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87년 체제'에 대한 일고찰 본문
‘87년 체제’가 문제라고들 한다. 그래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걸까? 그래서 한번 관련 책을 검색해 봤다. 마침 최근(4월 25일)에 나온 책이 한 권 있다. ‘87체제’를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 함께 쓴 저자의 이름들이 어마어마하다. 김기현, 나경원, 도태우, 복거일, 신평, 윤상현, 전한길, 조정훈, 심지어 윤석열까지. 차마 책을 구입할 수 없어서, 출판사가 제공한 소개 글만 살펴봤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지금의 제6공화정에서 제7공화정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87체제’라는 말을 일단 헌정 체제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친중국, 친북한의 고식적 노선을 벗어나 세계를 향하여 문을 활짝 열고 그와 동시에 내부적으로 자유와 창의의 정신을 더욱 확고하게 사회 운영의 밑바닥으로 앉히는 방향으로 나라를 변모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과거 ‘87체제’의 성립에서부터 시작하여 비상계엄의 발동, 그로 인한 탄핵정국의 과정들을 한번 펼쳐보자.”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마치 윤석열이 계엄을 발동한 이유가 87년 헌정 체제에서 비롯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한다.
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 계엄 선포 직후 거의 모든 계층의 사람이 그가 왜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는지 이해도, 공감도 할 수 없었다. 곧바로 현직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국회에서 의결되고 헌법재판소에서 재판이 빠르게 진행되며 ‘내란몰이’에 의한 살벌한 탄핵정국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참뜻이 국민들에게 전달되었고 그가 싸워온 대상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대상은 탄핵소추를 남발하고 특검법안을 남용하였으며 징벌적 예산편성권으로 국가 기능을 거의 마비시킨, ‘87체제’가 낳은 기득권 질서였다. 이들의 오만하고 교활한 행태에 윤석열 대통령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그 정당성에 대해 국민적 이해와 공감의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이에 청년층을 중심으로 잘못된 ‘87체제’ 기득권 질서에 저항하는 광범한 국민운동이 ‘탄핵 반대’의 기치를 걸고 세차게 일어났다. 눈부신 기적이었다. 탄핵정국에서 전개된 이 엄청난 반전의 파노라마는 ‘87체제’에 대한 저항이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질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필사의 함성이다.”(강조는 인용자의 것)
‘87체제’가 낳은 (기득권 세력도 아니고) “기득권 질서”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이 “탄핵소추를 남발하고 특검법안을 남용하였으며 징벌적 예산편성권으로 국가 기능을 거의 마비”시켰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좋게 해석하자면, 그것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양당의 정치와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비토크라시(vetocracy)일 것이고, 쉽게 얘기해서 그냥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인 상황이 아닌가 싶다. ‘87체제’가 그것을 낳았다고 하는데, 다시 좋게 해석하자면,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가 상대방의 실패에서 반사이익을 누리는 대립적 양당정치를 낳았다는 뜻일 테고, 그 속뜻을 넘겨짚어 말하면, 아마도 우리가 87년 6월 항쟁을 통해 쟁취한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보수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자신들의 속마음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정치적 양극화가 문제라면서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기도 하고,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 ‘민주당의 586 운동권 정치’ 청산을 주장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핵심은 87년 이후 꾸준히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해진 상황을 뒤집을 방법을 찾는 것이고, 그것을 ‘새로운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그 저의를 의심하면, 이른바 ‘정치적 ‘양극화’ 현실의 극복을 주장하는 온갖 목소리들이 그저 순수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그리 귀담아들을 가치가 없는 것 같은 주장을 굳이 언급한 것은, 우선 이것이 보수 진영에서 흘러나오는 정치 비판이나 대안 제시와 묘하게 비슷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87년 체제’라는 말로써 각자 뜻하는 바가 이처럼 다를 수 있고, 그런 만큼 그 극복의 방향과 수단 역시 매우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토론을 위해 먼저 ‘체제’가 무엇인지, 다음으로 ‘87년 체제’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체제 전환’은 어떻게 가능한지 생각해보려고 한다.
1. ‘체제’란 무엇인가
우선, 체제는 ‘레짐(regime)’의 번역어이다. 보통 정부 형태나 정부 성격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정부의 형태나 성격이 그 통치 대상인 사회 혹은 사회성원들과 무관하게 고립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레짐은 정부의 작동, 그리고 정부와 사회의 상호작용을 규율하는 일련의 규칙을 포함하는 말이 되며, 때로는 그런 상호작용 방식의 뒤에 있는 사회문화적 규범까지 포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김종엽 2009, 13). 87년 체제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이런 ‘확장된 레짐 개념’을 따른다고 김종엽은 설명한다.
