘프라이버시’는 늘 있었다. 오늘날 프라이버시로 생각하는 것을 옛날에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을 뿐이지, 프라이버시는 언제나 있었고 그것은 언제나 침해되지 않아야 할 부분으로 간주되었다. 과거에도 프라이버시는 침해되었다. 신..
독일 유학중의 일이다. 장시간 논문작성을 위해 앉아 있다 보니 건강이 점점 안 좋아졌다. 척추 주변의 신경이 눌렸는지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며 차라도 마시면서 ‘신경’을 누그러뜨릴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 결국 모든 게 신경성이란 말인가. 주의를 가끔씩이라도 분산시킬 활동이 필요했다. 유학 초기엔 그래도 이래저래 할 일들이 많았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도 많았고 수업에도 들어가야 했으며 돈도 벌어야 했으니, 머리도 바빴지만 몸도 무척이나 바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학위논문 작성을 시작하면서 인간관계도 단순해졌고,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수업에도 들어가지 않으니, 움직일 일도 점차 없어졌다. 그저 책상 앞에만 앉아 있게 되었다. 노래가 하고 싶어졌다. 교회 ..
1.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헷갈리는 일이 많다. 도대체 속을 모르겠다. 무슨 생각들을 하며 사는 건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다. 북한이라는 이상야릇한 곳에 사는 사람들 말이다. 501마리의 소가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건너가는가 싶더니, 소들의 뱃속에 무슨 몹쓸 것을 집어넣었다며 시비다. 김정일이 정주영을 만나 사진을 찍었는데, 어른이라고 가운데 모시고 찍었다고 한다. 오랫만에 보는 흐뭇한 광경이다. 그 덕분인지 금강산에 가는 유람선이 드디어 11월 18일 첫 출항을 하게 되었다. 서먹서먹하던 남북한이 이제 좀 사이가 좋아지나 했더니, 간첩선이 출몰했다는 소식이 또 들려온다. 북한 땅 어딘가에 거대한 지하 핵시설이 있다는 미국 측의 주장에 한반도에 다시금 긴장이 ..
사상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관용에 대한 생각들 1. 내가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결코 히딩크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2002년 가을, (이곳 독일에서) 이웃나라인 네덜란드에 여행을 간다고 얘기했을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매번 들은 얘기가 “너, 히딩크 고향에 가니?”라는 질문이었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한참동안은 “히딩크 고향은 가봤니?” “기왕에 간 거 히딩크 고향에도 좀 다녀오지 그랬니” 하는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하필 시기가 월드컵의 감동이 채 사라지지 않은, 그래서 히딩크라는 사람의 이름이 아직 우리 머리 속을 맴돌던 때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네덜란드와 히딩크를 연결시키는 것이 단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 것 같지만은 않다. 얼마 전에 한국어 수업 시간에(나는 베를린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