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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4.15 총선, 호남의 선택은? 본문

논문 에세이 번역 책

4.15 총선, 호남의 선택은?

공진성 2020. 2. 14. 17:38

정치학자 최장집은 일찍이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를 대표체계의 왜곡에서 찾았다. 그에 의하면, 6.25 전쟁을 겪으면서 남한의 정치이념적 지형은 마치 왼쪽 팔이 잘려 나가고 오른쪽 팔만 남은 것처럼 협소해졌다. 인민을 모조리 정치적 성향에 따라 좌우로 나누어 각각 북과 남으로 보내버린 것은 아니지만, 마치 그런 것처럼 정치적 대표체계는 북과 남에서 좌와 우로 좁아졌다. 그래서 남한의 인민들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성향에 따라 자신을 대표할 정치인과 정당을 선택할 수 없었고, 좁은 이념적 지형 안에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성향에 맞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이념적 지형이 좁아진 결과, 중도 정당은 좌파 정당으로 오해되어 탄압받았고, 좌파 정당은 극좌 정당으로 낙인찍혀 금지되었으며, 우파 정당은 중도 정당 행세를 했고, 극우 정당은 마치 정상적인 우파 정당인 것처럼 여겨졌다.

사람들 사이의 정치적 성향 차이는 어디에서나 비슷하게 나타난다. 모든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 비슷하다는 말이 아니라, 어디에나 진보적인 사람이 있고 보수적인 사람이 있으며, 어디에나 저항적인 사람이 있고 순응적인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또 어디에나 조금 더 평등지향적인 사람이 있고 덜 그런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정치적 성향의 차이가 각자의 경제적 조건에서 비롯하는지, 각자의 주관적 의식에서 비롯하는지, 아니면 그저 연령의 효과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디에나 상이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성향의 이런 다양성과 차이를 무시하고 노동자 계급은 모두 동일한 정치적 지향을 가져야 한다거나, 특정 지역 사람 또는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이면 모두 동일한 정치적 지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반다원적이고, 그러므로 또한 반민주적이다.

1980년 이후 최근까지 호남에서 지금의 민주당 계열 정당에 몰표에 가까운 지지를 보낸 것은 호남 지역민만이 이념적으로 급진화한 결과도 아니고, 지역 출신 정치인에 대한 무조건적 애정의 표출도 아니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그것은 19805월에 벌어진 민주화 운동과 신군부의 무력진압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의해 구조적으로 제약된 선택의 결과이다. 지역민 각자의 계급적 조건, 사회적문화적 성향, 정치적이념적 지향과 무관하게 민정당과 그 정당을 계승한 정당을 지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1990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을 호남민이 지지할 수 없었던 것이 영남 출신의 노태우와 김영삼 때문이 아니었듯이, 김대중을 지지한 것이 그가 호남 출신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또한 민자당이 그저 보수정당이어서 지지하지 않았고 민주당이 그저 진보정당이어서 지지한 것도 아니었다.

1980년 이후 대선에서의 호남민의 정치적 선택이 진보적 정치이념이나 지역화한 종족주의에 근거한 것이 아님은 1980년 전의 대선 결과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1963년에 치러진 제5대 대통령 선거의 전남 지역 선거 결과는 민정당 윤보선 후보 35.93%,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 57.22%였다. 1967년 치러진 제6대 대통령 선거의 전남 지역 선거 결과는 신민당 윤보선 후보 46.61%,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 44.58%였다. 1971년에 치러진 제7대 대통령 선거의 전남 지역 선거 결과는 신민당 김대중 후보 62.80%,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 34.43%였다.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그 전 대선에서의 윤보선 후보의 득표율보다 16% 포인트를 더 얻었지만, 그것을 그저 호남 출신 후보에 대한 지역민의 선호 결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박정희의 독재가 지속된 것에 대한 반감이 표출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60년대와 70년대의 대선 결과를 보면, 호남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조금 더 ()’ 성향을 보이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1980년 이후에 나타난 것과 같이 특정 정당과 후보에 대해 압도적인 지지를 보였던 것은 아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87년 민주화 이후 유권자의 투표 행태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역 균열이 사실은 가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념적 스펙트럼 상에서 거의 모두 오른쪽에 위치한 정당들끼리 내용적 차별성 없이 경쟁하려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출신 지역의 차이를 허구적 균열로서 이용했다는 것이다.

