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20세기를 가리키는 여러 가지 표현 가운데 하나는 ‘이데올로기의 시대’이다. 20세기에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같은 이념들이 등장하여 서로 경쟁했다는 말이다. 그 이념들이 등장한 것은 물론 좀 더 오래되었지만, 그것들이 전 세계로 퍼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분명히 20세기의 일이니, 20세기를 ‘이데올로기의 시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세기의 80년대와 90년대에 이 ‘이데올로기’라는 단어가 참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서로 자신이 반대하는 세력이 가진 생각을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한쪽에서 상대방이 마치 주술에 걸려 있는 것처럼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하면, 다른 한쪽에서 그런 식의 주장이야말로 반체제적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했다. 중고등..

지난 5월 한 달 동안 많은 사람이 광주를 방문했다. 특히 보수 정치인들의 방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 마침 5.18 기념식이 있기도 했지만, 그 전부터 이미 보수 정치인들이 부쩍 광주를 더 자주 찾고 있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5.18국립묘지에 와서 무릎을 꿇고 참배한 이후 이제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은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서나 선거가 끝난 후 5.18묘지를 맨 먼저 찾아오기까지 한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나 하던 낯선 행동이다. 이런 ‘호남 껴안기’ 행보 덕분인지 국민의힘 지지율이 이 지역에서 무려 두 배나 올랐다고 한다. 보수 정치인들의 이런 행보를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그런데 이들 보수 정치인의 광주 방문 전후의 행적에는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마치 좌우 균형이라도 맞추려는 듯이 대구를..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의 우위가 여전히 압도적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중국의 추격세가 심상치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30년 전 미국은 소련과의 패권 경쟁에서 승리했다. 최후의 승자일 것만 같았던 미국은 30년 뒤 중국이라는 새로운 도전자를 맞게 되었다. 이번 경쟁에서는 누가 승자가 될까? 과연 무엇이 승패를 가를까? 우리가 이 경쟁의 추이를 속 편하게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도, 그러나 또한 우리나라 정당 정치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패권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제국’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독일의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가 쓴 책은 유럽인의 시각에서 쓴 것이어서도 말 그대로 조..

5.18을 우리는 시민들의 덕이 표출된 사건으로 기억한다. 항쟁의 기간 동안 시민들은 서로 도왔고 각자가 가진 것을 나누었다. 고립 속에서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주었고 서로 나누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시민들은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공동체를 위해, 이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참으로 덕의 공동체였고,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그런 공동체로서 모범이 되었다. 최근 그리 유쾌하지 않은 보도들이 이어졌다. 지난 1월, 5.18민주유공자 예우 및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공포됐다. 5월 단체들이 바라던 바였다. 이에 따라 사단법인인 세 단체(구속부상자회, 유족회, 부상자회)는 해산하여 각각 공법단체로 재설립될 예정이다. 그런..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부분이 그렇듯이 대학의 언론도 목적론적으로 도입되어 발전했다. 이른바 선진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진화적으로 출현한 각종 제도와 관행들이 그 선진 사회를 발전 모델로 삼은 후발 국가에서는 당위처럼 받아들여졌다. 근대식 군대와 학교, 병원, 그리고 언론이 그렇게 우리 사회에 도입됐다. 이미 어느 정도 발전한 사회의 제도들을 모방했기 때문에 이 기관들은 아직 그만큼 발전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후발 근대화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대학은, 그곳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문화는 나머지 사회 전체를 선도했고, 대학과 관련된 것은 그래서 뭇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느덧 우리 사회 전체가 발전하여 관계가 역전되기에 이르렀다. 한때 사회를 이끌던 제도와 기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