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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터넷 마녀사냥, 근본적 원인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공진성 2012. 5. 29. 08:06

 

‘인터넷 마녀사냥’이라는 말이 있다. 마녀사냥은 14~17세기에 유럽에서 이단자를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하던 일을 가리키며,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18세기 이후 점차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20세기에도 마녀사냥은 ‘반공주의’의 형태로 계속됐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 마녀사냥들의 공통된 특징은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삼아, 그러나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특정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부족한 확실성과 넘치는 확신의 모순적 결합이 마녀사냥의 핵심이다.

 

근대의 핵심어는 확신이 아니라 의심이다. 근대적 사유의 시작을 알린 철학자 데카르트는 확실성의 토대를 얻기 위해 심지어 자신의 존재까지 의심했다. 계몽주의 시대의 정점에 자리한 철학자 칸트는 모든 것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전근대인들이 부족한 확실성을 부당하게 확신으로 채웠다면, 근대인들은 모든 신념의 확실성을 철저하게 의심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 세계는 바로 이런 회의(懷疑)의 원칙 위에 세워져 있다.

 

인터넷은 근대인의 삶과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연결해주는 인터넷은 우리의 공간 감각과 시간 감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지금껏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양의 정보를 쉽게 검색하고 유통시킬 수 있게 되었다.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이런 인터넷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인터넷에 의해 매개되는 이런 세계에서 별 영양가 없는 정보들이 지식을 참칭하고, 선착순 놀이하며 다는 댓글들이 진지한 고민을 거친 의견들을 양적으로 압도하고 있다. 이런 세태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학교는 학생들로 하여금 짧은 시간 동안에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외우도록 부추기며, 또 그 성과를 제한된 시간 동안에 많은 문제의 정답을 골라내는 능력으로 측정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의심은 결코 미덕이 아니라 오히려 우유부단함이다.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도 확신 있게 정답을 고르고 의견 아닌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칭찬받아 마땅한 능력이다.

 

인터넷 마녀사냥은 부족한 확실성 속에서도 서둘러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우리 사회가 낳은 병리현상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마녀사냥은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인터넷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인터넷 매체의 특징과 영향을 잘 이해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설익은 정보와 무르익은 지식을 구별하는 것이고, 수많은 오답들 속에서 그저 신속하게 정답을 골라내는 능력 대신에 그것이 왜 정답인지를 차분하게 논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대학 교육부터 바뀌어야 중고등학교 교육이 바뀌고 또 사회가 바뀐다. 네티즌들을 욕하는 것은 또 다른 마녀사냥에 불과하다. 근본적 원인을 직시해야 해결책도 보인다.

 

*이 글은 <조대신문> 2012년 5월 29일자 사설에 실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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