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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지난달 15일부터 24일까지 광주와 함부르크의 청년들이 교류하는 행사가 치러졌다. 2년 전 처음 시작된 두 도시의 청년 교류가 독일 청년들의 이번 광주 방문을 통해 3년째 이어지게 됐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지게 될지 모르는 이 교류의 시작은 이렇다. 2022년 4월쯤이었다. 한때 우리 대학에서 독일어를 가르친 적이 있는 함부르크 출신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안톤 숄츠 씨가 나에게 전화를 해 함부르크의 청년들이 교류 파트너를 찾고 있는데 혹시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중간에서 연결하는 역할을 맡겠노라고 대답했고, 그해 9월 처음 함부르크에서 청년 16명이 광주를 방문해 우리 대학 학생들과 10일간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이 교류는 함부르크의 어느 청소년의 집에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함께..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큰 사건은 조국혁신당의 깜짝 등장과 의외의 성공이다. 여당의 참패와 야당의 압승도 조국혁신당의 돌풍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조국혁신당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24.25%의 표를 얻어 제22대 국회에서 12석을 차지하게 됐다. 단독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규모는 아니지만, 애초에 법안을 단독 발의할 수 있는 10석을 목표로 시작한 정당으로서는 만족할 만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대표의 운명과 결부된 이 당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조국혁신당에 한 가지 기대를 품게 됐다. 지난 2월 13일 조국 대표는 자신의 고향 부산에서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선언 장소는 1979년 부마항쟁을 기념하는 민주공원이었다. 다음날 조 대표는 광..

“당원 동지 여러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당에 속해 있지 않던 사람이 선거 출마를 위해 정당에 가입한 뒤 마치 늘 정당에 속해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낯설다 못해 이상하기까지 하다. 동지(同志)는 “목적이나 뜻이 같음, 또는 그런 사람”을 뜻한다. 목적이나 뜻이 전부터 같았다면 왜 전에는 당원이 아니었을까? 갑자기 같아진 것이라면 그 목적이나 뜻은 과연 무엇일까? 일찍이 교부(敎父) 아우구스티누스는 국가에 정의(正義)가 없으면 강도 무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익을 위해 뭉친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수가 더 많고, 그래서 강해보일 수 있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그 성향 때문에 결국 서로 더 많이 가지려다가 분열될 수밖..

2024년은 김대중 전 대통령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신안 하의도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자란 청년 사업가 김대중은 1971년 40대의 나이에 야당 대통령 후보로서 박정희와 맞붙었다. 여러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도전한 끝에 그는 결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평생에 걸친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호남이 배출한 20세기 최고의 정치인이기에 그에 대한 호남민의 자부심도 크고 그의 뒤를 이을 정치인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그러나 해마다 그의 기일이 되면 그런 ‘큰 인물’이 나오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탄신 100주년인 올해에도 어김없이 그랬다. 총선을 앞두고 많은 정치인이 스스로 그런 ‘큰 인물’이 되겠다고 외치지만, 그럴수록 부재..

5월에는 광주에 많은 손님이 찾아온다. 5월 18일 공식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그날을 비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그저 사람이 많이 몰리는 때를 피해 늦게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10일간의 항쟁이 끝난 뒤 죽은 누군가를 추모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지난 5월 27일에도 김의기 선배의 죽음을 추모하는 서강대 후배들이 광주를 찾았다. “피를 부르는 미친 군홧발 소리가 고요히 잠들려는 우리의 안방에까지 스며들어 우리의 가슴팍과 머리를 짓이겨 놓으려고 하는 지금,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무참한 살육으로 수많은 선량한 민주시민들의 뜨거운 피를, 뜨거운 눈동자와 가슴을 오월의 하늘 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봉기가 유신잔당들의 악랄한 언론탄압으로 왜곡되고 거짓..

