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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요즘 뒤늦게 드라마 하나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2012년 방영을 시작한 이 드라마는 작년까지 무려 일곱 개의 시즌을 제작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일본에서 얻었다. 주인공은 천재적 수술 실력을 갖춘 외과 의사이다. 그는 대학병원에 정규직으로 채용된 의사가 아니라, 특별한 계약을 맺고 일시적으로 자신의 의료 기술을 제공하는 프리랜서 의사이다. 어려운 수술을 성공시키고 나면 매니저가 나타나 거액의 요금을 병원장에게 청구한다. 이 프리랜서 의사가 병원과 계약을 체결할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하지 않습니다!” 드라마 속 병원에서 의사들이 흔히 하는 온갖 잡일을 자신은 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선언한다. 그렇게 분명히 선언했지만, 주위의 의사들은 그들이 하는 온갖 일을 주인공에게도 하라고 계속 요구한다. 그때마다 ..

지난 9월 함부르크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개인적으로 날 찾아온 한두 명의 손님이 아니라, 또래 학생을 만나 교류하고 싶다고 광주를 찾아온 열일곱 명의 독일인 손님이었다. 어쩌다가 올해 4월 처음 연락을 받고 두 도시의 학생들을 서로 만날 수 있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사실 그때는 크게 걱정을 안 했다. 학생으로 가득한 대학에서 외국에서 온 또래를 만나보고 싶어 할 학생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오히려 어떻게 선발할지가 고민이었다. 방문 시기를 결정할 때부터 조금씩 걱정스러운 요소들이 드러났다. 우리의 방학 때가 오히려 그들에게는 방문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나는 방학 때여야 학생들에게 시간 여유가 있어서 쉽게 참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오는 쪽에서 그때는 어렵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

정치학의 여러 세부 전공 가운데 사실 내 전공은 정치사상이다. ‘사실’이라는 말을 굳이 붙인 이유는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방송과 신문을 통해 한국정치에 대해 발언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혹시 사람들이 내 전공을 한국정치로 오해할까 봐서이다. 한국정치나 비교정치를 전공한 학자가 지방이나 중앙의 정치 문제에 대해 논평하는 것이 더 적합하겠지만 지방의 현실은 그런 전문적 분업을 추구할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아서 그저 정치학을 전공했다는 명분만으로 온갖 이야기를 다 하고 있다. 정치사상이라는 내 전공 분야가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현실 정치에도 관심을 가지지만 그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정치사상은 현실 정치의 문제를 조금 더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차원에서 다루며, 특히 과거의 사람..

시평 쓰기가 너무 어렵다. 글쓰기 자체가 힘든 것도 있지만, 한국의 정치 상황이 너무 빨리 변해서 더 힘들다. ‘시평(時評)’인 만큼 시국에 맞춰 글을 써야 할 텐데, 생각이 좀 정리될 법하면 상황이 바뀌어서 애초의 소재가 이미 사람들 관심 밖에 있고, 새로운 관심사에 대해서는 내가 아직 쓸 준비가 안 되어 있고, 늘 이런 식이다. 부족한 내 지식과 순발력을 우선 탓해야 하겠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깊이 생각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변화 속도 탓도 좀 하고 싶다. 지난 5주 동안 내 머릿속에 머물렀던 여러 주제 가운데 첫 번째는 추첨제였다. 광주 광산구의회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의장 후보 선출에 합의하지 못해서 결국 ‘제비뽑기’로 결정한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언..

선거가 끝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됐다. 작년 하반기에 시작된 각 당의 대선후보 경선부터 생각하면 거의 1년 동안 선거가 계속된 셈이다. 이제야 비로소 선거가 끝나나 싶었는데 새로운 선거가 다시 시작됐다. 민주당에서는 공식적으로 당대표 선거가 시작됐고, 국민의힘에서는 비공식적으로 당대표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큰 싸움이 끝나면 작은 싸움이 시작되고, 작은 싸움이 끝나면 다시 큰 싸움이 시작되는 패턴의 반복이다. 지난 지방선거가 대선의 연장전처럼 치러졌다고들 말한다. 지금 민주당의 당대표 선거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 이 선거 역시 대선의 연장전처럼,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선후보 경선의 연장전처럼 치러지는 것 같다. 후보가 이재명이었기 때문에 대선에서 졌다는 생각이나 이재명이었기 때문에 그..

