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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제국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세계사 지은이 스티븐 하우 (뿌리와이파리, 2007년) 상세보기 '오늘'은 내가 이 책 원고 작업을 거의 끝마치기로 되어 있는(그러면 좋겠지만) 2002년 2월 14일이다. 제국에 대해 다루므로 편협해보이는 지역주의적인 태도는 피해야겠지만, 어쨌든 나는 오늘 런던에서 발행된 주요 신문들을 살펴볼 것이다. 물론 원칙적으로 전 세계의 모든 신문들을 훑어볼 수 있다. 내 언어능력의 한계만 극복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이것은 인터넷이라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덕분이다. 지나치게 흥분한 듯한 평론가들은 이것도 새로운 종류의 글로벌 제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영국의 신문들만 읽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다. 영국 신문들은 전 세계에서 이야기를 가져온다. 그리고 거기에 실린 거의 모든 이..
독일 유학중의 일이다. 장시간 논문작성을 위해 앉아 있다 보니 건강이 점점 안 좋아졌다. 척추 주변의 신경이 눌렸는지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며 차라도 마시면서 ‘신경’을 누그러뜨릴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 결국 모든 게 신경성이란 말인가. 주의를 가끔씩이라도 분산시킬 활동이 필요했다. 유학 초기엔 그래도 이래저래 할 일들이 많았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도 많았고 수업에도 들어가야 했으며 돈도 벌어야 했으니, 머리도 바빴지만 몸도 무척이나 바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학위논문 작성을 시작하면서 인간관계도 단순해졌고,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수업에도 들어가지 않으니, 움직일 일도 점차 없어졌다. 그저 책상 앞에만 앉아 있게 되었다. 노래가 하고 싶어졌다. 교회 ..
1.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헷갈리는 일이 많다. 도대체 속을 모르겠다. 무슨 생각들을 하며 사는 건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다. 북한이라는 이상야릇한 곳에 사는 사람들 말이다. 501마리의 소가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건너가는가 싶더니, 소들의 뱃속에 무슨 몹쓸 것을 집어넣었다며 시비다. 김정일이 정주영을 만나 사진을 찍었는데, 어른이라고 가운데 모시고 찍었다고 한다. 오랫만에 보는 흐뭇한 광경이다. 그 덕분인지 금강산에 가는 유람선이 드디어 11월 18일 첫 출항을 하게 되었다. 서먹서먹하던 남북한이 이제 좀 사이가 좋아지나 했더니, 간첩선이 출몰했다는 소식이 또 들려온다. 북한 땅 어딘가에 거대한 지하 핵시설이 있다는 미국 측의 주장에 한반도에 다시금 긴장이 ..
사상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관용에 대한 생각들 1. 내가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결코 히딩크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2002년 가을, (이곳 독일에서) 이웃나라인 네덜란드에 여행을 간다고 얘기했을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매번 들은 얘기가 “너, 히딩크 고향에 가니?”라는 질문이었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한참동안은 “히딩크 고향은 가봤니?” “기왕에 간 거 히딩크 고향에도 좀 다녀오지 그랬니” 하는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하필 시기가 월드컵의 감동이 채 사라지지 않은, 그래서 히딩크라는 사람의 이름이 아직 우리 머리 속을 맴돌던 때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네덜란드와 히딩크를 연결시키는 것이 단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 것 같지만은 않다. 얼마 전에 한국어 수업 시간에(나는 베를린 세..
1. 분단과 통일의 도시 베를린에 내가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99년 3월 1일 늦은 밤이었다. 3년도 더 되는 시간이 흐른 지금,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해서만 당시의 느낌을 되살릴 수 있지만,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사건 하나는, 그 즈음 한국 유학생 한 명이 유럽 어느 도시에서 여행 도중 북한 사람들에 의해 납치 당한 일이었다. 결혼과 함께 시작한 유학생활이니 만큼 신혼을 핑계삼아 없는 멋도 부려볼 수 있었겠지만(모든 새신랑이 적어도 한 동안은 말끔하지 않던가), 행여 돈 많은 집 자식으로 보일까봐 2000년을 바라보는 당시에 80년대 말 패션을 하고 다녔던 것이 기억난다. 북한의 실질적인 위협 앞에서 나의 어설픈 관념적 친북(親北)은 그렇게 첫발부터 맥을 못 추고 말았다. 2..
