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따뜻한 사람 박옥주 본문
※ 2008년 5월 오르가니스트 박옥주의 멘델스존 오르간작품 전곡 연주에 부쳐 쓴 글
나는 사람에게 그다지 정을 주지 않는 편이다. (무려 다섯 번이나 초등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목사인 아버지 덕에 한 교회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는 내 처지와는 달리 끊임없이 들고 나는 교인들을 무수히 봐 왔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모임에 속해 있는 다른 사람에게, 그가 나보다 먼저 와 있었거나 나중에 왔거나 간에, 쉽게 정을 주지 않는다. 그가 언제 이 모임을, 그리고 나를 떠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박옥주는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의 이른바 ‘새 반주자’였다. 언제 떠날지 모를, 합창단에 갓 온 새 반주자. 그리고 2년여의 시간, 그리 길지 않은, 그러나 그리 짧지도 않은 시간이 흘렀다.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은 그저 합창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도, 출세를 해 보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합창하는 것이 좋아서, 함께 음악하는 것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이 합창단에 가장 이해하기 힘든 존재가 한 명 있다. 바로 반주자이다. 별다른 동기가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음마의 모든 구성원은 무보수로 활동한다.) 지휘자는 합창단을 통해서 최소한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실험해 볼 수라도 있지만, 반주자는 그럴 수도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음마의 반주자는 지나치게 착하거나 바보인 것 같다. 그리고 세상은 언제나 착한 사람을 착취한다.
박옥주는 사실 오르간 연주자이다. 한국과 유럽에서 오랜 세월 오르간을 배우고 연주해 온 전문 연주자이다. 그런 그가 도대체 (국내 최고이긴 하지만) 일개 아마추어 합창단인 음악이있는마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자신 역시 합창에서 오르간 연주를 위한 그 무엇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착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엄살을 떨어야 협상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모른다.) 합창과 오르간에 그 어떤 유사성이 있는 모양이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오르간에 관해서 문외한인 내가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역시 합창단에서 무엇인가를 얻고 있다는 것이 다만 위안이 된다. 세상은 그렇게 착한 사람을 착취하면서 그것을 정당화하고, 착한 사람은 오히려 그런 세상을 위로한다.
착한 사람 박옥주가 연주하는 음악은 어떨까? 나는 연주자 개인의 인격과 그의 음악 간의 관계에 관하여 회의적이다. 개인의 선한 의도가 사회적으로 언제나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듯이, 음악적으로도 연주자의 의도가 청중에게 그대로 전달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주자의 마음이 음악을 매개로 해서 청중의 마음에 직접 가 닿을 수 있다면, 박옥주의 음악은 아마도 따뜻할 것이다. 따뜻한 음악, 그것이 바로 오르간 연주자 박옥주가 지향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좋아하고, 자신 역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자 하며, 따뜻한 음악을 연주하고자 한다. 따뜻한 마음에서 따뜻한 음악이 나온다는 것을 굳게 믿으면서.
따뜻한 음악은 과연 어떤 음악일까? 개인적으로 오르간 연주자 박옥주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의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음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고, 그를 아직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은 그의 음악을 통해서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음은 마음으로 전해지게 마련이고, 음악을 매개로 할 때에 더 잘 전해지게 마련이다. 2년여의 시간 동안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에서 함께 음악을 하면서 그렇게 그의 따뜻한 마음은 내게 전해졌고, 나는 이제 그가 나를, 그리고 우리를 떠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