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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성의 유익을 포기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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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성의 유익을 포기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공진성 2012. 7. 14. 22:41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과 함께 시작된 유럽의 근대 국민국가 체계는 19세기 말에 한반도가 있는 동아시아로까지 확장되었다. 그것이 식민주의의 형태로 확장되어 안타깝게도 조선은 근대 국민국가 체계의 정당한 일원이 될 수 없었고, 탈식민화 이후에는 미-소 양극 체계 속에 남과 북으로 각각 나뉘어 속하게 됨으로써 통일된 국민국가를 이룰 수 없었다. ‘통일국가’ 건설과 근대적 ‘주권국가’ 건설은 지난 20세기의 시대 상황이 우리에게 부과한 과제였지만, 또한 그 시대 상황 속에서 우리가 동시에 이룰 수 없었던 모순적인 과제였다.

 

‘주권국가’ 건설을 우선시 하여 ‘통일국가’ 건설의 과제 해결을 뒤로 미룬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이 국민국가 체계 속의 정당한 구성원임을, 즉 주권국가임을 최소한 수사적으로(rhetorically) 부정해왔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상대방을 정당한 존재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국가 건설의 과제를 계속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미-소 양극 체계가 무너지고 1991년에 남과 북이 국제연합에 동시에 가입했지만, 상대방의 ‘국가성’(stateness)과 ‘주권’(sovereignty)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적 수사와 행동은 지속되었다.

 

근대 국민국가 체계의 발전 과정은 대칭성(symmetry)의 확장 과정으로 묘사될 수 있다. 유럽에서 국민국가 체계가 발전한 과정은 먼저 그 체계를 구성하는 국가들의 지위를 서로 동등한 것으로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큰 국가들은 작은 국가들의 주권을 인정해줌으로써 그 국가들을 국제법의 틀 속에 묶어둘 수 있었고, 작은 국가들은 그 공통의 법을 받아들임으로써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각 국가의 법적ㆍ도덕적 지위를 인정하는 이 체계는 각 국가의 행위를 전쟁시에나 평화시에나 예측 가능하게 만들었다. 동일한 정치적 합리성의 인정은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가능한 것으로 만들었고, 또한 전쟁과 평화를 일정한 통제 아래 둘 수 있게 만들었다. 미-소 양극 체계도 초반의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대칭적 균형 상태로 발전했고, 그 속에서 최소한 ‘큰 전쟁’은 통제될 수 있었다.

 

20세기 후반에 양극 체계는 무너졌지만, 지구적 차원의 국민국가 체계는 등장하지 않았다. 양극 체계 속에서 얼어붙어 있던, 근대적 주권국가를 수립하지 못한, 옛 제국의 주변부에 속한 국가들은 어설픈 국가성마저 상실하고 무너졌고, 그곳에서는 이른바 ‘새로운 전쟁’(the new wars)이 시작도 끝도 없이 타오르고 있다. 이 ‘새로운 전쟁’에서는 행위자들간의 법적ㆍ도덕적 지위의 비대칭성(asymmetry)이 전쟁의 예측가능성과 통제가능성을 약화하고 있으며, 전쟁의 결과를 더욱 끔찍하게 만들고 있다. 옛 제국의 중심부에 속한 국가들은 이른바 ‘인도적 군사적 개입’(humanitarian military intervention)이라는 형태로 이 전쟁에 뛰어들어 불을 꺼보려고 하지만, 행위자들간의 법적ㆍ도덕적 지위의 비대칭성은 쉽게 전쟁을 과거와 같이 ‘종전협정’으로 끝맺을 수 없게 만든다.

 

1991년의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이후로 남한 정부의 대북 정책은 공식적으로 북한을 국민국가 체계의 정상적인 일원으로서 인정하고 그런 대칭적 지위를 북한에 부여함으로써 북한을 예측가능한 존재로 만들고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평화를 통제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연방제 통일 방안의 천명과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을 대칭적 지위를 지닌 존재로 인정하는 대북 정책의 구체적 표현이었다. 북한의 일관된 대외정책 역시 하나의 주권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걸림돌은 사실상 북한의 핵무기(개발 시도)도 아니었고 북한 체제가 표방하는 이념도 아니었다. 그저 남한과 미국의 정치적 결단의 부재였고, 그 결단을 가로막는 남한과 미국의 국내 선거정치였다.

 

미국의 부시 정부는 새로운 전쟁의 발발 지역에서 관찰되는 ‘실패한 국가들’(failed states)과 북한을 부당하게 동일시했다. 그리고 그 지역들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도덕적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행위자들간의 법적ㆍ도덕적 지위의 비대칭성을 만들어냈고, 결과적으로 분쟁의 정치적 해결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 부당할 뿐만 아니라 무책임한 북한 인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북한의 법적ㆍ도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북한에 ‘실패한 국가’ 혹은 ‘곧 실패할 국가’의 이미지를 덮어씌우면서 북한에게서 정치적 합리성을 박탈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을 예측불가능한 존재로,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평화를 통제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는 비교적 튼튼하게 자리 잡은 동아시아의 국민국가 체계가 어떤 유익을 가져다주고 있는지를 모르고서 (또는 알면서도 선거정치적 목적을 위해) 북한의 국가성을 약화하려는 어리석은 대북 정책을 그 동안 추진해왔다. 우리는 오늘날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 아라비아 반도와 발칸 반도에서 일어난,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국가붕괴전쟁’과 그 결과의 비참함을 목격하고 있다. 북한의 국가성이 사라지는 것이 북한 주민들에게나 남한 국민들에게 무엇을 의미하게 될지를 이명박 정부와 다음 정부는 ‘책임윤리’(Verantwortungsethik)의 관점에서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2012년 6월 7일 우석대학교에서 개최된 학술회의 <2000년대 남북관계 평가와 대북·외교정책 과제>에서 토론문으로 발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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