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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베를린에는 그라피티가 참 많다. 나로서는 그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괴상한 글자들이 도시 곳곳에 그려져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저런 곳에까지 가서 낙서를 했을까 싶은 곳에도 그림 아닌 그림이 그려져 있다. 형형색색의 꼬불꼬불한 글자들 가운데 어떤 것은 예술작품처럼 보이지만 어떤 것은 그저 수준 낮은 낙서처럼 보인다. 유학시절 하루는 친구와 거리를 걷다가 수준 미달의 그라피티를 보고 내가 비웃었더니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연습은 필요한 법이니까.” 그렇다. 누구에게나 연습은 필요하다. 처음부터 바스키아나 뱅크시가 될 수는 없다. 그들에게도 습작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벽에 낙서를 잘 하기 위해서도 일단 벽에 낙서를 해야 한다. 그런데 벽에 낙서를 하려면 낙서할 벽이 있어야 한다. 그러..

헤어프리트 뮌클러/ 2022년 3월 16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탈영웅적 사회들이 비영웅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영웅주의는 모두를 끔찍한 전쟁으로 끌어들인다. 그 대신 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다. 한 사회를 ‘탈영웅적’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그 사회가 영웅적이지 않다는 진단과 같은 것이 아니다. 비영웅적unheroisch 사회가 하루아침에 영웅적이 될 수는 없다. 탈영웅적postheroisch 사회는 더욱 그렇다. 칼 슐뢰겔은 자신의 기고문 「러시아 도시들의 어머니 위로 폭탄을」(Bomben auf die Mutter der russischen Städte, F.A.Z. 2022년 3월 12일)에서 “‘탈영웅적 시대의 시작’(헤어프리트 뮌클러)”이라는 말은 “무지의 표시, 현학적 태도일..

대선 사전 투표 시작을 하루 앞둔 지난 3월 3일 아침,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전격 사퇴했다. 3월 2일 무등일보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두 사람이 단일화하는 경우에도 여전히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오차범위 내에서 경합한다. 안철수 후보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가 고스란히 윤석열 후보로 이전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단일화가 두 사람이 의도한 대로 윤석열 후보의 당선에 기여하게 될지, 아니면 안철수 후보 지지자의 분열과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을 가져와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질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이재명과 윤석열, 어느 쪽이 당선되더라도 문제라는 말이 있었다.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권력 구도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재명 후보가 ..

“푸틴은 제국적 기회주의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의 생각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 2022년 3월 2일) „Putin ist ein imperialer Opportunist“ - Politikwissenschaftler über Ukraine-Krieg Forscher Herfried Münkler über russische Phantomschmerzen und die Unehrlichkeit des Westens im Umgang mit der Ukraine. Ein Interview. www.fr.de 인터뷰: 바샤 미카(전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편집장) 뮌클러 교수님, 러시아는 자기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건가요? 러시아가 꿈꾸는 것이 그 것뿐만은 아니겠죠. 그러나 적어도..

헤어프리트 뮌클러, “우크라이나가 패했다” (2022년 2월 24일 차이트 온라인) Herfried Münkler: "Die Ukraine ist verloren" Der Westen habe keine Vorstellung vom Gegner Russland gehabt, sagt der Politikwissenschaftler Herfried Münkler. Was sind die geopolitischen Folgen des Ukraine-Kriegs? www.zeit.de 서방이 러시아라는 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는 말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정학적 결과는 무엇일까? 인터뷰: 닐스 마르크바르트 헤어프리트 뮌클러는 베를린 훔볼트대학 명예교수이며 수많은 책의 저자이다..

내가 대머리가 될 것을 예감한 것은 20대 후반의 일이다. 모친이 물려준 유전인자가 환경적 요인과 결합해 정해진 때보다 일찍 발현한 것이다. 석회 성분이 많은 베를린의 물과 독일어로 공부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그 이른 발현의 원인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미용실에서 정기적으로 그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또 다른 스트레스였다. 하루는 미용사에게 이 상황에서 어떤 스타일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 좋겠냐고 물어봤다. 정직한 미용사는 머리카락을 짧게 자를수록 중심과 주변의 농도 차이가 덜 두드러져 보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 뒤로 나는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기계를 사서 집에서 혼자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기 시작한 것이다. 대머리가 되어가는 과정은 주위의 관심 때문에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주위의 한국인 학생들이 내심..

2016년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서베를린의 관광 명소인 일명 ‘깨진종탑교회’ 앞에 들어선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탈취된 트럭 한 대가 돌진한 것이다. 최소 12명이 죽고 48명이 부상을 입었다. 독일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가운데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은 사건이라고 하니 시민들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사건의 여파로 크리스마스 마켓뿐만 아니라 연말 대목을 노리던 관광 산업도 함께 위축됐다. 불안 요소가 남아 있는 곳에 사람들이 방문을 꺼렸고 강해진 안전 조치가 사람들이 기대하던 연말 도심의 모습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라틴어 단어 테러(terror)는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 또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테러는 폭력의 대상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 자..

여당과 제1야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가 결정됐다. 이제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다.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단순단수대표제로 치러지는 선거이다. 단 한 표라도 더 많이 얻는 사람이 이긴다. 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나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도 단순다수대표제로 치러지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대통령 선거는 조금 다르다. 예컨대 호남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표가 자치단체장 선거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사표가 되기 쉽지만, 대통령 선거에서는 그렇지 않다. 호남의 한 표도 중요하다. 그래서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도, 이준석 현 당대표도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해 무릎을 꿇어가며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당사자인 호남민의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런데 호남의 다수 ..

어제 26일 독일에서는 총선이 치러졌다. 누가 새 총리가 될지도 관심사이지만, 수도 베를린에서 실시되는 주민투표의 가결 여부도 관심사이다. 베를린의 임대료 폭등 문제는 이미 국내 언론이 다룬 바 있지만, 대부분 보수 언론은 그러니까 우리도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결론을, 진보 언론은 그러니까 우리도 공공주택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이 문제를 다뤘다. 사안을 다르게 한번 살펴보자.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통일이 된 후 한때 동독의 수도였던 동베를린의 많은 시민들은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아 베를린을 떠났다. 안 그래도 낙후해 있던 동베를린은 사람들이 떠나서 더 낙후하게 됐다. 그 허름한 곳에서 기꺼이 살려는 사람은 가난한 대학생과 예술가, 외국인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기..

올림픽이 끝났다. 근대 올림픽은 국력 경쟁의 한 가지 방식이다. 그저 각국의 대표 선수들이 경쟁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결과로서 각국이 확보하는 메달 자체가 그 나라의 국력과 지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국가들은 측정될 수 있고 비교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경쟁한다. 이런 국가들의 경쟁은 아무리 치열할지라도 힘의 직접적 충돌을 대신하는 한 평화에 이바지한다. 세계대전이 벌어진 때에만 올림픽이 개최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올림픽이 전쟁의 대리물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경기가 국가간 전쟁의 순화 형태라면 정당간에 치러지는 선거는 내전의 순화 형태이다. 주기적으로 치러지는 선거를 통해 경쟁하는 정당들이 우열과 승패를 가리는 일이 전쟁과 같다는 것은 오늘날 선거운동을 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