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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더 다양할수록 더 완전하다 파리의 남쪽 끝에는 대규모의 국제대학기숙사촌(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de Paris)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각국에서 파리로 유학 온 학생과 연구자, 예술가들이 먹고 자는 곳입니다. 130개 이상의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니 그 사실만으로도 놀라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유명한 것이 단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국적이 다양하고 그 수가 많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곳에 있는 40개의 ‘메종’이 그 집에 이름을 부여한 40개의 국가에 의해 지어졌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예컨대, 인도관, 캄보디아관, 일본관, 이탈리아관, 스위스관이 있습니다. 때로는 각각의 집에 고유의 이름이 붙어 있기도 합니..
그 도서관은 아직 거기 있을까 연재를 시작할까 합니다. 가물가물해진 기억의 끈을 조심스레 붙잡고 유럽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결국 광주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저를 통해 광주가 유럽을 만났고, 또 유럽이 광주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도서관을 좋아합니다. 도서관장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곤 할 정도입니다. 도서관의 맛을 알게 된 것은 사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였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일명 ‘독서실’과 도서관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도서관 이용과 관련한 교양과목을 수강하면서 처음으로 개가식 도서관의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에는 온갖 책이 학문분야별로, 그리고 주제별로 나뉘어 꽂혀 있었습니다. 목사인 아버지의 서..
2014년 1월부터 격월로 발행되는 조선대학교 소식지에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제목은 "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하다"입니다. 지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유럽에서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삼고 2013년 여름과 2014년 1/2월에 다시 유럽을 방문하고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덧붙여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1월과 3월에는 도서관에 관한 얘기를 쓰려고 합니다. 첫 번째 글입니다.
강사는 강의를 하는 사람이다. 강의하는 내용과 장소에 따라 강사라는 말 앞에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는다. 에어로빅 강사, 요가 강사, 수영 강사가 있고, 문화센터 강사, 학원 강사, 대학 강사가 있다. ‘대학 강사’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어디까지나 대학에서 강의하는 사람을 일컫는 중립적인 표현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독특한 의미 분화 끝에 오늘날 다른 내포와 외연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전임 강사와 비전임 강사로 나뉘었고, 전임 강사가 ‘교수’가 되었고 비전임 강사가 ‘(시간)강사’가 되었으며, 오늘날 다시 교수는 ‘정규직 교수’, 시간강사는 ‘비정규직 교수’라고도 불린다. 배우는 학생의 관점에서는 모두 강의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똑같이 강사이다. 환자의 눈에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모두 의사인 것과 같다...
12. "테러와 테러리즘: 정치적 폭력의 경제와 타락에 관하여", 제8권 1호,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2015년 봄, 73-97쪽. 11.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마키아벨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김경희, 에 대한 서평]", 제12집, 한국정치평론학회, 2013년, 211-217쪽. 10. "루소, 스피노자, 그리고 시민종교의 문제", 제19집 1호, 한국정치사상학회, 2013년, 109-142쪽. 9. "제국이라는 유토피아, 또는 디스토피아", 제5집 2호, 2012년, 143-174쪽. 8.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은 누구인가", 제123호, 언론중재위원회, 2012년 여름, 47-56쪽. 7. "제국과 관용: 보편주의의 정치성에 대하여", 제43집,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2년, 527..
대학에서 성범죄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대학 캠퍼스라고 하는 물리적 공간에서도 그렇고,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대학 사회에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한국 사회 일반의 현상이 대학에서도 나타나는 것뿐이다. 다만 대학 사회가 특별히 더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곳이 이른바 ‘지성의 전당’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대학을 규범적으로 ‘지성의 전당’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대학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학은 우리 사회의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힘과 정치적 힘의 논리에 휘둘리고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아예 물리적 힘의 논리에도 휘둘리고 있다. 당위적으로는 지성이 힘이 장악해야 할 대학을 현실적으로는 경제력과 정치권력이, 그리고 때로는 물리력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시..
제 지도교수인 헤어프리트 뮌클러 교수가 최근에 밝혀진 미국 정부의 전세계적 도감청 사실에 관한 칼럼을 하나 썼기에 한국어로 한번 옮겨봅니다. (출처: http://www.mdr.de/mdr-figaro/journal/kolumne292.html) 2010년에 이미 위키리크스와 관련해 비밀의 유익에 대해 칼럼을 쓴 바 있습니다. 이것도 시간이 나면 한국어로 옮겨보겠습니다. (http://www.spiegel.de/spiegel/print/d-75476953.html) Kolumne | MDR FIGARO | 28.06.2013 : Die Machiavellistische Seite der Demokratie von Herfried Münkler 칼럼/MDR 피가로/2013년 6월 28일/ 민주주의의 마키아..
무엇이 아님을 뜻하는 한자 ‘비(非)’가 그 앞에 붙은 단어들은, ‘무엇’이 아니기 때문에 그 속성이 아직 모호한데도, 이미 부정적인 어감을 가지고 있다. 권력은 그 ‘무엇’을 특권화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비-무엇’을,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이미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 기피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무엇’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자동적으로 ‘무엇’의 특권을 정당화한다. ‘무엇’을 추구하는 우리의 욕망은 권력의 효과이자 동시에 권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이 욕망의 정체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저 ‘무엇’을 추구할 때, 우리는 ‘비-무엇’을 배제하여 ‘무엇’을 특권화하는 권력의 공범이 된다. ‘비-정규직’이라는 표현은 ‘정규직’을 특권화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언론을 통해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루어진 약속들이 지켜질 수 있을지를 의심하는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말로 유명한 박근혜 대통령이니만큼 일단은 의심 없이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정말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일까? 당파적 공세를 위해, 또는 그저 선거에서 생색내기용으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지키지 말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정치적 약속이 그렇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바꾸는 이유이다. 그 이유에 따라 국민의 신뢰가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신뢰가 사라지는 때는 말을 바꾸는 때가 아니라, 말을 바꾸는 이유가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서임이 드러날 때..
'아르바이트'는 기만적인 표현이다. 그것은 '노동'이라는 그 말의 본래 뜻을 감추면서 마치 다른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인다. 과거에 아르바이트는 대학생의 과외교습을 일컫는 표현이었다. 사교육의 원조인 대학생 과외가 한때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업으로 삼고 큰돈을 벌면서도 소득을 신고하지 않는 탈세자가 늘어난 것이다. 정부는 대학생의 아르바이트를 금지했지만, 대학생들은 돈을 벌기 위해 '몰래바이트'를 계속 했다. 당시에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노동자가 '일'을 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결핍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름을, 더 나아가서 우월함을 의미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행여 가난해서 할지라도, 땀 흘리는 노동과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