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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철학자 스피노자는 한 편지에서 ‘생각하는 돌’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움직이는 돌이 있는데, 이 돌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돌은 자기가 계속 움직이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돌은 자기가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어서 자기가 온전히 자유롭다고 믿으며, 오로지 자기가 원해서 계속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인간의 자유입니다. 인간의 자유란 사실 인간이 자기의 욕구는 의식하지만 그 욕구를 결정하는 원인은 모르는 데에서 비롯하는 관념입니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과 남에게 ‘인격’을 부여한다. ‘인격’의 핵심은 자율성이다.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키우는 동물에..

베를린은 확실히 매력적인 도시이다. 사람이 이렇게 북적거리는 것을 보면 나에게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정확한 수치상의 증거 없이도 몸으로 그런 변화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나는 20년 전인 1999년 처음 베를린 땅에 도착해 7년 가까이 살다가 귀국한 후, 작년 여름 다시 베를린에 와서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사이의 변화를 한번 되짚어 보려고 한다. 서울과 베를린을 잇는 직항 노선이 여전히 없는데도 최근 들어 한국인들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연예인들도 이제 파리는 식상해서인지 베를린으로 화보와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많이들 온다. 유학(지망)생도 여전히 많다. 그래서인지 원래 많던 한인 교회의 수가 그 사이에 더 늘었다. 베를린 자유대학의 한국학 연구소 초청으로 그..

우스갯소리로 인류 최고의 난제라고 부르는 문제가 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도대체 뭘 기대하고 묻는 것일까? 제3자는 별 부담 없이 물을 수 있지만, 그런 질문을 받은 아이도, 아이의 부모도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다. 아이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고민한다. 대답에 따라 서운해 할 엄마나 아빠를 걱정하여 대답을 기피하기도 한다. 별 생각 없이 엄마나 아빠가 더 좋다고 대답하면, 아이에게서 선택 받지 못한 엄마나 아빠는 내심 서운하다. 우리는 그 반대로 묻기도 한다. 여러 명의 자식 가운데 어느 자식이 더 예쁘냐는 질문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로 대답을 회피하지만, 사실 아픈 것과 예쁜 것은 다르다. 행여 어느 한 자식을 다른 자식보다 더 예뻐하는 마음을 들키기라도 ..

오는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이 선거를 통해 광주광역시에서는 시장과 구청장, 시의원과 구의원이 새롭게 선출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회의원도 한 명 보궐로 선출된다. 자치단체장의 경우와 시ㆍ구의회 의원의 경우에 요구되는 리더십이 다르고, 각 행정구역의 상황에 따라 자치단체장에게 요구되는 리더십도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시도에서 요구되는 리더십과 광주에서 요구되는 리더십이 서로 조금 다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글에서는 다소 일반론적이지만 자치단체장에 초점을 맞춰 광주의 발전에 필요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1. 개념 먼저, 리더십 개념에 대해 짧게 생각해보고 넘어가자. ‘리더십’이라는 모호한 외래어 속에는 다양한 구체적 의미가 숨어 있다. 크..

정치학자 최장집은 일찍이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를 대표체계의 왜곡에서 찾았다. 그에 의하면, 6.25 전쟁을 겪으면서 남한의 정치이념적 지형은 마치 왼쪽 팔이 잘려 나가고 오른쪽 팔만 남은 것처럼 협소해졌다. 인민을 모조리 정치적 성향에 따라 좌우로 나누어 각각 북과 남으로 보내버린 것은 아니지만, 마치 그런 것처럼 정치적 대표체계는 북과 남에서 좌와 우로 좁아졌다. 그래서 남한의 인민들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성향에 따라 자신을 대표할 정치인과 정당을 선택할 수 없었고, 좁은 이념적 지형 안에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성향에 맞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이념적 지형이 좁아진 결과, 중도 정당은 좌파 정당으로 오해되어 탄압받았고, 좌파 정당은 극좌 정당으로 낙인찍혀 금지되었으며, 우파 정당..

2017년 5월 대선은 어떤 선거였나? 모두가 알다시피 지난 5월 대선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이어 치러진 선거였다. 이 상황은 선거에 두 가지 성격을 부여했다. 하나는 과거 청산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 재편이다. 결과론적인 평가이기는 하지만, 국민의당은 이 두 성격의 대선에서 뚜렷한 입장을 가지기 어려운 조건이었고, 실제로 어느 하나의 성격에서도 자기의 상대적 우위를 유권자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과거 청산을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잘 할 것임을 확신시키지도 못했고, 보수의 새로운 그릇이 될 수 있음을 확신시키지도 못했다. 국민의당의 복잡한 인적 구성과 모호한 지향은 이 두 성격을 가진 대선에서 기회 요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위험 요인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당은 지난 5월 대선에서 이 기회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들 말한다. 이 말은 앞날에 대한 현재의 예측을 바꿔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다소 뒤쳐져 있는 후보자가 선거 결과는 투표함을 열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얘기할 때, 그는 미래의 불확정성에 역전의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그 반대로 변화에 대한 의지 없이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친구의 소식을 전해 듣고서 사람 앞날 어찌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말할 때, 그는 앞날의 불가지성을 체념하며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철학자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가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침묵하기 전에 우리는 그것이 정말 알 수 없는 것인지 먼저 확인해 봐야 한다. 감히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알 수 없다..

최근 우리 대학에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지난 달 26일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우리 대학의 임시이사 체제를 끝내고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달 16일까지 정이사 후보들을 포함한 정상화 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지역의 언론은 벌써부터 학내 구성원들이 이사진 구성에 과연 합의할 수 있을 것인지를 두고 의심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의 임시이사 체제가 들어서기 전의 정이사 체제에서도 개방이사의 선임과 기존 이사의 연임 문제를 둘러싸고 구성원 간의 갈등이 지속되었고 타협 없는 대립 속에서 결국 임사이사 체제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지난 달 26일과 27일에는 학생회 선거가 치러졌고 총학생회를 비롯한 각급 학생회의 내년도 회장과 부회장이 선출되었다. 경쟁으로 치러지는, 그..

[2019년 11월 26일(화) 평화민주포럼 주최 정치현안 토론회 발제문] 냉전과 분단에 기댄 반공보수 세력의 권력 독점이 무너진 것은 20여 년 전의 일이다. 그 권력 독점을 조금이라도 더 지속하기 위해 반공보수 세력은 민주화 세력의 일부를 흡수했지만 끝내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민주화 세력은 삼당합당에 참여했던 JP와 그에 의해 대표되는 지역적 구 집권세력과 손을 잡음으로써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대한민국의 반공보수 세력은 비록 정권은 빼앗겼지만 시민사회에서의 헤게모니는 결코 빼앗기지 않았다. 의회에서도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 힘입어 실제 유권자의 지지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며 과다 대표되었다. 시장주의 세력과 손잡은 반공보수 세력은 결국 정권을 되찾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
[한국여성의정 광주아카데미 2019년 8월 22일 강연 원고] 광주는 재생산의 위기에 처해 있다. 광주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그렇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먼저 인구상으로 재생산 위기이다. 출산이 줄어들면서 사회 전반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고, 사회의 변화에 대응한 개개인의 노력의 결과로서 지방의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인구의 감소와 유출은 지역의 정치적 역량과 문화적 동질성을 감소시키고 있다. 전남에서의 유입과 서울로의 유출이 균형을 이루는 탓에 얼핏 인구가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높은 유동성 탓에 광주의 정치적 역량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문화적 동질성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문화적 다양성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것을 시민적 동질성과 양립할 수 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