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2017년 5월 대선 평가: 국민의당과 관련하여 본문
2017년 5월 대선은 어떤 선거였나? 모두가 알다시피 지난 5월 대선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이어 치러진 선거였다. 이 상황은 선거에 두 가지 성격을 부여했다. 하나는 과거 청산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 재편이다.
결과론적인 평가이기는 하지만, 국민의당은 이 두 성격의 대선에서 뚜렷한 입장을 가지기 어려운 조건이었고, 실제로 어느 하나의 성격에서도 자기의 상대적 우위를 유권자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과거 청산을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잘 할 것임을 확신시키지도 못했고, 보수의 새로운 그릇이 될 수 있음을 확신시키지도 못했다.
국민의당의 복잡한 인적 구성과 모호한 지향은 이 두 성격을 가진 대선에서 기회 요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위험 요인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당은 지난 5월 대선에서 이 기회의 측면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에 실패했고, 당의 정체성의 모호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위험이 되었다.
사실 모든 정당은 인적인 구성 면에서나 그 구성원들의 이념적 지향 면에서나 일정한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사실적 복잡성을 감추고 비교적 뚜렷한 차별성을 부여해주는 것은 대표자의 이미지와 당이 표방하는 구호, 그리고 결정적으로 경쟁의 구도이다. 국민의당은 대선국면 초기부터 이 경쟁의 구도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문재인과 안철수의 경쟁 구도로 가져가려고 했다. 방향은 전략적으로 옳았다. 그러나 이 양자 경쟁의 구도에서 국민의당은 무너진 보수 정당의 자리에 자기를 놓으려고 하지 않음으로써 더불어민주당과 자기를 차별화하는 데에 실패했고, 그럼으로써 또한 자유한국당이 부분적으로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대선은 회고적 성격보다는 전망적 성격을 가진다. 2016년 총선에서의 국민의당의, 특히 호남에서의 성공은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의 과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회고적 평가에 근거한다. 이 성공, 특히 호남에서의 성공은 이중적으로 국민의당에 독이 되었다. 첫째, 호남에서의 성공은 호남에 지역구를 둔 정치인들을 당의 주류로 만듦으로써 또한 당을 호남의 여론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둘째, 호남에서의 성공은 국민의당에 대한 전국적 지지의 성격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호남의 유권자의 30~40%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언어화하지 못하는 것을 의식하고 언어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민의당의 역할이어야 했다. 그것은 한국의 현대사가 호남민에게 강요했던 질곡, 즉 ‘호남=진보’라는 부당한 등식을 깨는 것이었다. 이 과감한 시도를 안철수 후보 자신도, 국민의당 호남 정치인들도 하지 못했다. ‘새정치’를 단순히 민주-새누리 양당구도의 타파로만 생각했고, 가짜 진보-보수 대립구도의 혁파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반공보수와 다른 보수를 스스로 상상(想像)하지 못함으로써 호남의 상당수 유권자를 ‘진보 강박’에서 해방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비호남의 상당수 유권자를 ‘반공 강박’에서도 해방시키지 못했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확인된 국민의당에 대한 전국적 지지는, 설령 호남에서의 지지가 다른 지역에서보다 더 높게 나왔더라도, ‘호남적=진보적’ 성격의 지지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보수적’ 성격의 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적이지 않기 때문에 지속성이 약하고 일관성이 부족하며, 그래서 마치 스윙보터의 지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념적으로 유연하고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유권자들의 지지이다. 이 지지를 국민의당이, 호남에서만 아니라 전국 모든 지역에서, 모아야 한다.
지금 국민의당은 문준용씨 특혜취업 의혹의 증거를 조작한 사건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선거 국면에서는 온갖 신뢰할 수 없는 인물들이 접근하여 공(功)을 세우려고 노력하게 마련이다. 이 사건은, 한편으로는, 그런 기회를 찾는 인물들이 자신의 기회를 찾을 만한 유효한 제3의 정당이 필요함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기회를 찾는 인물들의 무모한 행동을 억제하고 통제할 조직의 역량이 국민의당에 아직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정치적 야심을 지닌 인물들이 몰려드는 것은 정당으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 인물들의 경쟁적 활동을 당 차원의 공익,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적 차원의 공익과 조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의당은 먼저, 법적, 도덕적, 정치적 책임을 구분하여 인식하고, 각각의 차원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또 각각의 차원에서 주어지는 책임을 기꺼이 져야 한다. 법적 책임은 검찰 조사와 재판 과정을 거쳐 관련자가 지게 될 것이다. 행여 법적 책임은 면하게 되더라도, 이 사태를 방지하지 못한 도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은 안철수 후보와 당의 지도부가 마땅히 져야 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이익의 포기, 또는 자기 희생의 형태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비록 준비되어 있는 당내 비주류 세력이 없어 보이더라도, 책임 있는 사람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백의종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당을 해산하거나 당명을 교체할 것이 아니라,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히려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결코 문준용 씨 특혜채용 의혹 한 건을 다시금 부각시키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새로운 정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자기부터 쇄신하고 입법부의 구성원답게 법률을 통한 제도적 정비에 앞장서는 방식이어야 한다.
※ 이 글은 2017년 7월 초에 국민의당의 요청을 받아 작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