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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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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손에 잡히는’ 선거가 되려면

공진성 2012. 4. 16. 08:20

 

 

 

11일에 제19대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가 실시된다. 입법부인 국회는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매우 중요한 권력 기관이다. 견제가 없으면 행정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고, 그 권력 앞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무력해진다. 국민이 국회의 구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국회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행정부의 권력을 견제하고,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물론 국회 역시 하나의 권력 기관으로서 견제되어야 한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때문이다. 국회를 다른 권력 기관을 통해 수평적으로 견제할 수도 있지만, 국민이 직접 정당과 선거에 참여해 수직적으로 견제할 수도 있다. 국회의원 선거는 행정 권력을 수평적으로 견제할 입법 권력을 새롭게 구성하는 일이자 동시에 그 권력을 국민이 직접 통제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치인은 선거에서 당선되기를 바라고 또 재선되기를 바란다. 이 바람이 없다면 국민이 정치인을 통제할 방법이 사실상 없어지므로 이 바람은 국민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바람을 실현해주기를 바란다. 총선은 정치인들의 공통된 바람과 국민들의 다양한 바람이 만나는 4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국가 행사이고, 국회는 그 바람들이 만난 결과의 표현이다. 그런데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구체적이지 않고 또 쉽게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우리는 허황된 생각에 빠져 이리저리 헤매는 사람을 가리켜 ‘바람 들렸다’ 또는 ‘헛바람 들었다’고 말한다. 선거는 분명히 바람과 바람이 만나는 것이지만 그것이 그저 바람에 그치면 매우 공허해진다. 이 바람을 손에 잡힐 정도로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노력이 바로 ‘매니페스토(manifesto)’이다.

 

‘매니페스토’라는 말은 라틴어 ‘마니페스툼(manifestum)’에서 왔다. 매우 실용적이었던 고대 로마인들은 법정에서도 ‘손에 잡힐 정도로’ 구체적인 증거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 말이 오늘날 이탈리아와 영국을 거쳐 선거에서 공허하게 부는 바람들을 손에 잡히는 형태로 구체화하여 공개적으로 표명하려는 노력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 법정에서 증거 없이 피고에게 유죄를 선고해서는 안 되듯이 선거에서도 아무런 증거 없이 후보자에게 표를 주거나 거둬서는 안 된다. 유권자의 판단을 받기 위해 선거에 나선 후보자는 자신의 과거 행적과 미래 계획을 손에 잡힐 듯이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고, 재판장인 유권자들은 그 증거물을 꼼꼼히 살펴보고 유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제출된 증거물이 위조된 것은 아닌지,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은 또 아닌지, 증거들이 서로 충돌하지는 않는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이번 선거를 헛바람 들린 사람들 간의 허무한 만남이 되지 않도록 후보자와 유권자가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노력에 국가의 미래와 우리 자신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 글은 <조대신문> 2012년 4월 9일자 사설에 실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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