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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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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북한 인식에 관한 몇 가지 생각

공진성 2012. 2. 11. 14:57

1.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헷갈리는 일이 많다. 도대체 속을 모르겠다. 무슨 생각들을 하며 사는 건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다. 북한이라는 이상야릇한 곳에 사는 사람들 말이다. 501마리의 소가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건너가는가 싶더니, 소들의 뱃속에 무슨 몹쓸 것을 집어넣었다며 시비다. 김정일이 정주영을 만나 사진을 찍었는데, 어른이라고 가운데 모시고 찍었다고 한다. 오랫만에 보는 흐뭇한 광경이다. 그 덕분인지 금강산에 가는 유람선이 드디어 11월 18일 첫 출항을 하게 되었다. 서먹서먹하던 남북한이 이제 좀 사이가 좋아지나 했더니, 간첩선이 출몰했다는 소식이 또 들려온다. 북한 땅 어딘가에 거대한 지하 핵시설이 있다는 미국 측의 주장에 한반도에 다시금 긴장이 감돌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 땅에 원자로를 지어주기 위해 남한의 노동자들이 수고하고 있는데, 이놈들은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또 핵 가지고 장난질이니, 도대체 북한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아리송하기 짝이 없다. 빨갱이로 봐야 할지, 피를 나눈 형제로 봐야할지....

