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제 지도교수인 헤어프리트 뮌클러 교수가 최근에 밝혀진 미국 정부의 전세계적 도감청 사실에 관한 칼럼을 하나 썼기에 한국어로 한번 옮겨봅니다. (출처: http://www.mdr.de/mdr-figaro/journal/kolumne292.html) 2010년에 이미 위키리크스와 관련해 비밀의 유익에 대해 칼럼을 쓴 바 있습니다. 이것도 시간이 나면 한국어로 옮겨보겠습니다. (http://www.spiegel.de/spiegel/print/d-75476953.html) Kolumne | MDR FIGARO | 28.06.2013 : Die Machiavellistische Seite der Demokratie von Herfried Münkler 칼럼/MDR 피가로/2013년 6월 28일/ 민주주의의 마키아..
교육의 결과를 성과주의로 평가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의 효과는 졸업 시점에서 취득하는 단위 수와 성적, 자격, 전문지식, 기능 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등교육에서 배운 좀 더 중요한 기법이라고 할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은 종합적으로 수치화하기가 불가능하다. 식견, 파단력, 감수성, 취미 등을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익혔는지 물질화해 버리면 본인도 모른다. 하물며 학교에서 익힌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는 능력'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인 메타 능력meta competency이다. 말하자면 '척도를 만들어낼 능력'이다. '척도를 만들어내는 힘'은 기존의 '척도'로 계측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교육의 결과는 수치로 평가할 수 없다. 이것은 당연하다. 이 교육의 결과를 수치화할..
무엇이 아님을 뜻하는 한자 ‘비(非)’가 그 앞에 붙은 단어들은, ‘무엇’이 아니기 때문에 그 속성이 아직 모호한데도, 이미 부정적인 어감을 가지고 있다. 권력은 그 ‘무엇’을 특권화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비-무엇’을,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이미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 기피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무엇’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자동적으로 ‘무엇’의 특권을 정당화한다. ‘무엇’을 추구하는 우리의 욕망은 권력의 효과이자 동시에 권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이 욕망의 정체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저 ‘무엇’을 추구할 때, 우리는 ‘비-무엇’을 배제하여 ‘무엇’을 특권화하는 권력의 공범이 된다. ‘비-정규직’이라는 표현은 ‘정규직’을 특권화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언론을 통해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루어진 약속들이 지켜질 수 있을지를 의심하는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말로 유명한 박근혜 대통령이니만큼 일단은 의심 없이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정말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일까? 당파적 공세를 위해, 또는 그저 선거에서 생색내기용으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지키지 말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정치적 약속이 그렇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바꾸는 이유이다. 그 이유에 따라 국민의 신뢰가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신뢰가 사라지는 때는 말을 바꾸는 때가 아니라, 말을 바꾸는 이유가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서임이 드러날 때..
결국 국민 전체에 의한 약속은 최후의 구성원 보존에 대해서도 그 밖의 모든 구성원 보존을 위한 것과 같은 배려를 제공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또한 단 한 시민의 행복이라도 그것이 국가의 그것에 비하면 공통관심이 아니란 말인가? 한 사람의 개인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할 때 그것이 자기 나라의 번영을 위해 자원해 의무로서 죽어 자기를 희생한 훌륭하고 덕성 있는 애국자의 입에서 나오는 선언이라면 나는 경탄한다. 그러나 다수의 번영을 위해 정부가 한 무고한 자를 희생시킬 것이 허용된 것으로 이해한다면, 나는 이 원칙이야말로 기왕의 폭정이 창안한 가장 가증스러운 것 중의 하나며. 내걸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위선적인 것이고 인정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위험스러운 것이며. 사회의 기본법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