강한 계급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에는 다 똑같은 보수 우파 정당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의 상대적 차이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 상대적 차이 가운데 하나가 북한과 반공주의에 대한 태도이다. 사회적경제적문화적으로 보수적인 호남민이 지금도 여전히 자신을 진보적인 사람으로 인식하는 근거는 북한에 대한 포용적 태도와 반공주의에 대한 거부감이다. 분단과 독재는 역사적으로 호남 지역을 희생양 삼아왔고, 그래서 호남민들은 분단의 극복과 민주화를 지지하면서 자신들을 진보세력으로 인식해왔다. 그리고 그런 진보적호남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 역시 자신의 계급적 조건이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상대적으로) ‘진보적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자신들의 직업정치인으로서의 이익에도 부합했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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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선에서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2002년 대선을 통해 그 정권이 다시 한 번 연장되었다. 그 두 차례의 대선에서 호남민들은 민주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모두 동질적인 것도 아니었고, 그 유권자들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동질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 민주당 내의 신구 세력 간의 갈등이 이미 한 번 표출된 바 있다. 열린우리당 창당을 통해 민주당 내의 신구 세력 간의 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과 정치인들이 다소 억울하게 수구적 지역주의자로 매도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집권당 내의 신구 세력 교체는 필연적이었다. 다만 그런 세력 교체가 창당과 분당/탈당으로 이어지는 것은, 한국의 정당정치의 뿌리가 얕은 탓도 있지만, 앞에서 언급한 이유로 호남 지역 내에서 다소 이질적인 세력이 불가피하게 한 정당 안에 모여 있었던 탓도 커 보인다. 즉 다른 지역에서라면 서로 다른 정당에 속해 있을 법한 사람들이 호남 지역에서는 모두 민주당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최근에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경력 표기 논란과도 관련된다.)

2007년과 2012년 대선을 위해 억지로 합쳐놓은 세력들과 유권자들은 두 차례의 대선 패배를 겪으면서 다시 분화하기 시작했다. 승리에 대한 기대는 각자의 양보를 가능케 함으로써 구심력으로 작용하지만, 패배에 대한 예상은 각자의 양보를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원심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문재인을 중심으로 대선을 치르려는 세력과 안철수를 영입해 이른바 친노/친문세력을 제압해 보려는 세력 간에 갈등이 벌어졌고, 결국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민주당 내의 신구 세력이 분화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이었던 (정동영, 천정배 등의) 호남 출신 의원들이 당시에 민주당에 남았던 (박준영, 박지원 등의) 사람들과 함께 국민의당을 만들었고, 과거 민주당에 남았던 (추미애 등의) 사람들이 이번에는 당시에 열린우리당을 만든 (이해찬 등의)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과연 같은 당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특히 호남지역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2007년과 2012년의 대선에서 80%90%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연거푸 패배를 겪으면서 호남의 유권자 사이에서는 회의(懷疑)가 생겨났다. 이런 압도적 지지에 과연 어떤 대의명분이 있는 것인지, 그리고 호남의 적은 인구 수 탓에 아무리 몰표를 줘도 지금과 같은 지역적 대결 구도 안에서는 승산이 없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지역주의적 몰표라는 비난을 들어가면서까지 민주당을 지지해줬지만 두 차례의 집권 시기를 거치며 지역 발전을 특별히 체감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결과로 중앙과 지방,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정규직 부문과 비정규직 부문 간의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진 탓이었지만, 기회주의적 정치인들은 지역민의 경제적 불만을 동원해 노무현/문재인의 이른바 호남홀대를 비판했고, 당 내에서의 자신들의 정치적 무력함을 마치 호남 출신이어서 차별받는 것처럼 호도했다. 안철수라는 차기 대선 후보의 존재와 호남 출신 정치인들의 선동이 지역민들 사이에 퍼져 있던 의심과 결합하여 결국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 돌풍이 일었다.

