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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의 언어 능력에 주목했다. 다른 동물도 소리를 내 소통한다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가 주목한 것은 인간이 말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가린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이 단순히 생존만 하지 않고 좋은 삶도 추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언어 능력 덕분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따질 수 없다면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능력이 인간의 또 다른 능력, 즉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능력과 결합했을 때, 최선의 경우 훌륭한 정치공동체가 탄생하겠지만, 최악의 경우 매우 독선적인 집단들의 충돌이 끝없이 이어질 수 있음을 아마도 철학자는 알았을 것이다.그 가능성이 최악의 방식으로 17세기 유럽에서 실제 표출되었다. 누구의 신앙고백이 옳..
현재 독일인을 100명으로 축소하면 그 가운데 25명이, 베를린이나 함부르크 같은 대도시에서는 무려 40명 이상이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문화적 다양성이 증가하면 사회통합이 어렵지 않을까? 4년 전 시작된 광주와 함부르크의 청년 교류를 통해 나는 한편으로 이 다양성의 증가를, 다른 한편으로 사회통합의 가능성을 몸소 확인하고 있다.2022년 처음 함부르크 청년 16명이 광주를 방문했다. 이들은 반츠벡 구 출신이었는데, 그곳 청소년의집 관장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 청주 청소년들과 교류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이제 성인이 되어 스스로 새로운 교류를 조직하게 되었다. 반츠벡 구와 함부르크 시는 이들이 광주를 방문하고, 또 광주에서 만난 친구들을 함부르크로 초대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올여름 우리를 초대..
12.3 계엄 사태는 정치학을 가르치는 나에게 두 가지 의미에서 충격적이었다. 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양호한 편에 속하던 한국에서 군대를 동원한 친위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우선 충격적이었고, 그런 무모한 시도를 정당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또한 충격적이었다. 12.3 계엄 사태는 나에게 정치학을 연구하는 일도, 가르치는 일도 대충 해서는 안 되겠다는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그래서 조금은 비장한 마음으로 지난 1학기 ‘시민참여와 민주정치’ 수업을 진행했다. 전반부에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황을 살펴보고 그 원인을 진단하는 강의를 했고, 후반부에는 시민의 참여에서 민주주의 강화의 방법을 찾는 프로젝트를 학생들이 진행했다. 때마침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서 우리는 선거에..
‘87년 체제’가 문제라고들 한다. 그래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걸까? 그래서 한번 관련 책을 검색해 봤다. 마침 최근(4월 25일)에 나온 책이 한 권 있다. ‘87체제’를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 함께 쓴 저자의 이름들이 어마어마하다. 김기현, 나경원, 도태우, 복거일, 신평, 윤상현, 전한길, 조정훈, 심지어 윤석열까지. 차마 책을 구입할 수 없어서, 출판사가 제공한 소개 글만 살펴봤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지금의 제6공화정에서 제7공화정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87체제’라는 말을 일단 헌정 체제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친중국, 친북한의 고식적 노선을 벗어나 세계를 향하여 문을 활짝 열고 그와 동시에 내부적으로..
최근 몇 달 동안 벌어진 일들은 8년 전의 상황을 훨씬 더 나쁜 형태로 반복하고 있다. 8년 전에 최순실 게이트가 있었다면, 지금은 김건희(명태균) 게이트와 12.3 계엄 사태가 있고, 8년 전에 그 원인으로 ‘제왕적 대통령제’가 지목되었다면,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것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8년 전 광장에 분노한 대중이 있었다면, 지금 광장에는 각기 다른 이유로 분노한 대중들이 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문제의 그 구조를 흔히 ‘87년 체제’라고 부른다. 당연히 반론이 나온다. 헌법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냐는 것이다. 헌정 질서를 수호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 이상한 짓을 한 것이 문제인데, 왜 헌법 탓을 하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백번 ..
