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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3년 넘게 끌어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곧 멈출 듯하다. 무관한 제3자의 입장에서는 종전(終戰)이 더 좋겠지만, 이대로 영토를 빼앗긴 채 끝낼 수 없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휴전이 차선일 것이다. 내심 만족스럽지만 그런 내색을 할 수 없는 러시아 입장에서도 ‘휴전’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러시아는 이 전쟁을 ‘특수군사작전’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휴전이 아니라 ‘작전 중지’일지도 모르겠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러시아 국가의 침략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쟁’ 표현을 사용한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사는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며 ‘전쟁’ 표현을 극구 삼갔다. 이는 전쟁이 국가간의 군사적 행위이며 이 행위를 규제하는 국제법이 침략을..

작년 7월 5일자 아침시평에서 나는 당시 유력 대선 후보의 출마 선언문을 읽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 선언문에 20세기 냉전 이데올로기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그의 진짜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보수 정당 후보로 나서게 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보수 유권자의 마음에 영합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도자가 이데올로기적 시각을 가지고 성급하게 대중을 이끌려고 하거나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시각에 영합하려고 하면 정치공동체의 운명이 암울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반걸음’ 앞서 나갈 것을 주문했다. 새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고 나는 당시 선언문에 담긴 생각이 본인의 것이었음을 알았다. 취임사의 내용도 같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 이데올로기의 서사는 ..

헤어프리트 뮌클러/ 2022년 3월 16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탈영웅적 사회들이 비영웅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영웅주의는 모두를 끔찍한 전쟁으로 끌어들인다. 그 대신 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다. 한 사회를 ‘탈영웅적’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그 사회가 영웅적이지 않다는 진단과 같은 것이 아니다. 비영웅적unheroisch 사회가 하루아침에 영웅적이 될 수는 없다. 탈영웅적postheroisch 사회는 더욱 그렇다. 칼 슐뢰겔은 자신의 기고문 「러시아 도시들의 어머니 위로 폭탄을」(Bomben auf die Mutter der russischen Städte, F.A.Z. 2022년 3월 12일)에서 “‘탈영웅적 시대의 시작’(헤어프리트 뮌클러)”이라는 말은 “무지의 표시, 현학적 태도일..

“푸틴은 제국적 기회주의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의 생각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 2022년 3월 2일) „Putin ist ein imperialer Opportunist“ - Politikwissenschaftler über Ukraine-Krieg Forscher Herfried Münkler über russische Phantomschmerzen und die Unehrlichkeit des Westens im Umgang mit der Ukraine. Ein Interview. www.fr.de 인터뷰: 바샤 미카(전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편집장) 뮌클러 교수님, 러시아는 자기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건가요? 러시아가 꿈꾸는 것이 그 것뿐만은 아니겠죠. 그러나 적어도..

2016년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서베를린의 관광 명소인 일명 ‘깨진종탑교회’ 앞에 들어선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탈취된 트럭 한 대가 돌진한 것이다. 최소 12명이 죽고 48명이 부상을 입었다. 독일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가운데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은 사건이라고 하니 시민들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사건의 여파로 크리스마스 마켓뿐만 아니라 연말 대목을 노리던 관광 산업도 함께 위축됐다. 불안 요소가 남아 있는 곳에 사람들이 방문을 꺼렸고 강해진 안전 조치가 사람들이 기대하던 연말 도심의 모습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라틴어 단어 테러(terror)는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 또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테러는 폭력의 대상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