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87년 체제’가 문제라고들 한다. 그래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걸까? 그래서 한번 관련 책을 검색해 봤다. 마침 최근(4월 25일)에 나온 책이 한 권 있다. ‘87체제’를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 함께 쓴 저자의 이름들이 어마어마하다. 김기현, 나경원, 도태우, 복거일, 신평, 윤상현, 전한길, 조정훈, 심지어 윤석열까지. 차마 책을 구입할 수 없어서, 출판사가 제공한 소개 글만 살펴봤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지금의 제6공화정에서 제7공화정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87체제’라는 말을 일단 헌정 체제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친중국, 친북한의 고식적 노선을 벗어나 세계를 향하여 문을 활짝 열고 그와 동시에 내부적으로..

최근 몇 달 동안 벌어진 일들은 8년 전의 상황을 훨씬 더 나쁜 형태로 반복하고 있다. 8년 전에 최순실 게이트가 있었다면, 지금은 김건희(명태균) 게이트와 12.3 계엄 사태가 있고, 8년 전에 그 원인으로 ‘제왕적 대통령제’가 지목되었다면,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것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8년 전 광장에 분노한 대중이 있었다면, 지금 광장에는 각기 다른 이유로 분노한 대중들이 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문제의 그 구조를 흔히 ‘87년 체제’라고 부른다. 당연히 반론이 나온다. 헌법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냐는 것이다. 헌정 질서를 수호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 이상한 짓을 한 것이 문제인데, 왜 헌법 탓을 하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백번 ..

3년 넘게 끌어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곧 멈출 듯하다. 무관한 제3자의 입장에서는 종전(終戰)이 더 좋겠지만, 이대로 영토를 빼앗긴 채 끝낼 수 없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휴전이 차선일 것이다. 내심 만족스럽지만 그런 내색을 할 수 없는 러시아 입장에서도 ‘휴전’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러시아는 이 전쟁을 ‘특수군사작전’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휴전이 아니라 ‘작전 중지’일지도 모르겠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러시아 국가의 침략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쟁’ 표현을 사용한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사는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며 ‘전쟁’ 표현을 극구 삼갔다. 이는 전쟁이 국가간의 군사적 행위이며 이 행위를 규제하는 국제법이 침략을..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흔히 뱀은 인간을 타락시킨 원흉으로 여겨지곤 한다. 인간의 범죄와 타락을 결과로 놓고 그 원인을 간교한 뱀의 유혹에서 찾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징적 사건을 기록해 놓은 「창세기」를 스피노자와 함께 잘 들여다보면 다른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창세기」 2장은 “사람과 그 아내가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이어지는 3장에는 사람(아담)과 그 아내(하와)가 금지된 열매를 먹고 눈이 열려서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저녁에 하느님이 사람을 찾았을 때, 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된 사람을 동산에서 내쫓으며 하느님은..

“신호등이 꺼졌다.” 최근 며칠간 독일 관련 뉴스에 등장한 표현이다. ‘신호등 연정’은 독일의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사회민주당, 녹색당, 자유민주당의 상징 색이 각각 빨강, 초록, 노랑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 사회민주당 소속의 숄츠 총리가 연립정부의 한 축을 구성하던 자유민주당 소속의 린트너 재무장관을 해임했다. 그가 연립정부 구성 당시의 합의에 어긋나게 행동한다는 것이 그 사유였다. 이로써 연립정부가 무너졌다.숄츠 총리는 애초에 내년 예산안 처리를 마치고 성탄절 연휴를 보내고 나서 내년 초에나 자신에 대한 의회의 신임 여부를 물을 계획이었다. 그때에도 의회의 다수가 자신을 여전히 지지하면, 비록 ‘신호등 연정’은 깨졌지만, 자신이 정부를 계속 운영해 갈 생각이었고, 만약 의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