종잡을 수 없는 북한의 태도와 변화무쌍한 모습이 우리에게 혼란을 가져다주는 것은 분명 사실인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또 북한에 대해 올바로 인식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잠시 우리가 던지 이 질문의 의미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라는 이 질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질문은 분명 '인식 방법'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을 인식하는 데는 단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닌 듯,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를 묻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딘가에 최상의 인식 방법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지금까지의 인식 방법에 어떤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물음은 자연스럽게 어느 누군가의 인식이 다른 누군가의 인식보다 더 우월하다는 주장으로 은밀히 귀결된다: "나의 인식 방법이 너의 인식 방법보다 우월하다", "내가 너보다 북한을 더 정확히 알고 있다." 물론 과거에는 이런 논쟁조차 없었다. 반공의 분위기 속에서 북한을 보는 방법은 미리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금한 것은 북한의 정체가 아니라, 사람들 각자의 머리 속이었다. 사람들이 북한을 정답대로 생각하고 있는지, 혹시나 빨갱이들처럼 삐딱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궁금했던 것이다.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라는 이 질문은 따라서 과거에는, 정확히 말하면 냉전 시대에는, 북한을 어떻게 규정할 것
인가의 문제로 받아들여졌고, 질문에 대한 대답도 '북한은 무엇'이라는 식의 단답형 대답만이 통용될 수 있었다. 왜 자신이 북한을 그렇게 인식하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북한을 인식하고 있는지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은 이 질문법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다.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그리고 법정에서 검사가 증인에게 요구하듯이, ‘예’와 ‘아니오’로만 대답해야 했던 것이다. 학자의 사상을 검증하겠다고 나선 <월간 조선>이나, 국방장관에게 ‘북한군’이냐 ‘북괴’냐를 묻는 국회의원들은 모두,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이 냉전 시대의 질문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주절주절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으려고 하면 눈을 부릅뜨며 엄하게 꾸짖는다 : “조용히 하고, 묻는 말에나 대답하세요!”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라고 묻고 따지는 일은 토론도 없이 낙인찍기에만 바빴던 시대를 생각한다면 분명 환영할 만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질문 속에 숨어 있는 가정, 즉 "나의 인식이 너의 인식보다 우월하다"는 가정만큼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 숨은 가정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라고 묻고 따지는 일은 단지 북한을 바라보는 예전의 방법을 새로운 방법으로 바꾸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오답자(誤答者)로 낙인찍는 일의 반복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질문법은 어떤 것일까? 나는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그것은 인식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북한의 정체를 묻기 전에, 그 북한을 인식하고 있는 우리들 각자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며, 북한을 인식하는 방법을 묻기 전에 북한을 우리들이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또 북한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구성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런 식의 질문은 분명 북한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북한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모호하고 복잡한 모습의 북한만을 우리 앞에 드러내게 될 것이다. 손쉬운 규정과 속 편한 입장(立場)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굳이 귀찮고 애매하고 껄끄러운 방식을 택하려고 하는 이유는, 과거에 그리고 지금도 곳곳에서 잔인하게 자행되고 있는 ‘규정의 정치’로부터 한 발짝 멀리 떨어지려 함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은 괴뢰도당’이라는 정답을 가슴속에 품고 상대방의 머리 속을 검증하기 위해서 던지는 이 질문의 포화 속에서 너무도 많은 아픔을 겪어 왔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 사람조차 이 질문의 공세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 힘없는 백성들이야 오죽했으랴, 그저 시키는 대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밖에.
북한에 대한 ‘관점’에 따라 편을 나누고, 후보들의 사상을 검증하기도 했던 과거의 학생운동 역시, 그것이 억압적인 반공체제에 대한 반작용이었기에 오히려 더 철저히 이 ‘규정의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적이냐, 아니면 동지냐?” “한국사회에 유효한 사회상이냐, 아니면 낙후한 봉건적 사회주의 왕국이냐?”라는 식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무수히 많은 대답들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것은 세계의 모습이 그렇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것이 잔인한 ‘규정의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2. 북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체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의 인식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바로 경험이다. 손으로 느끼는 촉감, 눈으로 보는 광경, 코로 맡는 냄새, 귀로 직접 듣는 소리 등은 우리의 일상적인 지식을 구성하는 생생한 요소이다. 경험이 우리의 일상적인 지식을 구성하는 생생한 요소가 된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때로는 착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나이를 먹고, 경험이 축적되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험의 이 같은 오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험만큼 생생하고 확실한 지식은 없다. 남이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을 때 속이 터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경험적 인식에 쉽사리 ‘진실’ 혹은 ‘사실’의 지위를 내어주는 뭇 사람들의 행동을 우습게 볼 수만은 없다.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북한관은 바로 이 같은 경험적 인식에 기초해 있다. 해방을 전후로 해서 태어나 전쟁을 겪으면서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이들의 북한 인식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자신이 북한군에 의해 자행되는 살육을 목격했는데 누군가가 북한군은 ‘해방군’이었으며 ‘반미전사’라고 한다면, 어찌 분통을 터뜨리며 피를 토하지 않겠는가? 내 할아버지 역시 경찰가족이라는 이유로 북한군에 의해 총살당하셨다. 아버지의 반공의식은 아마도 이러한 경험에서 비롯된 듯하다. 몸의 체험만큼 강렬한 것은 없다. 그래서 몸의 진실은 관념적 진실을 비웃는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입장을 종교재판 앞에서 철회했지만, 기독교의 수많은 순교자들은 로마군의 창칼 앞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았다. 이렇게 몸으로 겪은 '진실'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진실’에 어긋나는 어떠한 설명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체험적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인식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인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사람들마다 이런 인식을 다르게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전쟁이라는 경험을, 그 다양한 편차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지만, 전쟁 후에 태어난 세대들과 오늘날의 어린 10대들은 그 경험을 거의 공유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전쟁세대에게는 너무나도 자명하고 뻔한 ‘진실’이 다른 세대에게는 그리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북한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도 전쟁을 겪은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간의 성향 차이가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북한의 신세대들도 전쟁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기성세대들과 같은 충성심이나 생생한 반미의식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생생한 체험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강력한 추동력이며, 동시에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끈이다. 따라서 이러한 체험의 공유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한때, 80년 5월의 광주를 말하는 것이 금기시 되었던 적이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5월 광주의 모습은 과거에는 결코 텔레비전을 통해 볼 수 없었으며, 심지어 대학에서조차 커튼이 드리워진 어두컴컴한 교실 안에 모여 숨죽이고 봐야했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그날의 모습을 비디오를 통해서라도 애써 보려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오늘날 대학 내에서 철거민들의 상황, 노동현장의 상황, 북한의 상황을 담은 비디오를 무심하게 지나가는 학생들 앞에 틀어놓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바로 이 강력한 무기, 곧 사람을 가장 용감하게 만드는, 이 체험적 인식을 조금이나마 공유하기 위해, 그래서 직접 몸으로 겪은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닌가? ‘안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교실에서의 반공교육과,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대학생들의 저항적 책읽기 모두 바로 이 체험의 공간을 장악하려는 노력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렇게 얘기해놓고 보니, 마치 북한에 대해 적대감이 있는 사람도, 북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도 다 나름의 체험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에 모두 정당하다는 주장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 판단을 내리기에는 이르다. 체험적 인식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모두 옳고 정당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3.
북한은 북한 그 자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남한의 북한이다

