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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제21대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코로나19의 유행 탓에 선거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난리들이다. 선거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아무래도 불리한 쪽은 도전하는 사람이다. 일찍부터 정권심판을 이번 선거의 구호로 내걸었던 야당은 예상치 못한 감염병 사태에 무척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이다. 나라 전체가 어려운 때에 정부 비판으로만 일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위기를 경고하는 것도 평화로울 때에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다. 정부는 그래도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야당에게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상황을 주도할 힘이 없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정치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개념..
상식을 상식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집단이 있다. 바로 대학생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노동력을 제공하고 급여를 받는 노동자가 될 것임이 지극히 당연한데도 초ㆍ중등교육에서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구체적 지식과 기술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성인이 되어 이런저런 형태로 노동을 할 때 자기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다. 명색이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 그런 지식과 기술을 뒤늦게 가르치는 것도 어색하지만, 장벽은 또 있다. 여전히 많은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이미 노동자일 뿐만 아니라 장차 노동자가 될 것임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노동(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중에 행여 경영자가 되었을 때 노동(자)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상식의 확인과 회복을..
2014년 4월 16일은 최소한 한국인에게 잊히지 않을 중요한 날이 될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 날을 어떤 날로서 기억해야 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아직은 사태를 더 수습해야 하고, 수많은 무고한 죽음을 더 애도해야 한다. 이 날의 의미는, 잊지만 않는다면, 천천히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드러난 부실한 안전 조치들은 지금 당장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사법적ㆍ정치적 책임은 나중에 물어도 되지만, 안전 조치는 지금 당장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당국에서 검사할 때 취한다고 하면 똑같은 사태가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그 동안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경쟁에서 어떻게든 이기려고 온갖 위험을 무릅써왔고, ..
무엇이 아님을 뜻하는 한자 ‘비(非)’가 그 앞에 붙은 단어들은, ‘무엇’이 아니기 때문에 그 속성이 아직 모호한데도, 이미 부정적인 어감을 가지고 있다. 권력은 그 ‘무엇’을 특권화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비-무엇’을,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이미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 기피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무엇’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자동적으로 ‘무엇’의 특권을 정당화한다. ‘무엇’을 추구하는 우리의 욕망은 권력의 효과이자 동시에 권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이 욕망의 정체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저 ‘무엇’을 추구할 때, 우리는 ‘비-무엇’을 배제하여 ‘무엇’을 특권화하는 권력의 공범이 된다. ‘비-정규직’이라는 표현은 ‘정규직’을 특권화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언론을 통해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루어진 약속들이 지켜질 수 있을지를 의심하는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말로 유명한 박근혜 대통령이니만큼 일단은 의심 없이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정말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일까? 당파적 공세를 위해, 또는 그저 선거에서 생색내기용으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지키지 말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정치적 약속이 그렇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바꾸는 이유이다. 그 이유에 따라 국민의 신뢰가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신뢰가 사라지는 때는 말을 바꾸는 때가 아니라, 말을 바꾸는 이유가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서임이 드러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