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5월에는 광주에 많은 손님이 찾아온다. 5월 18일 공식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그날을 비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그저 사람이 많이 몰리는 때를 피해 늦게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10일간의 항쟁이 끝난 뒤 죽은 누군가를 추모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지난 5월 27일에도 김의기 선배의 죽음을 추모하는 서강대 후배들이 광주를 찾았다. “피를 부르는 미친 군홧발 소리가 고요히 잠들려는 우리의 안방에까지 스며들어 우리의 가슴팍과 머리를 짓이겨 놓으려고 하는 지금,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무참한 살육으로 수많은 선량한 민주시민들의 뜨거운 피를, 뜨거운 눈동자와 가슴을 오월의 하늘 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봉기가 유신잔당들의 악랄한 언론탄압으로 왜곡되고 거짓..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다.” 그렇다. 여행을 하려면 돈도 있어야 하고 시간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행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공부도 기본적으로 시간과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정치 역시 그렇다. 과거에 정치는 경제적 필요에서 해방된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정치는 통치를 의미했다. 타인을 물리적 힘으로 제압한 사람들이 보호를 대가로 경제적 생산물을 수취함으로써 스스로 경제활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정치(통치)에 전념할 수 있었다. 왕정이나 귀족정이 그렇게 운영되었다. 그러나 고대의 민주정도 사실은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노예제 덕분에 각자의 가정에서 왕이 된 사람들이 모여 다만 민주적으로 국가를 운영했던 것이다..

선거법 개정에 대한 의견을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곤 한다. 언론의 요청도 있지만, 국회의 요청도 있다. 작년 11월에도 그런 토론회가 지역에서 열렸고, 참석해서 내 생각을 말했다. 학자로서 나는 특정 선거 제도의 효과, 장단점, 도입 가능성, 목적에 부합하는지 여부 등에 대한 의견을 말할 뿐, 어떤 제도를 특별히 더 선호해 도입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학자에게 의견을 묻는 사람은 그런 영양가 없는 대답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나 ‘우리’에게 유리한 제도를 옳거나 좋은 제도로 포장해 권위 있는 누군가가 말해주기를 바란다. 예의 토론회에서 나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지만, 주최 측의 의도에 따라 마치 그런 것처럼 보도되었다. 비례성과 대표성의 강화가 개혁의 방향이어야 ..

‘네다꼰’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직접 듣거나 써본 적은 없다. 어디까지나 글로 배운 말이다. ‘네, 다음 꼰대!’의 줄임말인데, 누가 일장 훈계를 늘어놓으면 그것을 세상 흔한 꼰대질로 요약하며 거부할 때 사용하는 인터넷 언어라고 한다. ‘다음 소희’라는 영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왠지 모르게 이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훈계질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수많은 ‘꼰대’들, 그리고 한 명의 꼰대를 물리치면 또 다른 꼰대가 나타나듯이, 수많은 ‘소희’들이 줄을 서 있고, 한 명의 소희가 사라지면 다음 소희가 그 자리에 들어서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며칠 전, 그 영화를 봤다. 영화는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생인 소희가 통신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면서 겪는 일을 소재로 하고 있다. 2017년 전주에서..

추운 겨울을 집에서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다. 그런데 이 행운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가 없다. 겨울철을 따뜻하게 보내게 해주는 가스보일러도 물이 있어야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 가뭄 탓에 조만간 호남 지역에 수도 공급이 제한될지 모른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추운 겨울이라도 지난 후에 수도 공급이 제한되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만약 그 전에 제한되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인들이 많이 사는 독일의 상황이 걱정된다. 그곳은 물이 아니라 가스가 문제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 공급이 줄어서 안 그래도 춥게 사는 독일 사람들이 올겨울에는 평소보다 더 춥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 필요한 가스의 80퍼센트 정도를 확보했다느니, 그래서 실내 온도 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