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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한다(5) 도시와 사람의 흔적 여행의 동기는 사람마다 다를 듯합니다. 어떤 사람은 산해진미를 찾아 여행을 하겠지만, 저에게 음식은 그다지 여행의 동기가 되지 못합니다. 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사람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건 이미 죽은 사람이건 간에 만나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는 일은 언제나 저를 설레게 합니다. 물론 거기에 음식이 함께하면 더 좋겠죠. 그러나 음식만을 위해 어느 곳을 찾아간다는 것은 아직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베를린의 시내 중심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철학자 헤겔이 묻혀 있는 것으로 유명한 공원묘지가 하나 있습니다. 그곳에는 유명한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그의 부인 헬레네 바이겔의 묘도 있습니다. 부부가 마지막 생을 보낸 집이 그 공원묘지 옆에 있..
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한다(4) 도시의 여름, 물이 있는 도시 유럽 선진국의 시민들이 1년에 한 달 여의 휴가를 즐긴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휴가만 긴 것이 아니라 평소의 노동 시간 자체도 짧습니다. 한 달 휴가를 즐기는 대가로서 나머지 열한 달 동안 과로를 해야 한다면 긴 휴가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튼 유럽인들이 긴 휴가를 즐기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심지어 도시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때 비어 있는 도시를 채우는 사람은 관광객과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멀리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시민들입니다. 베를린 유학 시절의 일입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저는 어느 치과 병원 청소 일을 하고..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7 자유주의 / 번역: 공진성 루돌프 피어하우스가 쓴 이 책은 ‘자유주의’라는 정치적 개념이 어떻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외연과 내포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묘사한다. 저자는, 또는 이 시리즈의 공통된 입장은, 그 과정을 마치 목적론적으로 미리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지 않는다. 마치 어떤 과일 나무의 모습이 그 과일의 씨에 이미 유전적으로 숨어 있듯이, 정치적ㆍ사회적 개념의 최종적 의미가 그 개념이 등장하기도 전에, 다만 말로써 표현되지만 않았을 뿐,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 반대로, 사람들이 흔히 자명한 것처럼 여기는 ‘자유’라는 말이 역사 속에서 얼마나 다양하게 이해되어 왔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는지, 그리고 개념의 내포와 외..
2014년 1월부터 격월로 발행되는 조선대학교 소식지에 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9월에 다섯 번째 글이 실렸는데, 1회부터 5회까지의 글을 묶어 올립니다.
상식을 상식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집단이 있다. 바로 대학생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노동력을 제공하고 급여를 받는 노동자가 될 것임이 지극히 당연한데도 초ㆍ중등교육에서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구체적 지식과 기술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성인이 되어 이런저런 형태로 노동을 할 때 자기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다. 명색이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 그런 지식과 기술을 뒤늦게 가르치는 것도 어색하지만, 장벽은 또 있다. 여전히 많은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이미 노동자일 뿐만 아니라 장차 노동자가 될 것임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노동(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중에 행여 경영자가 되었을 때 노동(자)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상식의 확인과 회복을..
민주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아무도 특권을 굳이 먼저 포기하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참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대중에게 정치에 참여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참여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자기에게 그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기란 어렵다. 참정권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주장했다. 정치에 참여할 능력이 없는 사람도 누가 그런 능력을 가졌는지, 또 그들 가운데 누가 더 나은지 정도는 분별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일종의 타협책으로서 대중에게는 정치에 직접 참여할 권리 대신에 참여할 사람을 선택할 권리, 즉 투표의 권리가 주어지게 되었다. 물론 그 투표의 권리조차도 지금처럼 모든 성인 남녀에게 부여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1948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선거가 치러졌다. 헌법을 제..
2014년 4월 16일은 최소한 한국인에게 잊히지 않을 중요한 날이 될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 날을 어떤 날로서 기억해야 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아직은 사태를 더 수습해야 하고, 수많은 무고한 죽음을 더 애도해야 한다. 이 날의 의미는, 잊지만 않는다면, 천천히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드러난 부실한 안전 조치들은 지금 당장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사법적ㆍ정치적 책임은 나중에 물어도 되지만, 안전 조치는 지금 당장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당국에서 검사할 때 취한다고 하면 똑같은 사태가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그 동안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경쟁에서 어떻게든 이기려고 온갖 위험을 무릅써왔고, ..
책 사이에는 지식이, 빵 사이에는 고기가 파리 동남쪽에는 매우 특이한 모양의 거대한 도서관이 하나 있습니다. 이 도서관에는 어떤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 주인은 바로 프랑수아 미테랑이라는 프랑스 최장수 대통령입니다. 그는 (지금은 5년으로 바뀌었지만) 임기 7년의 대통령직을 연임하여 14년 동안 대통령으로서 일했습니다. 그의 두 번째 임기 때 세워진 도서관이 바로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입니다. 독일 베를린의 국립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이 도서관도 이용을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합니다. 참고문헌실을 하루 이용하기 위해 3.5유로, 우리 돈으로 5천 원 가량을 내야 합니다. 제가 파리에 머물던 시기에 아주 운이 좋게도 주말에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어서 토요일 아침에 길을 나섰습니다. 파리의 남쪽 국제대학..
더 다양할수록 더 완전하다 파리의 남쪽 끝에는 대규모의 국제대학기숙사촌(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de Paris)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각국에서 파리로 유학 온 학생과 연구자, 예술가들이 먹고 자는 곳입니다. 130개 이상의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니 그 사실만으로도 놀라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유명한 것이 단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국적이 다양하고 그 수가 많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곳에 있는 40개의 ‘메종’이 그 집에 이름을 부여한 40개의 국가에 의해 지어졌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예컨대, 인도관, 캄보디아관, 일본관, 이탈리아관, 스위스관이 있습니다. 때로는 각각의 집에 고유의 이름이 붙어 있기도 합니..
그 도서관은 아직 거기 있을까 연재를 시작할까 합니다. 가물가물해진 기억의 끈을 조심스레 붙잡고 유럽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결국 광주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저를 통해 광주가 유럽을 만났고, 또 유럽이 광주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도서관을 좋아합니다. 도서관장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곤 할 정도입니다. 도서관의 맛을 알게 된 것은 사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였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일명 ‘독서실’과 도서관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도서관 이용과 관련한 교양과목을 수강하면서 처음으로 개가식 도서관의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에는 온갖 책이 학문분야별로, 그리고 주제별로 나뉘어 꽂혀 있었습니다. 목사인 아버지의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