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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정치인의 말은 무엇을 위한 도구인가 본문

논문 에세이 번역 책

정치인의 말은 무엇을 위한 도구인가

공진성 2025. 10. 24. 06:57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의 언어 능력에 주목했다. 다른 동물도 소리를 내 소통한다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가 주목한 것은 인간이 말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가린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이 단순히 생존만 하지 않고 좋은 삶도 추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언어 능력 덕분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따질 수 없다면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능력이 인간의 또 다른 능력, 즉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능력과 결합했을 때, 최선의 경우 훌륭한 정치공동체가 탄생하겠지만, 최악의 경우 매우 독선적인 집단들의 충돌이 끝없이 이어질 수 있음을 아마도 철학자는 알았을 것이다.

그 가능성이 최악의 방식으로 17세기 유럽에서 실제 표출되었다. 누구의 신앙고백이 옳은지를 두고 사람들은 처음에 말로 싸웠고, 나중에는 무기로 싸웠다. 그 싸움의 결과는 처참했다. 사람들은 왕을 죽이려는 의도조차 감추지 않았다. 다르게 믿는 왕은 곧 폭군이었기 때문이다. 1610년 신교도인 프랑스 왕 앙리 4세가 마차를 타고 가다가 불시의 습격을 받아서 죽었다. 가톨릭 광신자의 소행이었다. 바다 건너 영국에서도 내전이 벌어졌고, 전쟁에서 패한 왕이 결국 참수형을 당했다.

시시비비를 따지는 인간의 능력은 진리를 향한 철학적 여정에서만 사용되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무리를 척결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문제는 서로 상대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서로 말이 안 통해서 오해하고 상대가 못 배워서 이해 못 한다고 생각할 수라도 있었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똑같이 배울 만큼 배운 사람끼리 싸울 때는 그런 양보조차 들어설 틈이 없었다. 그것이 도리어 상대의 사악한 의도를 입증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사탄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같은 말을 하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그 뉘앙스까지 이해할 수 있는 나를 상대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공통의 언어가 더 큰 협력의 도구가 되지 않고, 더 큰 갈등의 도구가 되었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말을 가치판단의 도구로 쓰는 데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의 이익, 즉 몸의 쾌와 불쾌, 호와 불호를 그저 반영할 뿐인 가치평가적 어휘를 이용해 상대를 미루어 짐작하고 판단하는 일이 이 모든 싸움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홉스가 보기에 당시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이 늘어놓는 말은 이런 사태를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강화했다. 아는 것이 힘은 힘인데, 파괴적인 힘이었던 셈이다. 평화를 위해 개개인이 사사롭게 가치판단을 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여긴 홉스는 그런 판단에 사용되는 개념의 뜻을 또한 사사롭게 규정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의 뜻이 혼탁해지면 결국 세상이 어지러워지기 때문이다.

호남에선 불 안 나나?” 어느 정치인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다른 정치인이 옆에서 흐흐흐웃었다. 이 소리를 모든 국민이 들었다. 그런데도 잡아뗀다. 호남에서도 불이 날 수 있으니까 재난 지원 관련 법안에 기권하지 말고 참여하라는 뜻이었다고 변명한다. 조만간 이 정치인이 유감을 표명할지 모른다. 언제부턴가 정치인들은 사과해야 할 때 유감이라는 매우 모호한 말을 애용한다. 말이 혼탁해지다 못해 아예 무의미해지고 있다. 언어를 자기 기분을 표현하는 도구로만 사용하는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는 있어도 갈등을 조정할 수는 없으며 더 큰 협력을 이루어낼 수는 더욱 없다.

※ 이 글은 2025년 10월 13일자 <교수신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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