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가능성이 막힌 사회, 판이 바뀌길 바라는 사람들 얼마 전에 나는 칠순을 넘기신 어르신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분은 요즘 사람들이 힘들다, 어렵다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전쟁도 겪고 보릿고개도 겪은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정말로 오늘날 사정이 그렇게 어려운지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예전에는 어려워도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이 열심히 살았는데, 요즘은 사람들이 열심히 해보려고도 하지 않고, 세상을 그저 비관적으로만 여기며, 때로는 마치 정말 위기가 닥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상황이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씀하셨다. 현상적으로는 그리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과거와 사뭇 다른 것 같다고 나는 말..
비논리적인 주장은 그저 비논리적인 주장일까 논리적인 사고와 주장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게 해준 사건이 얼마 전에 있었다. 오는 4월 개통 예정인 호남선 KTX의 운행 노선과 관련한 문제였다. 사건의 발단은 코레일이 신설 호남선 KTX의 ‘일부’를 서대전역을 경유하게끔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었다. 즉각 반대 주장이 제기됐다. 서대전역을 경유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와 근거가 지극히 비논리적이었다. 서대전역 경유를 반대하는 주장의 논리적 구조는 간단했다. 신설 호남선 KTX가 서대전역을 경유하는 것은 일단 약속을 어기는 것이며(1), 고속철을 ‘저속철’로 만드는 것이고(2), 호남민에게 손해가 되므로(3), 서대전역 경유 계획을 백지화하고 호남선 KTX를 애초의 계..
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한다(7) 아렌트와 ‘생각’하는 인간 팔자 좋게도 1년이 넘게 유럽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혹시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광주에 있습니다. 글을 쓸 때에만 잠시 마음으로 유럽에 가 있을 뿐입니다. 유럽에서 머물렀던 때를 떠올리며, 유럽과 광주를 교차시키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점점 얘깃거리가 떨어져 가고 기억도 가물가물해져서 걱정입니다. 조만간 다시 유럽에 다녀와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어느 도시에 가면 좋을까요? 우리는 보통 ‘유럽’에 간다고 말합니다. 제한된 수의 나라와 도시를 방문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시아’에 간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유럽의 국경 개념이 우리와 같지 않아서 이동이 편하고, 또 도시의 역사가 국가의 역..
박수 우리말로 ‘박수’라고 부르는 행위는 분명히 전래의 관습은 아닐 것이다. 조선시대에 적어도 궁궐에서 사람들이 오늘날과 같은 의미에서 손뼉을 쳤다는 기록은 없다고 한다. ‘박장대소’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봐서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출 과정에서 두 손바닥을 마주치는 일은 분명히 있었겠지만, 의례적으로 손뼉을 치는 일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한국말에서는 ‘치는’ 행위보다 ‘손뼉’이 더 강조되지만, 서양에서 손뼉은 소리를 내는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박수갈채를 뜻하는 유럽어 단어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향해(ad) 소리 나게 내리친다(plaudere)는 뜻의 라틴어 동사(applaudere)에서 나왔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치고 때리고 두드린다. 대학에서 학생들은 마치 노크하듯..
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한다 (6) 유럽의 시청들 얼마 전에 광주시에서 시청을 좀 더 시민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해 ‘시작(市作)’이라는 이름을 걸고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모으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시청의 변화에 반영될지 무척 궁금합니다. 아이디어를 보태는 마음으로 오늘은 제가 유럽에서 본 시청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시청을 ‘오뗄드빌(hôtel de ville)’, 즉 마을 궁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보통 고급 숙박시설 정도로 알고 있는 ‘호텔’이 프랑스에서는 원래 왕의 궁전이나 귀족들의 대저택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파리 시내에서 ‘오뗄(Hôtel)’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을 보고 착각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왕을 그 정점으로 한 신분 질서가 무너지면서 한때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