시평 쓰기가 너무 어렵다. 글쓰기 자체가 힘든 것도 있지만, 한국의 정치 상황이 너무 빨리 변해서 더 힘들다. ‘시평(時評)’인 만큼 시국에 맞춰 글을 써야 할 텐데, 생각이 좀 정리될 법하면 상황이 바뀌어서 애초의 소재가 이미 사람들 관심 밖에 있고, 새로운 관심사에 대해서는 내가 아직 쓸 준비가 안 되어 있고, 늘 이런 식이다. 부족한 내 지식과 순발력을 우선 탓해야 하겠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깊이 생각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변화 속도 탓도 좀 하고 싶다. 지난 5주 동안 내 머릿속에 머물렀던 여러 주제 가운데 첫 번째는 추첨제였다. 광주 광산구의회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의장 후보 선출에 합의하지 못해서 결국 ‘제비뽑기’로 결정한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언..

지난 5월 한 달 동안 많은 사람이 광주를 방문했다. 특히 보수 정치인들의 방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 마침 5.18 기념식이 있기도 했지만, 그 전부터 이미 보수 정치인들이 부쩍 광주를 더 자주 찾고 있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5.18국립묘지에 와서 무릎을 꿇고 참배한 이후 이제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은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서나 선거가 끝난 후 5.18묘지를 맨 먼저 찾아오기까지 한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나 하던 낯선 행동이다. 이런 ‘호남 껴안기’ 행보 덕분인지 국민의힘 지지율이 이 지역에서 무려 두 배나 올랐다고 한다. 보수 정치인들의 이런 행보를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그런데 이들 보수 정치인의 광주 방문 전후의 행적에는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마치 좌우 균형이라도 맞추려는 듯이 대구를..
비논리적인 주장은 그저 비논리적인 주장일까 논리적인 사고와 주장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게 해준 사건이 얼마 전에 있었다. 오는 4월 개통 예정인 호남선 KTX의 운행 노선과 관련한 문제였다. 사건의 발단은 코레일이 신설 호남선 KTX의 ‘일부’를 서대전역을 경유하게끔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었다. 즉각 반대 주장이 제기됐다. 서대전역을 경유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와 근거가 지극히 비논리적이었다. 서대전역 경유를 반대하는 주장의 논리적 구조는 간단했다. 신설 호남선 KTX가 서대전역을 경유하는 것은 일단 약속을 어기는 것이며(1), 고속철을 ‘저속철’로 만드는 것이고(2), 호남민에게 손해가 되므로(3), 서대전역 경유 계획을 백지화하고 호남선 KTX를 애초의 계..
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한다(7) 아렌트와 ‘생각’하는 인간 팔자 좋게도 1년이 넘게 유럽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혹시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광주에 있습니다. 글을 쓸 때에만 잠시 마음으로 유럽에 가 있을 뿐입니다. 유럽에서 머물렀던 때를 떠올리며, 유럽과 광주를 교차시키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점점 얘깃거리가 떨어져 가고 기억도 가물가물해져서 걱정입니다. 조만간 다시 유럽에 다녀와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어느 도시에 가면 좋을까요? 우리는 보통 ‘유럽’에 간다고 말합니다. 제한된 수의 나라와 도시를 방문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시아’에 간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유럽의 국경 개념이 우리와 같지 않아서 이동이 편하고, 또 도시의 역사가 국가의 역..
더 다양할수록 더 완전하다 파리의 남쪽 끝에는 대규모의 국제대학기숙사촌(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de Paris)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각국에서 파리로 유학 온 학생과 연구자, 예술가들이 먹고 자는 곳입니다. 130개 이상의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니 그 사실만으로도 놀라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유명한 것이 단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국적이 다양하고 그 수가 많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곳에 있는 40개의 ‘메종’이 그 집에 이름을 부여한 40개의 국가에 의해 지어졌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예컨대, 인도관, 캄보디아관, 일본관, 이탈리아관, 스위스관이 있습니다. 때로는 각각의 집에 고유의 이름이 붙어 있기도 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