이번 지방선거는 모두가 알다시피 대선이 끝나고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은 때,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때 치러졌다. 온전한 지방자치가 아니기 때문에도 원래 중앙정치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치러지는 지방선거인데, 대선 직후에 치러진 지방선거여서 더욱 중앙정치의 강한 영향 속에서 치러졌다. (지방자치가 자체의 내부 논리에 따라 실시되기 위해서는 지역별로 다른 시기에 치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구조적 조건은 정권교체였다. 새로 출범한 중앙의 행정 권력에 줄을 대야만 지방이 한 푼이라도 예산을 더 따올 수 있고, 그래야 자신들의 호주머니에 한 푼이라도 더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방의 주민들은 새로운 여당을 기본..

작년 7월 5일자 아침시평에서 나는 당시 유력 대선 후보의 출마 선언문을 읽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 선언문에 20세기 냉전 이데올로기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그의 진짜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보수 정당 후보로 나서게 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보수 유권자의 마음에 영합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도자가 이데올로기적 시각을 가지고 성급하게 대중을 이끌려고 하거나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시각에 영합하려고 하면 정치공동체의 운명이 암울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반걸음’ 앞서 나갈 것을 주문했다. 새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고 나는 당시 선언문에 담긴 생각이 본인의 것이었음을 알았다. 취임사의 내용도 같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 이데올로기의 서사는 ..

헤어프리트 뮌클러, Focus Online, 2022년 4월 13일 수요일 2월까지만 해도 독일 연방정부는 우크라이나가 방어적 무기만 갖추기를 원했다. 이런 태도는 잊힌 지 오래된 것처럼 보이고, 이제 중화기의 전달이 논의된다. 무엇이 이런 생각의 전환을 가져왔을까? 도덕적 고려는 아니었을 것이다. 독일 연방정부가 상당한 규모의 중화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만큼, 연방정부가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작 전후에 경화기의 제공조차 거절하고 기껏해야 5,000개의 헬멧을 제공하려고 했을 때, 무슨 주장을 했는지 이제 다시 한 번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사람들은 독일이 도덕적 이유에서 그리고 자국의 역사를 돌아보면 원칙적으로 방어장비만 제공할 수 있고, 인명살상 무기는 제공할 수 ..

헤어프리트 뮌클러와의 인터뷰, NDR Info, 2022년 5월 4일 경제적 상호의존의 형성을 통해 러시아와의 평화를 보장하려는 전략은 실패했다고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는 말한다. 어떻게 러시아를 저지할 수 있고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을까? 이것은 현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이렇게도 물어야 한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이 질문은 미래의 협력, 더 넓은 세계질서, 그저 공존을 위해서도 다시금 중요하다. 슈타인마이어 [독일]연방 대통령은 노르트 스트림2를 고수한 것이 실수였음을 이제 인정했다. “러시아가 더는 신뢰하지 않고 우리의 파트너들이 우리에게 경고한 다리를 고수”했다는 것이다. 헤어프리트 뮌클러는 정치 이론과 사상사에 전문적인 정치학자이며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에서 ..

헤어프리트 뮌클러, FOCUS Online 2022년 3월 30일(수) 서방의 문 앞에 이제 다시 동구권이 놓여 있다. 이번에는 완충국가가 없다. 직접적인 대결의 위험이 그와 함께 엄청나게 높아진다. 유럽의 평화 시대가 당분간은 끝났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전쟁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이 먼저 빈번하게 언급한 것이 유럽이 냉전시절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미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월 24일 이후 등장한 상황을 좋게 말하는 것이다. 냉전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상당히 안정적인 국면이었다. 인정되었듯이 고도로 무장한 두 진영이 대립해 서있었다. 그 두 진영은 그때그때의 영향권을 존중했다. 영향권들 가운데 일부는 이 40년 동안 편을 바꾸었다. 영향권을 두고 벌어진 두 진영의 싸움은 유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