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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통과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

공진성 2012. 2. 10. 18:05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웅진지식하우스, 2010.

보수는어떻게지배하는가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앨버트 O. 허시먼 (웅진지식하우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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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오토 허쉬만(Albert Otto Hirschman)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1915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서 공부했고, 스페인, 프랑스, 북아프리카, 이탈리아에서 직접 전쟁을 치렀으며, 남미에서 경제고문관으로 일했고, 미국의 유명한 대학들에서 가르쳤다. 그의 이런 독특한 이력이 반영되기라도 한 듯이 그의 학문은 여러 분과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여러 나라와 지역을 아우르며, 추상적 이론과 구체적 현실의 복잡한 관계를 매우 절묘하게 드러낸다. 그를 유명한 개발경제학자로 만든 다른 책들과는 그 소재의 측면에서 사뭇 다른 이 책,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The Rhetoric of Reaction)>에도 그의 이런 장점은 부족함 없이 드러나 있다.

이 책은 미국에서 1991년에 출간되었다. 이 시기는 1981년 이래로 10년이 넘게 보수적인 공화당 정부가 집권해오고 있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이 말해주듯이, 보수주의자들이 지배를 위해 어떤 수사적 전략을 사용하는지를 분석하고 비판한다. 책을 읽지 않고 이런 정황만으로 판단하면, 허쉬만의 이 책도, 조지 레이코프의 책이 그렇듯이, 진보와 보수의 정파적 대립 구도 속에서 진보의 승리를 위해 작성된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정치적 팸플릿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한국어판 제목이 오도하는 것과 달리, 보수주의자들‘만’의 레토릭에 관한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변화에 대해서 보이는 부정적 ‘반응’(reaction)의 공통된 패턴을 분석하고 있다. 변화에 반대하는 반응, 즉 반동적 태도는 분명히 보수주의자의 전유물이지만, 변화에 찬성하는 진보주의자의 반응도, 저자에 의하면, 보수적 반응이 따르는 패턴을 ‘반사적 형태로’ 동일하게 따르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진보주의자들이 “지난 200여 년 동안 자기네 주장을 펼치면서 취해 왔던 주요 주장들과 수사적 입장에 관해서도 이 책과 비슷한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205쪽). 이것이 이 책을 단순히 보수주의를 비판하고 진보주의를 옹호하는 정치적 팸플릿으로 볼 수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저자의 목적은 정치적 당파들의 논의가 ‘민주주의에 친화적인’ 것으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 속에서 “공적인 담론을 양쪽 모두가 지닌 극단적이고 비타협적인 자세 이상의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227쪽). 이를 위해 저자는 보수주의자와 (이 책에서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진보주의자가 변화에 대해 보이는 공통의 언어적 패턴, 또는 그의 표현대로, “논쟁의 규범들”(17쪽)을 분석한다. 그것을 저자는 프랑스혁명 이후의 유럽과 미국의 정치사와 사상사를 검토하면서 아주 훌륭하게 세 가지 명제로 요약하여 정리한다. 그리고 마치 정신분석학자가 무의식을 의식의 표면 위로 끌어올려 환자의 정신질환을 치료하듯이,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변화에 대해 사실상 동일한 인식의 패턴을 보인다는 사실을 우리의 눈앞에 드러내 보임으로써 보수와 진보 간의 막혀 있던 소통을 회복하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합리적이지 못한, 우리 모두의 반사적/반동적 심리에 대한 일종의 정신분석인 셈이다.

저자는 보수주의를 연구하는 기존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단지 따르지 않는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는 보수주의에 어떤 철학적 기초가 있고 그것이 진보주의의 그것과 마치 확연히 다른 것처럼 여기면서 보수주의를 연구하는 것이 오히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간의 소통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한다. 더불어 그런 접근이 반동적 태도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고, 그래서 그것이 정치적 지향에 따라 선택될 수도 있는 합리적 입장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한다(16~17쪽). 그러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저자가 보기에, 그저 표면적으로만 대립될 뿐이지 사실상 수사적으로 공통의 패턴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리고 그런 공통의 반응이 논리적으로 조야한 것이며 불합리한 것임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논쟁의 규범’에 대한 종속에서 벗어나 변화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반응할 수 있을 것이며, 소통을 회복하여 긍정적인 변화를 이루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17쪽).

정파들 간의 비타협적 대립 속에서 공허하게 소통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우리의 토론이 각자의 생각을 실제로 수정하는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우리가 서로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진보이건 보수이건 간에, 지적으로 개방적이지 않고 완고하다는 점에서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역효과 명제’, ‘무용 명제’, ‘위험 명제’로 요약되는 세 가지 보수적 반응의 패턴은 그 완고함의 언어적 표현이다. 저자는 그런 완고함에서 비롯하는 보수주의자의 냉소와 허무주의도 경계하지만, 조심성 없는 진보주의자의 행동주의도 경계한다. 양비론으로 오해될 수도 있을 그의 이런 신중하고 성숙한 태도가 바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인간 행동의 온갖 부조리를 직시하면서도 인류의 행복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결코 잃지 않는 유럽적 휴머니즘의 전통 속에 있는 저자의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상당히 어려운 책이지만, 그만큼 흥미로우며 지적으로 매우 도전적이다. 유럽 민주화의 역사와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이념적 논쟁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2010년에 후마니타스에서 나온 <유럽 민주화의 이념과 역사>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는 것도 좋겠다.

※ 이 글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책&> 2011년 2월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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