손호철은 우선 사회체계(social system)와 부분 체제들(partial regimes)을 구분한다(손호철 2017, 133 이하). ‘사회구성체’라고도 부르는 이 사회체계는 “다양한 모든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이며, 이론화를 위해 단순화하면 이를 다시 ‘(정치)경제 체제(system)’와 ‘정치 체제(system)’로 나눌 수 있다고 손호철은 말한다(손호철 2017, 134). 손호철은 또한 한국 사회가 다양한 부분 ‘체제들(regimes)’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가 인용하는 국제정치학자 크래스너(Krasner)의 정의에 따르면, ‘체제’란 “특정 분야에 있어서 행위자들의 기대가 이를 중심으로 수렴되는 명시적 내지 묵시적인 일련의 원칙, 규범, 규칙, 그리고 정책 결정의 절차들”이다(손호철 2017, 135, 각주 6). 손호철은 추상 수준에 따라 사회체계와 그 하위 체제들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복합체인 사회체계를 그 부분 체계인 경제나 정치 체계로 환원해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손호철 2017, 139-140).
체제(레짐) 개념에 대한 다른 접근도 눈여겨볼 만하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이 체제 개념이 “언제나 헌정 체제이거나 노동 체제이거나 정치 체제이거나 혹은 축적 체제로 이해되었을 뿐, 그러한 제도적 변동에 연동되어 있는 사회심리의 체제”에 대한 언급이나 관심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마음의 레짐’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김홍중 2009, 21-22). 그리고 ‘체제’ 개념의 운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명제들을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1) 우리의 사회적 삶은 단순히 제도적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행위자들이 공유하는 의미의 세계를 내포하고 있다. (2) 특정 사회의 구조적 변동은 이 의미의 세계가 변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3) ‘87년 체제’는 단순한 정치 체제가 아니라 그 체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던 가치의 체제, 희망의 체제, 절망이나 눈물의 체제, 고통 혹은 쾌락의 체제, 즉 ‘마음의 레짐’이기도 하다. (4) 이런 ‘마음의 레짐’을 규정하는 연대기적 단위는 87년 체제나 97년 체제 개념이 내포하는 시간적 분할의 단위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김홍중 2009, 22)
김홍중이 생각할 때, 사회적 행위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암묵적이고 집합적인 ‘마음’은 하나의 ‘레짐’이고, 그것은 사회적 행위자들의 습관화된 행동 패턴을 지도하며 사회적 행위의 조형에 영향을 끼친다(김홍중 2009, 23). 앞에서 김종엽이 ‘정부와 사회의 상호작용 방식 뒤에 있는 사회문화적 규범’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체제’를 정의한 것과 다소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김홍중의 ‘마음의 레짐’ 개념을 언급한 이유는, 우리가 ‘87년 체제’를 무엇으로 이해하건 간에, 그 변화를 생각할 때, ‘마음’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2. ‘87년 체제’는 무엇인가
논의의 편의상 손호철의 설명을 빌리려고 한다. 아래 표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체제(system) 변화를 보여준다.
48년 체제 | 61년 체제 | 87년 체제 | 97년 체제 | |
정치 | 권위주의 (극우반공체제) |
권위주의 (종속적 파시즘?) |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 | |
(정치)경제 | ‘시장경제’ | 발전국가 | (약화된) 발전국가 | 신자유주의 |
종속적 자본주의 |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 |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 | ||
테일러주의 | 테일러주의 → 포드주의 | 포스트포드주의 |
손호철은 해방 후 한국 사회가, 위의 표가 보여주듯이, 크게 네 차례의 체계적 수준의 변화를 겪었다고 주장한다. ‘87년 체제’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정치주의적 편향을 비판하기 위해 손호철은 ‘97년 체제’를 강조하지만, 그러니까 정치적으로도 97년에 어떤 체제 전환이 일어났다는 뜻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87년 체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97년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체제 전환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97년 체제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5.16 쿠데타 이후 등장한 61년 체제의 장기 지속을 끝내고 한국 경제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손호철에 따르면, “97년 체제는 (정치)경제 체제라는 면에서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발전국가를 완전히 해체하고 영미식 신자유주의를 전면화한, 전혀 새로운 체제이다”(손호철 2017, 146).
