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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신호등이 꺼졌다.” 최근 며칠간 독일 관련 뉴스에 등장한 표현이다. ‘신호등 연정’은 독일의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사회민주당, 녹색당, 자유민주당의 상징 색이 각각 빨강, 초록, 노랑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 사회민주당 소속의 숄츠 총리가 연립정부의 한 축을 구성하던 자유민주당 소속의 린트너 재무장관을 해임했다. 그가 연립정부 구성 당시의 합의에 어긋나게 행동한다는 것이 그 사유였다. 이로써 연립정부가 무너졌다.숄츠 총리는 애초에 내년 예산안 처리를 마치고 성탄절 연휴를 보내고 나서 내년 초에나 자신에 대한 의회의 신임 여부를 물을 계획이었다. 그때에도 의회의 다수가 자신을 여전히 지지하면, 비록 ‘신호등 연정’은 깨졌지만, 자신이 정부를 계속 운영해 갈 생각이었고, 만약 의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

지난달 15일부터 24일까지 광주와 함부르크의 청년들이 교류하는 행사가 치러졌다. 2년 전 처음 시작된 두 도시의 청년 교류가 독일 청년들의 이번 광주 방문을 통해 3년째 이어지게 됐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지게 될지 모르는 이 교류의 시작은 이렇다. 2022년 4월쯤이었다. 한때 우리 대학에서 독일어를 가르친 적이 있는 함부르크 출신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안톤 숄츠 씨가 나에게 전화를 해 함부르크의 청년들이 교류 파트너를 찾고 있는데 혹시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중간에서 연결하는 역할을 맡겠노라고 대답했고, 그해 9월 처음 함부르크에서 청년 16명이 광주를 방문해 우리 대학 학생들과 10일간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이 교류는 함부르크의 어느 청소년의 집에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함께..

내가 마지막으로 헌혈을 한 것은 1998년이다. 한때는 나도 기꺼이 헌혈에 동참하는, 피 뽑는 것 정도는 무서워하지 않는 용감한 청년이었다. 문제는 1999년 독일로 유학간 뒤에 생겼다. 영국발 광우병 사태가 유럽 전체를 휩쓸던 2000년, 유럽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유통되던 쇠고기를 전량 수거해 폐기해야 하느냐 마느냐 논쟁이 일었다. 쇠고기 소비가 급감하고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염려가 급증했다. 외국인 유학생들도 마찬가지로 건강을 염려했다.어느날 선배와 저녁에 맥주를 마시러 갔다. 안주로 소시지를 시키자 선배가 먹지 않았다. 쇠고기가 섞여 있을지 모르는 소시지조차 먹기 불안했던 것이다. 당분간 쇠고기는 물론이고 육류 자체를 되도록 먹지 않으려던 선배에게 농담으로 말했다. “이 소시지 먹으..

지난 8월 학생들과 함께 독일에 다녀왔다. 지역사회 공동체성 제고를 위한 선진 이민사회 방문조사였다. 함부르크 반츠벡 구의 초청을 받아 그곳을 먼저 방문했다. 독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베를린과 함부르크에는 그만큼 이주민 수도 많다. 베를린 주민의 약 36%가, 함부르크 주민의 약 37%가 이주배경을 가지고 있다. 구청장과의 대화 시간에 한 학생이 물었다. 이주민 통합을 위해서는 선주민의 생각과 태도도 함께 변해야 하는데, 어린이는 학교에서 정규교육을 통해, 한창 일할 나이의 성인은 직장에서 같이 일하면서 통합에 필요한 지식과 태도를 배운다면, 은퇴자처럼 나이 든 사람을 교육하는 정책은 있나? 리첸호프 구청장은 이렇게 답했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어떤 생각이나 태도를 시민에게 주입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요즘 나는 출근길에 땅을 쳐다보며 걷는다. 남이 흘린 동전이라도 주우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똥을 밟지 않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출근길에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걷다가 한두 번 똥을 밟은 뒤로는 경각심이 생겨서 바닥만 보고 걷는다. 그런데 점점 상황이 나빠지는 것 같다. 뭔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1999년 처음 베를린에 도착해 두 달간 서남쪽의 부유한 지역 기숙사에 임시로 살 때는 길거리에 그렇게 개똥이 많은지 몰랐다. 두 달 뒤 이주민이 많이 모여 사는, 집세가 저렴한 지역으로 이사하고 나서야 서양 언어에 ‘똥’이라는 뜻의 욕이 왜 있는지를 알게 됐다. 똥을 밟았을 때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당황과 분노의 외침이 바로 “악, 똥!”이었다. 살면서 보니까 모든 지역에 고르게 개똥이 널려 있지..

헤어프리트 뮌클러, Focus Online, 2022년 4월 13일 수요일 2월까지만 해도 독일 연방정부는 우크라이나가 방어적 무기만 갖추기를 원했다. 이런 태도는 잊힌 지 오래된 것처럼 보이고, 이제 중화기의 전달이 논의된다. 무엇이 이런 생각의 전환을 가져왔을까? 도덕적 고려는 아니었을 것이다. 독일 연방정부가 상당한 규모의 중화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만큼, 연방정부가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작 전후에 경화기의 제공조차 거절하고 기껏해야 5,000개의 헬멧을 제공하려고 했을 때, 무슨 주장을 했는지 이제 다시 한 번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사람들은 독일이 도덕적 이유에서 그리고 자국의 역사를 돌아보면 원칙적으로 방어장비만 제공할 수 있고, 인명살상 무기는 제공할 수 ..

헤어프리트 뮌클러와의 인터뷰, NDR Info, 2022년 5월 4일 경제적 상호의존의 형성을 통해 러시아와의 평화를 보장하려는 전략은 실패했다고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는 말한다. 어떻게 러시아를 저지할 수 있고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을까? 이것은 현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이렇게도 물어야 한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이 질문은 미래의 협력, 더 넓은 세계질서, 그저 공존을 위해서도 다시금 중요하다. 슈타인마이어 [독일]연방 대통령은 노르트 스트림2를 고수한 것이 실수였음을 이제 인정했다. “러시아가 더는 신뢰하지 않고 우리의 파트너들이 우리에게 경고한 다리를 고수”했다는 것이다. 헤어프리트 뮌클러는 정치 이론과 사상사에 전문적인 정치학자이며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