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한 공산주의는 종교를 미신으로 여겼다. 그런 공산주의가 때로는 종교로 여겨지기도 한다. 반증에 열려 있는 과학이 아니라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적 교리라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 이데올로기까지 포함하는 넓은 종교 개념이 있는가 하면, 그런 것은 배제하는 좁은 종교 개념이 있다. ‘사이비’ 종교라는 말은 종교 개념의 넓거나 좁은 사용과 관련된다. 넓게 보면 사이비 종교랄 게 따로 없고, 좁게 보면 제대로 된 종교도 드물다. 다 같은 믿음인데, 어떤 믿음은 종교 취급받기를 싫어하고, 또 어떤 믿음은 종교로 인정받기를 원한다.통일교는 종교일까? ‘정통’ 기독교인의 눈에는 ‘이단’이나 ‘사이비’로 보이겠지만, 그런 기독교조차 인민의 ‘아편’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종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의 언어 능력에 주목했다. 다른 동물도 소리를 내 소통한다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가 주목한 것은 인간이 말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가린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이 단순히 생존만 하지 않고 좋은 삶도 추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언어 능력 덕분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따질 수 없다면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능력이 인간의 또 다른 능력, 즉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능력과 결합했을 때, 최선의 경우 훌륭한 정치공동체가 탄생하겠지만, 최악의 경우 매우 독선적인 집단들의 충돌이 끝없이 이어질 수 있음을 아마도 철학자는 알았을 것이다.그 가능성이 최악의 방식으로 17세기 유럽에서 실제 표출되었다. 누구의 신앙고백이 옳..
현재 독일인을 100명으로 축소하면 그 가운데 25명이, 베를린이나 함부르크 같은 대도시에서는 무려 40명 이상이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문화적 다양성이 증가하면 사회통합이 어렵지 않을까? 4년 전 시작된 광주와 함부르크의 청년 교류를 통해 나는 한편으로 이 다양성의 증가를, 다른 한편으로 사회통합의 가능성을 몸소 확인하고 있다.2022년 처음 함부르크 청년 16명이 광주를 방문했다. 이들은 반츠벡 구 출신이었는데, 그곳 청소년의집 관장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 청주 청소년들과 교류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이제 성인이 되어 스스로 새로운 교류를 조직하게 되었다. 반츠벡 구와 함부르크 시는 이들이 광주를 방문하고, 또 광주에서 만난 친구들을 함부르크로 초대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올여름 우리를 초대..
12.3 계엄 사태는 정치학을 가르치는 나에게 두 가지 의미에서 충격적이었다. 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양호한 편에 속하던 한국에서 군대를 동원한 친위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우선 충격적이었고, 그런 무모한 시도를 정당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또한 충격적이었다. 12.3 계엄 사태는 나에게 정치학을 연구하는 일도, 가르치는 일도 대충 해서는 안 되겠다는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그래서 조금은 비장한 마음으로 지난 1학기 ‘시민참여와 민주정치’ 수업을 진행했다. 전반부에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황을 살펴보고 그 원인을 진단하는 강의를 했고, 후반부에는 시민의 참여에서 민주주의 강화의 방법을 찾는 프로젝트를 학생들이 진행했다. 때마침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서 우리는 선거에..
‘87년 체제’가 문제라고들 한다. 그래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걸까? 그래서 한번 관련 책을 검색해 봤다. 마침 최근(4월 25일)에 나온 책이 한 권 있다. ‘87체제’를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 함께 쓴 저자의 이름들이 어마어마하다. 김기현, 나경원, 도태우, 복거일, 신평, 윤상현, 전한길, 조정훈, 심지어 윤석열까지. 차마 책을 구입할 수 없어서, 출판사가 제공한 소개 글만 살펴봤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지금의 제6공화정에서 제7공화정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87체제’라는 말을 일단 헌정 체제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친중국, 친북한의 고식적 노선을 벗어나 세계를 향하여 문을 활짝 열고 그와 동시에 내부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