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칼럼] 불편함의 미학 본문
불편함의 미학
동구에는 내가 즐겨 찾는 식당이 하나 있다. 그곳의 화장실에는 ‘화장실’이라는 표시도 없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이나 글자로 된 남녀 화장실의 구분도 없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시 좌우에 두 개의 문이 있고, 그 문 뒤에 똑같은 생김새의 좌변기가 놓여 있을 뿐이다. 사실 그 두 문에는 조그마한 그림이 붙어 있어서 주의 깊은 손님이라면 그림 내용을 통해 어렴풋이 주인이 어느 쪽을 남자 화장실로, 어느 쪽을 여자 화장실로 정해 두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 화장실로 들어가더라도 별 문제는 없다. 어차피 화장실의 모양은 똑같으니까. 미술을 공부한 주인은 아마도 의도적으로 손님들을 불편하게 하려고, 화장실 앞에서 잠시나마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하려고 했을 것이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일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적지 않은 기쁨과 성숙을 가져다준다. 우리의 정신과 감각을 살아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익숙하지 않은 곳을 찾아가기도 하고 불편함을 자초하기도 한다. 여행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낯선 곳을 일부러 찾아간다. 자기 집에서 몇날 며칠을 쉬는 것보다 더 큰 재충전 효과를 때로는 지극히 낯선 곳을 여행하는 일이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저 환경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근무 환경을 바꾸거나, 퇴근하여 집에서 쉬거나, 출퇴근하는 수단과 경로를 바꾸거나, 퇴근 후에 직장 동료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에서 새로움을 경험하고 낯선 쾌감을 느낄 수 있다.
현대 사회에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많은 장소가 있다. 호텔, 고급 식당, 예배당과 절, 미술관과 공연장이 그런 곳이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평소에 이용하는 익숙한 공간이 아니고 평소와는 다르게 지켜야 하는 낯선 규범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기회가 되는 대로 그런 장소를 찾아간다. 자신을 잠시나마 익숙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궁극적으로 성숙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편함을 참으며 침묵하고, 좀이 쑤시는데도 두세 시간을 참고 앉아 있으며, 졸음을 견뎌가며 연주를 듣고, 익숙하지 않은 식사 도구를 이용해 음식을 먹는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크게 의식하지 못하는 일상 속의 미적 체험이고 문화 과정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머무르는 공간을 철저히 자기 집 안방처럼 만들고, 어느 곳에서나 자기 집 안방에서처럼 행동한다. 아무 데서나 신발과 양말을 벗고 드러눕고, 큰 소리로 떠들고 돌아다니며, 손톱을 깎고 다듬고 화장을 하며, 자기가 일하는 곳을 퇴근 따위는 하지 않을 기세로 자기 집처럼 꾸민다. 자기가 머무르는 모든 곳을 자기에게 익숙한 곳으로 만들거나 제아무리 낯선 곳에서도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집에서처럼 편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공간의 기능적 분화가 철저히 이루어진 사회에서라면 이런 ‘파격적’ 행동이 오히려 사람들의 익숙한 감각을 흔드는 미학적 도발이 될 수 있겠지만, 광주에서 내가 심심치 않게 목격하는 저런 행동은 미학적 도발과는 거리가 멀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부분 개관했다. 시범운영중인 전당의 부족한 부분들을 지적하는 소리들을 듣게 된다. 차차 개선되리라 믿는다. 그런데 일부 지적은 그저 그 (기관과 사람을 포함한 의미의) 공간이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그 공간을 처음 접한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하고,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던 공간과 달라서 불편하다는 것이다. 모든 공간이 내 집 안방처럼 편하고 익숙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기꺼이 허용해야 할, 우리를 새롭게 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불편함에는 너무 성급하게 불만을 표시하고, 정작 허용해서는 안 될 이기적인 편리함과 익숙함의 추구에는 너무도 관대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광주에 새로 생긴 이 낯선 공간, 그래서 여러모로 불편한 이 공간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곳이 되지 않기를, 그 불편함을 우리가 기꺼이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2015년 9월 14일자 <광주드림>에 칼럼으로 실린 것입니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