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사설] 성범죄의 사회적 맥락 본문
성범죄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범죄자에게 전자발찌도 채웠고 범죄자의 신상정보도 공개했지만, 재범을 원천적으로 막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는 ‘화학적 거세’라도 해보자고 한다. 병적인 성욕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범죄의 원인일까? 성범죄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성범죄에 대한 사전의 공포와 범죄자에 대한 사후의 증오만 커질 뿐, 범죄를 예방할 수도 없고 범죄자를 효과적으로 처벌할 수도 없다.
모든 범죄는 사회적 범죄이다. 성범죄의 발생, 그 빈도의 증가와 형태 변화도 모두 사회적 현상이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흔히 여성의 신체 노출이나 음란물과 같은 성적 이미지의 범람을 원인으로 지적하곤 한다. 그래서 그 범람을 막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욕구를 범죄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은 자극 자체가 아니라, 자극에 반응하는 (본능적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된 방식이다.
타인을 자신의 수단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타인은 쉽게 성욕 해소의 도구로 전락한다. 여기에 돈이 개입되느냐 폭력이 개입되느냐는 부차적이다. 정치적, 경제적, 신체적으로 강한 자가 힘으로 약자를 강제하는 사회에서 신체적 힘밖에 가진 것이 없는 남성은 쉽게 약자인 여성을 힘으로 취하려고 하게 된다. 이런 사회적 맥락을 간과하고 그저 욕구를 화학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사회적 맥락을 간과하면, 대중의 이목을 끄는 가시적인 폭력 성범죄만을 쉽게 성범죄로 여기게 되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똑같이 폭력적이지만 보이지 않는, 대부분 부유층과 화이트컬러에 의해 저질러지는, 성매매나 성추행, 성희롱과 같은 성범죄를 가볍게 여기며 그것에 면죄부를 주게 된다. 모든 범죄를 발본색원해 처벌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처벌이지만, 개인이 해야 할 일은 반성이다. 성범죄에 대한 요란한 성토의 목소리 속에 사소한 일로 간주되는 우리들의 일상적 성범죄와 잘못들이 묻혀 사라지지 않는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사회의 일부이지만, 사회와 구별되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오늘날 대학은 안타깝게도 사회와 뒤섞여 변화를 이끌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더 지독하게 세속화하여 성범죄는 물론이고 온갖 사회 문제가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는 공간이 되었다. 대학은 수도원이 아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욕구나 자극을 강제로 없애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다. 문제는 성적인 욕구나 자극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반응 방식에 있다. 대학이 사회의 다른 공간처럼 타인을 수단으로 취급하고 돈이나 지위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곳인 한, 대학도 성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대학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이 글은 <조대신문> 2012년 9월 3일자 사설에 실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