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불편함의 미학 동구에는 내가 즐겨 찾는 식당이 하나 있다. 그곳의 화장실에는 ‘화장실’이라는 표시도 없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이나 글자로 된 남녀 화장실의 구분도 없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시 좌우에 두 개의 문이 있고, 그 문 뒤에 똑같은 생김새의 좌변기가 놓여 있을 뿐이다. 사실 그 두 문에는 조그마한 그림이 붙어 있어서 주의 깊은 손님이라면 그림 내용을 통해 어렴풋이 주인이 어느 쪽을 남자 화장실로, 어느 쪽을 여자 화장실로 정해 두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 화장실로 들어가더라도 별 문제는 없다. 어차피 화장실의 모양은 똑같으니까. 미술을 공부한 주인은 아마도 의도적으로 손님들을 불편하게 하려고, 화장실 앞에서 잠시나마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하려고 했을 것이다..
‘호남’ 신당과 감정의 동원 ‘신당’에 관한 얘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신당에 관한 얘기에 일부러 ‘호남’을 붙이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떼기도 한다. 그러나 호남은 늘 논의의 바닥에 깔려 있다. 사람들은 대개 신당이 세워질 것인지를 궁금해 한다. 국민인 우리 자신과 무관하게 국가가, 그리고 유권자인 우리 자신과 무관하게 정당 정치가 그 무슨 법칙과 섭리에 의해 저절로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래서 움직임의 방향을 미리 알고 대응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궁금해 한다. 그러나 정치와 사회는 결코 우리와 무관하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작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어떤 새로운 정당이 과연 무엇에 필요하며, 누구에게 필요한지, 그리고 우리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이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의회에서..
새로운 위험, 낡은 국가: 메르스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제기하는 과제 국가의 본질은 위기시에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전쟁이나 내란으로 인해 국가의 지위가 흔들릴 때 그 본질이 결국 폭력임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 국가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은 외적의 침입에 의한 전쟁이나 혁명 세력이 일으키는 반란 따위가 아닌 것 같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확산이 가져다준 공포는 현대의 위험이 무엇이고 국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과거에 국가는 지배자 또는 지배집단의 소유물이었다. 이들이 국가에 대한 소유를 주장할 수 있었던 근거는 자신들이 국가를 외적의 침입과 같은 위험으로부터 지키고, 그럼으로써 그곳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피지배자들을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지배집단은 그 보호의 대..
2015년 9월 24일 13시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목요강좌
2015년 4월 10일, 드디어 헤어프리트 뮌클러의 이 출간되었습니다. 옮긴이의 글을 올려봅니다. ------------------------- 옮긴이의 말 일본의 식민 제국주의를 겪은 한국인들에게 ‘제국’은 여전히 민감하고 불편한 주제이다.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의 영향 속에서 형성된 한국인들의 반제국주의 의식은 1980년대를 지나며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속에서 사회주의적으로 재해석되었고 일종의 ‘과학적’ 정당성마저 갖추었다. 과학적으로 해명된 이른바 ‘피디PD적’ 반제국주의 의식은 전前과학적이고 여전히 민족이라는 ‘허구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이른바 ‘엔엘NL적’ 반제국주의 의식을 비웃었지만, 저항과 해방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관한 생각만 달랐을 뿐, 모두 반지배적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또한 반제국주의적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