우리 속담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는 말이 있다. 자라를 보고 놀랬던 사람이 자라 등과 비슷하게 생긴 솥뚜껑을 보고서 놀란다는 말이다. 이 속담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의 인식행위에는 항상 어떠한 틀이 미리 전제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라를 보고 놀라거나, 솥뚜껑을 자라로 착각하고 놀랄 수 있으려면 무엇이 자라인지, 어떻게 생긴 동물이 자라인지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라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자라에게 물리거나 한 경험이 없다면, 결코 자라를 보고 놀랄 수도 없으며, 솥뚜껑을 보고서 놀라는 일은 더더욱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속담에서 알 수 있는 또 다른 한 가지는, 인식행위에 앞서 존재하는 틀이 대상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좌우하며, 때로는 왜곡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솥뚜껑을 솥뚜껑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속담을 빌려 우습게 이야기했지만, 이러한 문제는 원시부족들의 생활모습을 연구하는 인류학에서는 오래 전부터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고, 최근에는 문학비평을 비롯한 제반 학문분야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원시부족들의 생활과 풍습을 연구하는 문명사회의 학자들이 자신들의 서구적 관점을 통해서 부족민들의 삶을 해석하고 재현함으로써 도리어 사실을 왜곡하고 심지어는 그들의 삶을 파괴하기까지 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으며,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와 같은 탈식민주의 비평가들에 의해서 서구의 문학작품 속에 숨어 있는 비서구 세계에 대한 서구적 편견들과 왜곡의 사례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대상 세계를 소박한 실증주의자들의 바람처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인식행위 자체에 필연적으로 전제되는 문화적, 세계관적, 가치관적 틀 때문이며, 동시에 인식행위에 개입되는 우리의 ‘관심’ 때문이기도 하다. 관심은 인식의 범위를 제한한다. 인식의 범위가 제한되는 것은 단지 우리의 눈이 앞에만 달려있어서 시야가 좁기 때문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는 보이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심리적으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관심’의 작용이 또한 있기 때문이다. 한 밤중에 갈증을 없애주었던 달콤한 물이 다음날 아침에 보니 해골이 썩어있는 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유명한 원효의 일화가 있다. 그런데 만약 원효가 깨달음을 추구하는 구도자가 아니었다면, 그냥 평범한 나그네였다면, 과연 그때의 일을 깨달음의 방편으로 삼을 수 있었을까? 길을 가는 평범한 나그네였다면 구역질만 실컷 하고 말았을 사건이, 깨달음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원효였기에, 그에게는 다르게 보였던 것이다. 이처럼 '관심'은 우리의 인식에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다시 전쟁을 겪었던 세대들의 시각으로 돌아와 보자. 자라에게 놀란 정도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참혹한 사태를 몸소 겪었으니 그것을 다시금 상기하는 고통이야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는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전쟁에 놀란 가슴들이 그것을 연상케 하는 사건들과 이미지에 놀라 불안에 떨며, 또한 자연스럽게 보호본능을 발휘하는 것, 바로 그것이 한국인들의 레드 콤플렉스인 것이다. 그러니 무고한 백성들의 이 레드 콤플렉스를 어찌 무지의 소치라고 꾸짖을 수 있겠는가. 다만 이러한 사건들과 이미지들이 정권의 안정과 유지를 위해 조작되고 유포되었다는 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조장된 반공의 분위기와 자기 보호적 태도들은 북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일정한 형태로 고정시켰으며, 그 결과 북한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부정적인 정보만이 생산, 유포되기에 이르렀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워온 윤리, 도덕 교과목이다. 이제 북한은 더 이상 북한이 아니게 된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이 서독에 의해 흡수통일 되자, 남한에서도 상대적인 경제력의 우위를 근거로 흡수통일에 대한 은근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씨(Ossi)’와 ‘베씨(Wessi)’라는 서로의 출신지역에 따라 부르는 비하적 표현이 보여주고 있듯이, 동서독 사람들간의 이질감이 독일통일의 심각한 후유증으로 지적되자, 이제는 남한에서도 통일교육이 필요하고, 남북간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너도나도 주장하고 나서게 되었다. 그래서 안보교육과 북한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던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내용도 이제는 북한의 풍습도 소개하고, 남북한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민족 고유의 전통을 찾아내어 강조하는 식으로 변하고 있다. ‘똘이장군’이나 ‘차돌이의 모험’과 같은 만화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들에 비하면, 참으로 놀라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변화는 80년대 후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거세게 일어났던 북한바로알기 운동의 간접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방북기 두 권의 제목은 이 당시의 북한바로알기 운동이 지닌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89년 북한을 방문했던 소설가 황석영의 방북기 제목은 바로 <사람이 살고 있었네>였다. 사람이 살고 있다니? 사람이 안 살면 도대체 무엇이 살고 있단 말인가? 어처구니없게 느껴지는 이 말은 그 당시 북한을 방문했던 황석영의 심경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사람이 살고 있었다! 북한에도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살고 있었다!” 서로가 속해 있는 사회체제만 뺀다면 자신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놀라움이 주위에 전해지고 서서히 북한의 실상이 알려지게 되자, 그 동안 제도교육이 제공해 왔던 북한에 대한 편협한 시각와 왜곡 투성이의 정보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것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북한을 알고 싶은 욕구가 불길처럼 번지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북한의 연애소설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읽혀졌고, ‘휘파람’과 같은 북한의 대중가요가 보급되었으며, 북한 영화도 몰래몰래 상영되었다.