3년 넘게 끌어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곧 멈출 듯하다. 무관한 제3자의 입장에서는 종전(終戰)이 더 좋겠지만, 이대로 영토를 빼앗긴 채 끝낼 수 없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휴전이 차선일 것이다. 내심 만족스럽지만 그런 내색을 할 수 없는 러시아 입장에서도 ‘휴전’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러시아는 이 전쟁을 ‘특수군사작전’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휴전이 아니라 ‘작전 중지’일지도 모르겠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러시아 국가의 침략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쟁’ 표현을 사용한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사는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며 ‘전쟁’ 표현을 극구 삼갔다. 이는 전쟁이 국가간의 군사적 행위이며 이 행위를 규제하는 국제법이 침략을..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흔히 뱀은 인간을 타락시킨 원흉으로 여겨지곤 한다. 인간의 범죄와 타락을 결과로 놓고 그 원인을 간교한 뱀의 유혹에서 찾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징적 사건을 기록해 놓은 「창세기」를 스피노자와 함께 잘 들여다보면 다른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창세기」 2장은 “사람과 그 아내가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이어지는 3장에는 사람(아담)과 그 아내(하와)가 금지된 열매를 먹고 눈이 열려서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저녁에 하느님이 사람을 찾았을 때, 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된 사람을 동산에서 내쫓으며 하느님은..
“신호등이 꺼졌다.” 최근 며칠간 독일 관련 뉴스에 등장한 표현이다. ‘신호등 연정’은 독일의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사회민주당, 녹색당, 자유민주당의 상징 색이 각각 빨강, 초록, 노랑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 사회민주당 소속의 숄츠 총리가 연립정부의 한 축을 구성하던 자유민주당 소속의 린트너 재무장관을 해임했다. 그가 연립정부 구성 당시의 합의에 어긋나게 행동한다는 것이 그 사유였다. 이로써 연립정부가 무너졌다.숄츠 총리는 애초에 내년 예산안 처리를 마치고 성탄절 연휴를 보내고 나서 내년 초에나 자신에 대한 의회의 신임 여부를 물을 계획이었다. 그때에도 의회의 다수가 자신을 여전히 지지하면, 비록 ‘신호등 연정’은 깨졌지만, 자신이 정부를 계속 운영해 갈 생각이었고, 만약 의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
지난달 15일부터 24일까지 광주와 함부르크의 청년들이 교류하는 행사가 치러졌다. 2년 전 처음 시작된 두 도시의 청년 교류가 독일 청년들의 이번 광주 방문을 통해 3년째 이어지게 됐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지게 될지 모르는 이 교류의 시작은 이렇다. 2022년 4월쯤이었다. 한때 우리 대학에서 독일어를 가르친 적이 있는 함부르크 출신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안톤 숄츠 씨가 나에게 전화를 해 함부르크의 청년들이 교류 파트너를 찾고 있는데 혹시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중간에서 연결하는 역할을 맡겠노라고 대답했고, 그해 9월 처음 함부르크에서 청년 16명이 광주를 방문해 우리 대학 학생들과 10일간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이 교류는 함부르크의 어느 청소년의 집에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함께..
내가 마지막으로 헌혈을 한 것은 1998년이다. 한때는 나도 기꺼이 헌혈에 동참하는, 피 뽑는 것 정도는 무서워하지 않는 용감한 청년이었다. 문제는 1999년 독일로 유학간 뒤에 생겼다. 영국발 광우병 사태가 유럽 전체를 휩쓸던 2000년, 유럽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유통되던 쇠고기를 전량 수거해 폐기해야 하느냐 마느냐 논쟁이 일었다. 쇠고기 소비가 급감하고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염려가 급증했다. 외국인 유학생들도 마찬가지로 건강을 염려했다.어느날 선배와 저녁에 맥주를 마시러 갔다. 안주로 소시지를 시키자 선배가 먹지 않았다. 쇠고기가 섞여 있을지 모르는 소시지조차 먹기 불안했던 것이다. 당분간 쇠고기는 물론이고 육류 자체를 되도록 먹지 않으려던 선배에게 농담으로 말했다. “이 소시지 먹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