손호철은 정치적 측면에서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87년 체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자발적 탈권위주의화와 재권위주의화가 반복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97년 이후) 경제적으로 ‘우파’ 신자유주의 노선에서 ‘좌파’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또는 그 반대로 부분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강조해 ‘정치적 민주주의 체제로서의 97년 체제’를 이야기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87년 정치 체제(system)의 하위 체제(regime)에 불과하고, 노무현 정권의 경제 정책과 이명박 정권의 경제 정책을 구분하더라도 그것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system) 안에서의 부분 전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손호철은 정치 체제로서의 87년 체제의 특징이 “종속적 파시즘 내지 관료적 권위주의라고 불리던 억압적 정치체제의 해체”라고 설명한다(손호철 2017, 145). 사람들이 흔히 관심을 가지는 ‘헌정 체제(constitutional regime)’는 이 87년 체제의 부분 체제에 불과하다(손호철 2017, 151). 이 헌정 체제의 특징은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중심으로 국회의 행정부와 사법부 견제권을 강화해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고, “이밖에 헌법재판소 제도 도입, 언론, 출판,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제와 검열제 금지, 경제의 민주화 규정, 여성, 노인, 청소년, 신체장애자의 복지 향상 규정 보완 등을” 한 것이다(손호철 2017, 152). 과거의 헌정 체제와 비교했을 때, 87년 헌정 체제는 72년 유신체제의 대통령 간선제, 기본권 제한, 80년 전두환 독재체제의 7년 단임제, 69년 체제의 대통령 탄핵소추 요건 강화 등의 요소를 극복하면서 전반적으로 국회의 권한을 강화한 특징이 있다. 말하자면, (4ㆍ19 이후 등장한) 60년 체제의 의회주의적 요소를 강화하고, (5ㆍ16 군사쿠데타 이후 등장한) 62년 체제의 대통령제적 요소를 약화한 것이다.
손호철의 설명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한국 사회체제의 여러 하위 체제 가운데 하나로서 ‘분단 체제’를 언급하는데, 그 추상성을 낮출 경우, 그것을 다시 48년 또는 53년 이후 지속되어 온 ‘적대적 분단’(적대적 대립) 체제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평화공존적 분단’(비적대적 평화공존) 체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손호철 2017, 157). 87년 체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은 없지만, 87년의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 체제의 구체적 작동 과정에서 ‘분단 체제’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중요하게 작용하며, 그러므로 우리가 ‘분단 체제’의 극복을 이야기할 때 추상성의 두 수준을 나누어 이야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또 다른 하위 체제인 ‘정치균열 체제’와 관련해 손호철은 “45년 체제가 한국전쟁과 함께 해체된 뒤, 53년 체제가 한국 정치를 지배”해왔는데, 그것을 “전후 한국정치를 지배해온 기본틀로서 분단체제가 완결되면서 진보세력이 소멸하고 억압적 정치체제가 일상화되면서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이 모든 것을 압도한 체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1980년 5·18 광주학살과 함께 진보세력이 부활하고 ‘진보 대 보수’가 ‘민주 대 반민주’의 부차적 균열 구조로서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을 손호철은 ‘80년 체제’라고 부른다. 그리고 87년 민주화와 함께 87년 체제가 등장했고, 이것이 “‘지역주의’ 내지 ‘지역균열 구도’의 압도적 우위 아래 (약해졌지만 소멸하지 않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와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진보 대 보수 구도가 부차적 균열 구조로 결합해 있는 체제”라고 설명한다(손호철 2017, 158). 그렇다면, 정치균열 체제로서의 87년 체제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을까? 지역균열 구도가 여전히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역균열 구도와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결합한 상태에서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이제는 오히려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진보 대 보수 구도가 부차적 균열 구조로서 결합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어쨌거나 근본적 변화가 없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87년 체제가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87년 체제’를 말하고 있지만, 각자 다른 수준에서 이야기하고 있고, 그래서 또 각자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어떤 이는 과거의 발전국가 경제체제와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 체제가 결합해 있던 사회체계(system)를 의미하고, 또 어떤 이는 5년 단임 대통령제로 대표되는 87년 헌정 체제(regime)를 의미하며, 또 어떤 이는 특히 선거나 정당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된 정치균열 체제를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런 통합적 사회체계로서의 87년 체제(system)는 죽었다고, 그래서 극복해야 할 것은 87년 체제가 아니라 경제 체계의 신자유주의적 전환 이후의 ‘97년 체제’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내고 의회중심제나 4년 중임 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이는 양당제와 승자독식의 다수결 민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비례대표제를 강화하고 합의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개헌을 이야기하더라도 어떤 이는 기본권의 강화와 직접민주주의적 요소의 강화를 주장하고, 또 어떤 이는 권력구조 개편을 주장하며, 또 어떤 이는 선거제도 개혁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각 사람의 주장하는 바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그런 만큼 또 다르다. 그런데 그런 체제의 전환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까?