또 다른 방북기는 조광동이라는 재미 기자가 쓴 <더디가도 사람생각 하지요>였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의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북한 사회주의 체제가 가지고 있는 인간관, 세계관, 가치관 등을 북한 사람들의 입을 빌려 소개하였고, 또 북한사회에 대한 서방세계의 의심과 오해를 북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직접 해명하기도 하였다. 한 가지 예를 살펴보자. 북한에 자유가 없다는 비판에 대해 손승모라는 대학생은 "저는 한 번도 자유가 없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돈 한 푼 안 내고 교육을 받고, 지금은 나라에서 생활비를 받아가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는 제약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자유가 있다고 하는데 왜 저에게 자유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러한 북한 학생의 태도를 우물 안의 개구리가 그 안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쉽게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닌, 외부 세게에 대한 경험이 많은 지식인의 대답은 어떨까? 대답은 마찬가지이다. 그 역시 서방세계에 나가서 갈등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 들어와 몇 달만 지나면 (그런 갈등은) 물로 씻은 듯 씻겨 내려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서구 사회에서 말하는 자유는 인간을 유혹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이 자유는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잘 살고 싶고, 잘 먹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기심이 강한 사람들, 혼자 잘 사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자유에 매력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동물적인 삶이라고 부릅니다. 혼자 잘 살 수 있는 자유 대신에 우리는 같이 잘 살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지가 될 수 있는 자유도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방북기를 통해 소개되면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북한 사회에 대한 은근한 동경마저 생겨나기 시작했다.


북한바로알기 운동은 방북기의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기존의 왜곡된 인식을 깨뜨리는 혁신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18세기 말 유럽의 낭만주의가 동양세계를 이상화함으로써 왜곡했던 것처럼, 남한의 북한바로알기 운동 역시 북한 사회를 '사람에 대한 고귀한 이상이 살아 있는 이상적인 사회'로 이상화함으로써 또한 왜곡하게 되었다.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환상과 기대를 투영하여 허구적으로 동양세계를 그려냈던 것처럼, 남한의 운동권 역시 자신들의 이상과 기대를 북한 사회에 투영하여 실제의 북한 사회와는 다른, 이상적인 모습의 북한 사회를 구성해냈다. 그리고 그러한 환상은 최근까지도 지속되다가, 끝끝내 스스로 깨뜨리지 못하고, 범청학련 공동대표로 베를린에 머무르던 대표단 일행이 '양심선언'을 하며 귀국함으로써 타의에 의해 보기 흉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과거의 북한바로알기 운동이 자신들의 이상을 투영하여 북한사회를 낭만적으로 이상화하였다면, 오늘날 학교에서의 통일교육은 '남한의 것’을 기준으로 ‘북한의 것’을 유형화함으로써 또한 실제를 왜곡하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 비록 그것이 북한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그러한 강조에는 '오리엔탈리즘'과 유사한 구조 혹은 '식민주의적' 언술행위의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 범교과적으로 북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북한의 언어', '북한의 전래동화', '북한 주민의 생활', '북한의 자연 지리적 특성', '북한의 예술', '북한의 체육', '북한의 민속 경기', '북한의 오락' 등 '북한의-'라는 수식어가 붙은 각종의 것을 교과서에 나열하고 있는데, 그러한 이해의 노력이 자칫하면 북한사회에 대한 개념적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식체계를 통해서 드러나는 '북한'은 서양인들이 자신들의 타자로서 '오리엔트'를 구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욕망과 관심을 투영시켜 빚어내는 허구적인 '북한'이 될 수 있다.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처음 만난 흑인의 이름을 금요일에 발견했다고 해서 '프라이데이'라고 붙인 것이나, 컬럼버스가 처음 카리브 연안에 도착했을 때, 그가 발견한 최초의 두 섬은 기독교식으로, 그리고 그 다음 세 개의 섬은 스페인 왕과 왕비, 그리고 세습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사실을 생각해 보자. 이러한 명명의 수사구조는 보편적이라고 여겨지는 형이상학적, 정치적 약호 내에 이미 위치하고 있는 일련의 기호들과 관련하여 타자의 영역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푸코의 표현처럼, '사물에 가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어설픈 통일교육이 '다르게 말하기', 즉 재현의 책략을 통해 북한이라는 피식민지를 종속시키는 한 방식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이다.


