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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디지털 원어민의 정치 참여와 민주주의의 미래 본문

논문 에세이 번역 책

디지털 원어민의 정치 참여와 민주주의의 미래

공진성 2025. 8. 27. 08:23

12.3 계엄 사태는 정치학을 가르치는 나에게 두 가지 의미에서 충격적이었다. 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양호한 편에 속하던 한국에서 군대를 동원한 친위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우선 충격적이었고, 그런 무모한 시도를 정당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또한 충격적이었다. 12.3 계엄 사태는 나에게 정치학을 연구하는 일도, 가르치는 일도 대충 해서는 안 되겠다는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조금은 비장한 마음으로 지난 1학기 시민참여와 민주정치수업을 진행했다. 전반부에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황을 살펴보고 그 원인을 진단하는 강의를 했고, 후반부에는 시민의 참여에서 민주주의 강화의 방법을 찾는 프로젝트를 학생들이 진행했다. 때마침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서 우리는 선거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 보기로 했다. 학생들의 활동 과정과 결과에서 세 가지 특징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첫째는 학생들이 가짜뉴스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다. 절반 이상의 팀이 가짜뉴스 문제를 다뤘다. 그것이 다루기 쉬운 문제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들이 경험하는 온라인 세계에서는 가짜뉴스 문제가 꽤 심각한 모양이었다.

둘째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시민의 참여활동을 거의 모든 학생이 온라인으로 했다는 사실이다. SNS를 이용해 설문조사를 하거나, 카드뉴스를 만들어 게시하거나, 오픈채팅방을 개설해 토론하는 식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영화 <로스트 라이언즈>에 나오는 대학생들처럼 참전(參戰)까지 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이 이렇게 철저히 온라인으로만 참여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응원봉을 들고 오프라인 광장에 나온 청년들을 보고 이들이 디지털 원어민이라는 사실을 내가 잠시 잊은 것이다.

셋째는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학생들의 참여 옵션에 정당이 아예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강의를 통해 정당 정치에 시민이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강조했건만 학생들은 마치 정당이 조금이라도 관련되면 자신들의 순수성을 의심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당을 멀리했다. 선거 기간이어서 중립을 지키려고도 했겠지만, 학생들은 정당을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할 통로로 이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늘날 대학생들에게 정치는 철저히 온라인으로만 경험된다. 그래서 온라인 외의 다른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거의 상상하지 못한다. 온라인으로 경험하는 정치는 당파적으로 나뉘어 온갖 혐오 표현을 내뱉으며 싸우는 것이다. 그런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다수의 평범한 학생들이 꺼리는 것도 자연스럽다. 정치는 뉴스를 가장한 가짜 정보들이 넘쳐나는 곳이고, 그것들을 유희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노는 곳이다. 문제라고 느끼지만, 학생들은 해결책도 온라인에서 찾는다.

온라인 연결성은 우리에게 많은 능력을 주었지만, 동시에 많은 능력을 빼앗았다. 12.3 계엄 사태가 하룻밤의 촌극처럼 빨리 끝날 수 있었던 것은 디지털 미디어 사회의 온라인 연결성 덕분이지만, 그 전후에 우리가 목격한 온갖 퇴행적 현상들도 그것 때문이다. 정치가 정상화하고 민주주의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오프라인 상호작용을 점점 대체하는 온라인 연결성의 문제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강의실과 캠퍼스에서부터 우리가 잃어버린 능력들을 되찾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유능한 시민을 필요로 하며, 그 능력의 목록에는 오프라인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2025년 6월 23일자 <교수신문>에 '대학정론' 칼럼으로 실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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