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내가 대머리가 될 것을 예감한 것은 20대 후반의 일이다. 모친이 물려준 유전인자가 환경적 요인과 결합해 정해진 때보다 일찍 발현한 것이다. 석회 성분이 많은 베를린의 물과 독일어로 공부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그 이른 발현의 원인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미용실에서 정기적으로 그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또 다른 스트레스였다. 하루는 미용사에게 이 상황에서 어떤 스타일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 좋겠냐고 물어봤다. 정직한 미용사는 머리카락을 짧게 자를수록 중심과 주변의 농도 차이가 덜 두드러져 보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 뒤로 나는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기계를 사서 집에서 혼자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기 시작한 것이다. 대머리가 되어가는 과정은 주위의 관심 때문에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주위의 한국인 학생들이 내심..

2016년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서베를린의 관광 명소인 일명 ‘깨진종탑교회’ 앞에 들어선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탈취된 트럭 한 대가 돌진한 것이다. 최소 12명이 죽고 48명이 부상을 입었다. 독일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가운데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은 사건이라고 하니 시민들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사건의 여파로 크리스마스 마켓뿐만 아니라 연말 대목을 노리던 관광 산업도 함께 위축됐다. 불안 요소가 남아 있는 곳에 사람들이 방문을 꺼렸고 강해진 안전 조치가 사람들이 기대하던 연말 도심의 모습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라틴어 단어 테러(terror)는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 또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테러는 폭력의 대상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 자..

여당과 제1야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가 결정됐다. 이제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다.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단순단수대표제로 치러지는 선거이다. 단 한 표라도 더 많이 얻는 사람이 이긴다. 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나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도 단순다수대표제로 치러지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대통령 선거는 조금 다르다. 예컨대 호남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표가 자치단체장 선거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사표가 되기 쉽지만, 대통령 선거에서는 그렇지 않다. 호남의 한 표도 중요하다. 그래서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도, 이준석 현 당대표도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해 무릎을 꿇어가며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당사자인 호남민의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런데 호남의 다수 ..

어제 26일 독일에서는 총선이 치러졌다. 누가 새 총리가 될지도 관심사이지만, 수도 베를린에서 실시되는 주민투표의 가결 여부도 관심사이다. 베를린의 임대료 폭등 문제는 이미 국내 언론이 다룬 바 있지만, 대부분 보수 언론은 그러니까 우리도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결론을, 진보 언론은 그러니까 우리도 공공주택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이 문제를 다뤘다. 사안을 다르게 한번 살펴보자.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통일이 된 후 한때 동독의 수도였던 동베를린의 많은 시민들은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아 베를린을 떠났다. 안 그래도 낙후해 있던 동베를린은 사람들이 떠나서 더 낙후하게 됐다. 그 허름한 곳에서 기꺼이 살려는 사람은 가난한 대학생과 예술가, 외국인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기..

올림픽이 끝났다. 근대 올림픽은 국력 경쟁의 한 가지 방식이다. 그저 각국의 대표 선수들이 경쟁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결과로서 각국이 확보하는 메달 자체가 그 나라의 국력과 지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국가들은 측정될 수 있고 비교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경쟁한다. 이런 국가들의 경쟁은 아무리 치열할지라도 힘의 직접적 충돌을 대신하는 한 평화에 이바지한다. 세계대전이 벌어진 때에만 올림픽이 개최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올림픽이 전쟁의 대리물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경기가 국가간 전쟁의 순화 형태라면 정당간에 치러지는 선거는 내전의 순화 형태이다. 주기적으로 치러지는 선거를 통해 경쟁하는 정당들이 우열과 승패를 가리는 일이 전쟁과 같다는 것은 오늘날 선거운동을 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