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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우리 대학 주변에 있는 고등학교 담벼락에 현수막이 여럿 붙어 있다. 우리 지역에 소재한 대학들이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내건 홍보 현수막들이다. 입시철이 돌아왔나보다 하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간과하기에는 불안한 징조들이 엿보인다. 최근 언론을 통해 몇 가지 사실들이 보도됐다. 먼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지원자 수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재학생 지원자 수는 34만 여 명에 불과하고, 졸업생을 합쳐도 50만 명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실제 응시자 수는 이보다 더 적을 것이라고 하는데, 어쨌거나 전체 대입 정원(49만 655명)보다 적은 수이다. 대입 지원자 수가 정원보다 적은 상황에서 지방의 일부 사립대학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 커다란 경제적 타격을..

지난 27일 광주광역시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에 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올해 2월 3일 광주에 첫 확진자가 발생한 후 최대 규모의 확진자가 발생한 데 따른 조치였다. 시 당국이 이번 사태를 특별히 심각하게 여긴 이유는 확진자 가운데 일부가 자신의 동선을 숨기거나 거짓 진술을 해서 추가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조치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의 학생 한 명도 이 확진자와 같은 종교시설을 이용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정치적인 이유로 방역당국의 조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100인 이상의 집회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비웃듯이 대규모 집회를 하는가 하면, 언론 앞에서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방역당국의 코로나19 검사를 불신하는 사람도 있다. 정부가 자신들을 정..

한때 ‘운동권’ 학생회라는 말이 있었던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에 학생회는 정치적ㆍ사회적 변혁을 지향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나고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학생운동은 방향을 잃게 되었다. 잠시 과도기적으로 학생자치를 운동 목표로 내걸기도 했지만 1997년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영향 속에서 대학생 자체가 빠르게 ‘경제적 동물’로 변해갔고, 그에 따라 학생회도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오늘날 대학의 학생회는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이중적인 의미에서 이익집단이다. 노조가 사측의 이익과 대립되는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듯이 학생회는 학교나 교수의 이익과 대립되는 학생의 이익을 대변한다. 그러나 동시에 노조가 자기 이익을 위해 활동하듯이 학생회도 자기 이익을 위해 활동한다..

지난 달 25일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우리 대학 정이사 아홉 명을 최종 선임했다. 지난 해 11월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한 지 거의 반 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전ㆍ현직 이사들의 추천 몫을 보장하고 있는 사립학교법 탓에 구재단과 관련된 인사가 추천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었지만, 이사 후보의 추천 과정에서 전ㆍ현직 이사들이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덕에 그 몫이 그나마 줄어든 것은 다행이다. 구재단의 영향이 일절 없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겠지만, ‘민주화’라는 것이 원래 점진적 ‘과정’임을 생각하고 아쉬움보다는 앞으로의 일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대학이 임시이사 체제와 정이사 체제를 반복해서 겪은 데에는 제도와 관습의 불일치 문제가 있다. 87/88년의 학원..

스피노자는 1677년 2월 21일 네덜란드 홀란트 주에 있는 도시 헤이그에서 44년 조금 넘는 짧은 생을 마감했다. 종이로 된 유언장은 없었지만, 폐병을 앓고 있던 스피노자가 하숙집 주인에게 자신이 죽으면 즉각 책상과 함께 그 속에 있는 편지와 원고들을 암스테르담에 있는 출판인에게 보내라고 미리 말해둔 덕분에 스피노자의 유고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스피노자의 친구들은 즉시 출간 작업에 착수했고, 그해 말 스피노자의 유고집이 출간되었다. 이미 완성은 했지만 탄압에 대한 우려 때문에 생전에 출간하지 못한 , 1670년에 이미 출간했지만 저자의 이름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 그리고 미완성 초기작 과 스피노자가 죽기 직전까지 작업한 이 이로써 그 저자의 이름과 함께 세상에 공개되었다. 스피노자의 은 16..

아직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조차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에도 아직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어떤 모습일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섣불리 다음 시대를 예상하기보다 지금 이 시대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에 우선 집중하자. 코로나 시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의 본질을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직장생활의 본질이 사무실에 나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데에 있는지, 아니면 자신이 담당하는 일을 어디에서건 하는 데에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신앙생활의 본질이 매주 정해진 시간에 예배당에 나와 앉아 다함께..

4.15 총선이 끝났다. 대통령의 임기 중에 치러지는 총선은 국정에 대한 중간평가라고들 말한다. 평가의 결과는 놀라웠다. 여당은 국회의 전체 300석 가운데 무려 180석을 차지했고, 선거운동 기간 내내 ‘정권 심판’을 외쳤던 제1야당은 103석을 얻는 데 그쳤다.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 특히 호남지역에서, ‘녹색돌풍’을 일으켰던 정당들은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인 줄 알았던 총선이 사실상 의회평가, 야당평가가 된 셈이다. 때마침 총선이 치러진 지난주는 평상시라면 대학에서 중간시험이 실시되는 주였다. 이번에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개강 자체가 2주 늦어져서 중간시험 기간도 그만큼 늦어진 데다가 온라인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중간시험이 예전처럼 실시되기 어려워졌다. ..

제21대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코로나19의 유행 탓에 선거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난리들이다. 선거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아무래도 불리한 쪽은 도전하는 사람이다. 일찍부터 정권심판을 이번 선거의 구호로 내걸었던 야당은 예상치 못한 감염병 사태에 무척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이다. 나라 전체가 어려운 때에 정부 비판으로만 일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위기를 경고하는 것도 평화로울 때에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다. 정부는 그래도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야당에게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상황을 주도할 힘이 없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정치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개념..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마침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1968년의 이른바 ‘홍콩독감’과 2009년의 신종플루에 이어 세 번째라고 한다. 그러나 대학에 끼친 영향만 놓고 보면 이번 감염증 유행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 거의 모든 대학이 졸업식과 입학식을 취소했고, 신입생을 맞는 각종 행사도 취소했다. 개강을 2주 연기했으며, 다시 개강 후 2주간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서울의 몇몇 대학에서 아직 개강도 하지 않았는데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면 다시 긴장하게 된다. 모두 전대미문의 일이다. 한 달 전만 해도 코로나19가 이렇게까지 확산할 줄 아무도 몰랐다. 일명 ‘31번 확진자’의 등장과 함께 ..

극우주의는 인간의 불평등을 극단적으로 주장합니다. 독일의 나치즘은 인종과 민족의 우열을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열등한 민족의 배제와 제거를 조직적으로 실행하기까지 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인종간의 우열과 차별을 옹호하는 주장은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파가 인간 개개인의 능력 차이를 강조하고 그에 근거한 차별적 대우를 정당한 것으로 옹호한다면, 극우파 이데올로기는 개개인의 능력 차이를 넘어서는 종족간, 민족간, 인종간의 생래적 차이를 주장하며 그에 근거한 우월한 집단의 지배를 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일수록 극우주의에 현혹되기 쉽습니다. 단지 어떤 집단에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집단을 지배할 자격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열등한 민족에 대한 독일 민족의 지배, 유색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