4. 북한은 어떻게 북한으로 인식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북한을 북한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그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돌려줄 수 있을까? 북한은 과연 아무런 왜곡 없이 북한 그 자체로 인식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에 대한 전망은 어둡고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체험에서 비롯된 인식의 틀을 동원하여 북한을 바라볼 것이며, 또한 자신들의 관심에 따라 북한을 요소적으로 뜯어 볼 것이기 때문이다. 재벌회장 정주영의 눈에 비치는 북한과, 미술평론가 유홍준의 눈에 비치는 북한, 풍수지리학자 최창조의 눈에 비치는 북한, 그리고 ‘총격사건’을 요청했던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북한은 분명 다른 모습이다. 이는 그들이 쌓아온 삶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며, 그들의 관심이 서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의 눈에 비친 북한의 모습이 더 올바르고 정확하다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이 글의 서두에서 나는 “북한을 어떻게 이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냉전시대와는 다르게 파악할 것을 제안하였다. 더 이상 자신의 입장을 기준으로 상대방을 ‘반동과 보수’로 ‘친북과 이적’으로 규정하지 말고, 북한을 바라보는 자신들의 위치가 어디인지, 또 자신들의 ‘북한’이 어떻게 구성된 것인지를 스스로 반성해 보자는 것이다. 태양의 위치가 변하는 것은 태양이 움직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이기 때문임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북한에 대한 상이한 시각들은 북한이 스스로 변화무쌍하기 때문이 아니라, 북한을 인식하고 있는 우리들 각자의 서 있는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서 있는 위치를 간과하고, 마치 산꼭대기에 올라서 있는 것처럼, 그래서 세상 모두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할 때 비로소 피를 부르는 ‘규정의 정치’는 시작된다. 

은밀한 잠행(潛行)으로 물가에 접근한 뱀이 개구리를 한입에 삼켜버린다. 개구리가 눈치 채지 못하게 자신의 몸을 낮추고 점점 개구리에게 가까이 접근해 가고 있는 뱀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인간에 의해 의인화된 것에 불과하다. 뱀은 결코 개구리에게 ‘은밀하게’ 접근해 가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다. 인간만이, 오로지 자의식을 가진 인간만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대상화하여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이 곧 반성(反省)이요, 성찰(省察)인 것이다. 나는 “북한을 ‘이렇게’ 인식해야 하며, 그 때에 나타나는 북한의 모습은 바로 ‘이것’이니, 어리석은 중생들은 모두 나를 믿으시오”라고 말할 수 없다. 나 역시 20여 년의 짧은 생을 통해 축적한 나의 경험의 공간과 현재의 관심을 통해 북한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나의 이런 경험들과 현재의 관심을 되돌아봄으로써, 나의 북한 인식을 상대화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인식상의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을 뿐이다. 

이제 결론을 맺어볼까 한다. 아리송한 모습으로 때로는 우리를 난감하게 만들기도 하는 ‘북한’이라는 저 북녘 땅에 사는 사람들은 분명 공산주의자들이며, 또한 우리와 피를 나눈 동포이기도 하다. 전쟁을 일으킨, 혹은 적어도 그 전쟁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이며, 동시에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나의 할아버지가 인민군에게 총살당했다면, 누군가의 할아버지는 국방군에 의해 총살당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빨갱이로 규정한다면, 그들도 우리를 미제의 앞잡이로 규정할 수 있다. 또 누군가 북한을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는 주체 사회주의 국가로 찬양한다면, 마찬가지로 북에 사는 누군가는 남한을 한강의 기적을 이룬 성공한 경제국가로 칭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시선이 수구 반동의 시선이고, 어떤 시선이 진보의 시선인가? 또 어떤 시선이 건전한 시선이고, 어떤 시선이 불온한 시선인가? 이에 대한 단답형 대답을 추구하는 행위는 자신의 시선을 하나님의 시선과 동일시하는 오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사물은 분명 입체이지만, 그리고 우리는 입체도를 그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뒷부분을 점선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는, 우리의 처지(處地)에서는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바른 인식의 태도는 이러한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 겸손하게 자신들의 인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그것이 남들과 왜 다른지를 우선 생각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또한 인간됨의 구현이며, 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또한 생각해 본다.


※ 이 글은 서강대학교 교지 <서강> 제36호(1998년 겨울)에 실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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