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직접 민주주의’라는 유령과 ‘대표’의 어려움 본문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직접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근대 민주주의와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18세기 후반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미국은 새로운 통치 체제를 도입했다. 그것은 왕정이 아니어서 공화정이라고 불렸지만, 아직 민주정이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민주정은 가난하고 무식한 대중의 ‘직접’ 참여를 가리키는 위험한 이름이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새 정부에 그런 이름을 붙이기를 꺼렸다. 그러나 결국 이 새로운 체제는 민주주의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새로운 민주주의를 고대의 ‘직접’ 민주주의와 구별해 ‘대의’ 또는 ‘간접’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현대의 대의 민주주의가 어쨌거나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 복잡한 정치 과정의 시작이 ‘민(民)’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직접 민주주의에서는 정치 과정의 시작과 끝을 모두 ‘민’이 했다.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몇 가지 일을 빼고 모든 일을 시민이 직접 했다. 재판도 직접 했고, 법도 직접 만들었고, 행정도 직접 담당했다. 많은 시민이 적은 수의 관직을 돌아가며 맡기 위해 임기를 줄였고, 공평하게 맡기 위해 추첨을 했다. 도시국가의 규모가 작기도 했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직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노예제 덕분에 생산 활동의 의무에서 벗어난 시민이 온전히 정치에 헌신할 수 있었다.
근대 민주주의가 대의제 형태를 취하는 이유는 다수 국민이 경제 활동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자유의 전제 조건이고, 자유로운 사람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면, 과거에 노예주들만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듯이 오늘날에는 자산가들만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년간의 민주화 과정은 참정권의 확대 과정이었다. 참정권이 직접 정치할 권리를 의미했다면 그 확대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가 전문 관료들에 의해 운영되었고, 그래서 정치적 참여의 권리가 전문 관료들을 통제할 대표자를 선출할 권리로 축소 이해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루소는 투표권을 행사하면서 자유롭다고 여기는 것을 비판했다. 선거일 외의 나머지 날에 남의 지배를 받는데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루소의 비판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시민의 직접 참여를 강조했고, 그들의 지향은 참여민주주의라고 불렸다. 시민의 더 많은 참여가 더 나은 시민을 만들고, 더 나은 시민이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든다는 생각이다. 이때 참여는 ‘더 나은 시민’을 만들 수 있는 참여이다. 마을 단위의 주민자치 활동이나 기초자치단체의 운영에 참여하는 것이다. 광역 단위와 전국 단위의 정치에 직접 참여하기는 어려우니까 그보다 작은 단위에서 직접 참여함으로써 더 나은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다수의 시민은 현실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으면서 인터넷을 통해 전국 단위의 정치에 간접적으로 참여한다. 정당에도 가입하고, 기꺼이 돈도 내고, 댓글도 달고, 의사도 표시한다. 그러나 동네의 시시한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는다. 동네 정치는 극적이지 않아서 흥미와 관심을 끌지 못하고, 현대적 삶의 높은 이동성과 불안정성은 한 지역에 관심을 가지기 어렵게 만든다. 고도로 발전한 정보통신기술이 그 높은 이동성과 불안정성 속에서 사람들을 전국 단위의 큰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직접’ 참여가 아닐뿐더러 ‘더 나은’ 당원과 시민을 만드는 참여도 아니다.
민주당이 당헌을 개정해 국회의장 후보와 원내대표를 선출할 때 권리당원 의사를 20% 반영하기로 했다. 명분은 ‘직접 민주주의’ 강화였다. 그러나 그것은 직접 민주주의도 아니고, 당원들의 불만에 제대로 대응하는 것도 아니다. 불만의 핵심은 정당 공천을 받아 대표자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정작 당원의 생각을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합당한 반응은 당원의 생각을 헤아려 더 잘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일정 비율의 몫을 할당하는 것은 아니다. 일정 몫을 당원에게 주었으니 나머지 몫은 의원들이 알아서 쓰겠다는 것인가? ‘대표’는 단순히 시키는 대로 하는 것도 아니지만, 제멋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어려운 일이 바로 대표이고, 그러므로 훈련이 필요한 정치적 기술이다. 개념을 정확히 사용해야 문제를 직시할 수 있고, 문제를 직시할 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