3. ‘체제 전환’은 어떻게 가능한가
손호철은 체제 변화의 원인을 파악할 때도 수준을 나누어 접근한다. 예컨대, 2017년 ‘촛불혁명’과 관련해 그는 가장 표층적인 사건사 수준에 박근혜게이트가 있고, 중간 수준에 87년 헌정 체제,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와 ‘불완전한 민주화’가 작동하고 있으며, 심층에 신자유주의가 낳은 “대중의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손호철 2017, 7). 이를 2024년의 ‘빛의 혁명’에 (다소 기계적으로) 적용해 보면, 변화의 표층 수준에 ‘명태균(윤석열-김건희) 게이트’와 ‘12.3 계엄 사태’가 있고, 중간 수준에 또다시 87년 헌정 체제, 즉 제왕적 대통령제와 ‘불완전한 민주화’가 작동하고 있으며, 심층 수준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후 계속해서 증가하는 ‘대중의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8년 전의 ‘촛불혁명’을 통해 기대하던 ‘2017년 체제’는 등장하지 않았고, 지난 몇 달간의 ‘빛의 혁명’을 통해서도 누군가가 기대하는 ‘2025년 체제’는 등장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문재인과 민주당이 그 기대를 배신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재명과 민주당이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기를 바라거나, 아예 기대를 접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기대의 핵심은 무엇일까? 개헌일까? 아니면 ‘연정’ 수준의 통합 정치를 실천하는 것일까? 신자유주의 노선을 버리고 경제적 민주화를 이루는 것일까? 아니면 정당 민주화와 선거제도 개혁일까? 그렇다면 그런 구조적ㆍ제도적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기껏해야 대통령의 소속 정당만 바뀌는 것으로 명색이 ‘혁명’이 성과 없이 끝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너무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것일까?
과거의 체제 전환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정치적 측면의 87년 체제는 넓게는 61년 이후, 좁게는 72년 이후 꾸준히 누적된 대중의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에 등장할 수 있었다. 그 분노가 대통령 직선제와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쪽으로 맞춰졌기 때문에 개헌도 가능했고 정치 체계의 변화도 가능했다. 경제적 측면의 97년 체제는 IMF 구제금융 사태라는 강력한 외부 충격이 가해졌기 때문에 등장할 수 있었다. 지금 과연 그런 강력한 분노와 충격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헌정 체제(regime) 수준의 변화를 낳을 만큼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의 강한 분노나 다른 제도에 대한 기대가 차곡히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물며 경제적 측면에서건 정치적 측면에서건 간에 체계(system) 수준의 변화를 낳을 만한 거대한 분노나 희망은 더욱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정권(regime) 교체에 대한 지지가 여론조사에서 과반을 넘길 뿐이다.
‘87년 체제’의 극복에 관한 이야기들은 과거의 사회주의적 혁명론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는 것이거나, 정치주의적 편향 속에서 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꼼수로서 개헌을 주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런 각자의 이야기들이 오늘날 인터넷에 기반한 소통 채널들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더 큰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파편화하고 있다. 이런 매체 현실과 소통 양식을 고려할 때, 지난 몇 달 동안 광장에 거대한 두 집단이 모여 각자 (거의)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여전히 확인되는 진리는 그나마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적대’이고, 무엇에 반대해 한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도 무엇을 향해서는 한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종엽, 2009, 「서장: 87년체제론에 부쳐」, 김종엽(편), <87년체제론>, 창비, 11~28쪽.
김홍중, 2009, <마음의 사회학>, 문학동네.
손호철, 2017,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박정희, 87년, 97년 체제를 넘어서>, 서강대학교출판부.
※ 이 글은 2025년 5월 2일 민교협이 개최한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