폭력적인 문화 문화가 폭력적일 수 있을까? 한때 ‘문화’시민은 좌측통행을 한다고 지하철역 계단에 써 붙여 두던 것을 생각하면, 문화는 뭔가 질서정연한 것이어서, 문화가 폭력적일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오늘날의 대중‘문화’ 또는 시위‘문화’가 폭력적이라고 하는 말들을 생각하면, 식인풍습이나 여성할례가 폭력적이지만 나름의 문화인 것처럼, 폭력적인 것도 얼마든지 문화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문화가 폭력적이라는 지적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모든 문화가 어느 정도 폭력적이어서 우리가 폭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우리 사회가 폭력을 상대적으로 더 세련되게 처리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2010. 보수는어떻게지배하는가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앨버트 O. 허시먼 (웅진지식하우스, 2010년) 상세보기 알버트 오토 허쉬만(Albert Otto Hirschman)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1915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서 공부했고, 스페인, 프랑스, 북아프리카, 이탈리아에서 직접 전쟁을 치렀으며, 남미에서 경제고문관으로 일했고, 미국의 유명한 대학들에서 가르쳤다. 그의 이런 독특한 이력이 반영되기라도 한 듯이 그의 학문은 여러 분과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여러 나라와 지역을 아우르며, 추상적 이론과 구체적 현실의 복잡한 관계를 매우 절묘하게 드러낸다. 그를 유명한 개발경제학자로 만든 다른 ..
에이미 추아, , 이순희 옮김, 비아북, 2008. 제국의미래 카테고리 정치/사회 > 정치/외교 지은이 에이미 추아 (비아북, 2008년) 상세보기 21세기를 다시 ‘제국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최소한 지난 10년간 출판된 책과 관련해서는 그렇게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2000년에 네그리와 하트가 이라는 책을 낸 이후로 ‘제국’에 관한 많은 말들과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전에도 물론 제국에 관한 말들과 책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대개 과거 역사 속의 ‘제국들’이나 ‘제국주의’를 다루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들은 현재 우리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재의 제국’을 다루고 있다. 1991년에 미국의 주도로, 그러나 유엔의 깃발 아래 인도적 명분을 내세우고서 치러진 걸프전쟁을..
※ 2008년 5월 오르가니스트 박옥주의 멘델스존 오르간작품 전곡 연주에 부쳐 쓴 글 나는 사람에게 그다지 정을 주지 않는 편이다. (무려 다섯 번이나 초등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목사인 아버지 덕에 한 교회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는 내 처지와는 달리 끊임없이 들고 나는 교인들을 무수히 봐 왔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모임에 속해 있는 다른 사람에게, 그가 나보다 먼저 와 있었거나 나중에 왔거나 간에, 쉽게 정을 주지 않는다. 그가 언제 이 모임을, 그리고 나를 떠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박옥주는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의 이른바 ‘새 반주자’였다. 언제 떠날지 모를, 합창단에 갓 온 새 반주자. 그리고 2년여의 시간, 그리 길지 않은, 그러나 그리 짧지도 않은 시간이 흘렀다..
※ 2008년 5월 오르가니스트 박옥주의 멘델스존 오르간작품 전곡 연주에 부쳐 쓴 글 설레는 마음으로 성당에 들어선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프로그램을 들여다본다. 연주자의 프로필과 연주곡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연주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 시간이 되었다. 드디어 연주자가 오르간 앞에 앉는다. 청중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잦아든다. 연주자가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연주할 채비를 한다. 잠시 몇 초 간의 적막이 흐른다. 그리고 연주는 시작된다. 연주는 퍼포먼스이다. 연주는 연주자와 청중, 그리고 연주가 이루어지는 시간과 공간을 전제한다. 연주를 통해서 연주자와 청중은 동일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그 속에서 반복될 수 없는 비가역적인 경험을 나눈다. 사람들은 연주에 참여하고 연주는 바로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