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정치는 어려워

[칼럼] 호남 신당과 감정의 동원 본문

논문 에세이 번역 책

[칼럼] 호남 신당과 감정의 동원

공진성 2016. 1. 10. 11:20

호남신당과 감정의 동원

 

신당에 관한 얘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신당에 관한 얘기에 일부러 호남을 붙이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떼기도 한다. 그러나 호남은 늘 논의의 바닥에 깔려 있다. 사람들은 대개 신당이 세워질 것인지를 궁금해 한다. 국민인 우리 자신과 무관하게 국가가, 그리고 유권자인 우리 자신과 무관하게 정당 정치가 그 무슨 법칙과 섭리에 의해 저절로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래서 움직임의 방향을 미리 알고 대응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궁금해 한다. 그러나 정치와 사회는 결코 우리와 무관하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작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어떤 새로운 정당이 과연 무엇에 필요하며, 누구에게 필요한지, 그리고 우리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이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의회에서 유권자를 대표하려는 사람들이 스스로 조직하는 것이다. 유권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표하는 일에 정당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신당의 필요성은 기존의 정당들이 유권자의 이해와 요구를 충분히 잘 대표하지 못하거나, 아예 대표하지 않을 때에 제기될 것이다. 지난 세기 말의 신당 논의는 대개 기존의 정당 체계에서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대표할 진보적정당의 건설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신당 논의는, 마치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표하는 문제는 다 해결된 일인 양,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호남이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다른 사람은 호남에 제대로 된 정당 경쟁의 도입을 주장하면서, 또 다른 사람은 전국적인 개혁 정당의 건설을 외치면서 신당 건설을 얘기한다. 그러나 도대체 누구를 대표하겠다는 것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신당이 무엇에 필요한가를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결국 이런 의심을 품게 된다. 신당 논의가 혹시 호남 출신이라는 자신의 정체성 빼고는 아무런 사회적 불편함도 느끼지 못하는 엘리트의 자기 필요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물론 엘리트간의 경쟁은 필요하다. 공직을 차지하려는 정당 엘리트들 사이의 정책과 비전 경쟁은 유권자의 이익 실현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 그러나 현재 야권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엘리트들 사이의 파벌 경쟁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사적 도구로서 호남의 소외감이나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서의 호남의 자부심을 동원하는 것은 호남 유권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나아지게 하는 데에도, 그리고 호남이라는 지역 정체성의 사회적 인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권자에게 필요한 것은 엘리트들의 실력 경쟁이지, 엘리트의 자리 보전을 위해 유권자의 감정을 선동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는 유권자들은 여전히 많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정당의 필요성은 여전히 있다. ‘호남이 그 어떤 소외된 것의 이름이고, 그러므로 호남을 대표할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껏 정당이 없어서 그 사람들과 호남이 대표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표되기 위해서도 대표할 수 있는,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는, 힘 있는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유권자 나름의 합리적 생각이 현재의 양당 경쟁 체계를 만들었고, 이 체계 안에서 사회적 약자의 소외는 계속됐으며, 여야를 막론하고 영남패권주의가 생겨났으며, 호남 출신 정치 엘리트의 불만도 쌓여갔다. 지금껏 여권과 야권 모두에서 수많은 탈당과 분당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유권자의 감정이 과도하게 자극되고 동원되었지만, 모두 선거를 앞두고서 선거 연대나 합당으로 귀결되었다. 그 모든 일은 정작 누굴 위한 것이었을까? 우리 유권자는 과연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이 글은 2015년 8월 3일자 <광주드림>에 칼럼으로 실린 것입니다. (링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