국민의당은 호남지역에서 거의 모든 지역구 의석을 차지했고, 정당투표에서 전국적으로 민주당보다 더 많은 표를 얻음으로써 비례대표의석도 많이 차지했다. 그러나 호남지역 의원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역설적으로 민주당은 탈호남화할 수 있었고 영남에서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었다. 안철수와 함께 민주당 내의 우파 세력이 분화하여 중도적 성향의 국민의당이 탄생하면서 오히려 새누리당의 의석이 줄어드는 효과도 나타났다. 말하자면, 그동안 민주당이 호남당이어서 찍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민주당을 찍을 수 있게 되었고, 또 민주당이 좌파당이어서 찍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국민의당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정당체계의 변화가 2016/17년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가능케 했고, 또한 20175월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승리를 가능케 했다. 마치 1987년 대선에서 세 명의 (혹은 네 명의) 후보가 경합한 결과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 것처럼, 2017년 대선에서도 세 명의 (혹은 네 명의) 후보가 경합한 결과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안철수의 역설! 역사의 간지!) 호남에서도 문재인 후보는 60%의 지지를 얻었고, 안철수 후보는 30%의 지지를 얻었다. 이는 민주화 전에 치러진 마지막 직선제 대통령 선거(1971)에서 전남 지역 유권자가 보여준 김대중 후보와 박정희 후보에 대한 지지의 차이와 묘하게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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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2, 미국에서 돌아온 안철수가 바른미래당을 탈당하고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탈이념, 탈진영, 탈지역을 표방했다. 안철수는 호남지역 의원들과 손잡고 국민의당을 만들었지만, 국민의당이 가진 지역적 한계를 이내 깨닫고서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강행했다. 그러나 중도라는 노선조차 부담스러워한 호남지역의 의원 다수는 통합에 반발해 국민의당을 탈당했고, 그후 보수라는 이념과 영남이라는 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승민계 의원들도 결국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국민의당이 열었고 바른미래당 통합을 통해 더욱 확장될 수도 있었던 중도정당의 길은 지난 2년여의 시간 동안 거의 폐허가 되었다. 탄핵에 반대한 20% 미만의 (유권자가 아니라) 정치인을 배제하고 새롭게 정당체계를 수립했어야 했다. 그러려면 중도세력이 더욱 강해져서 기존의 보수세력을 대체했어야 했다. 2016년 총선을 통해 그렇게 될 가능성은 이미 드러났고, 탄핵을 거치면서 그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 하에서 치러지는 총선에서 자신의 재선가능성을 염려한 정치인들이 허구적인 지역이념에 집착하면서 중도정당은 무너졌다. 결국 거대 양당의 대립은 강해졌고 내로남불의 진영 논리만이 넘쳐나게 되었다. 안철수의 탈이념, 탈진영, 탈지역구호는 이렇게 이해된다.

21대 총선 투표일까지 이제 70일도 채 남지 않았다. 과연 이번 총선은 어떤 구도로 치러질까? 선거가 정치의 모든 것은 아니며, 더욱이 선거가 소비자들이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듯이 선호하는 후보와 정당을 선택하는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선거는 중요하며, 선거에서 어떤 선택지가 유권자들의 선택을 위해 제공되는지도 중요하다. 이미 어느 정도 확정적이지만, 호남에서 지역구 선거는 매우 재미없게 치러질 것이다. 비민주당 후보들이 선전할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전한다고 한들 현재로서는 개인의 당선 외에 별다른 정치적 의미가 없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총선에서의 호남민의 선택은 거의 늘 그랬다. 97년 대선까지는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었고, 2002년 대선에서는 지역주의 타파라는 정치적 의미라도 있었다. 그리고 굳이 의미를 찾자면, 2016년 총선에서는 제3정당을 키워줌으로써 (의도치 않게) 한편으로는 민주당을 탈호남화하여 전국 정당화와 재집권을 가능케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공/극우 보수세력을 조금이나마 위축시킴으로써 한국 정치를 정상화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했다. 그러나 그 외의 선거에서 호남민의 선택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졌으며, 앞으로 또 가지게 될까? 앞으로도 계속 호남민의 몰표가 한국 정치의 민주화와 정상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질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몰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던 조건들이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다.

2016년 국민의당 돌풍은 지역적 수준에서의 정당간 경쟁구도 형성을 통해 전국적 수준에서 제한적이나마 정당체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지역에서 출발한 변화의 흐름이 결국 지역에 발목이 잡혀서 끊기고 말았다. 그렇다면 먼저 전국적 수준에서 정당체계에 변화를 일으키면, 이후에 지역적 수준에서도 의미 있는 경쟁이 가능해질까? 안철수의 또 한 번의 창당 시도가 그저 중도보수 대통합 전의 몸값 불리기에 불과할지, 아니면 먼저 전국적 수준에서 양당 대립구도를 무너뜨림으로써 (의도치 않게, 그리고 역설적으로) 호남지역에서의 의미 있는 양당 경쟁구도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민정당과 무관한 자유주의적 보수정당을 확립하는 데로 나아가게 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호남민이 무의미한 몰표를 계속 던지지 않을 수 있으려면 두 번째 시나리오대로 사태가 전개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바른미래당이 통합하여 그런 선택지를 지역의 유권자에게 제공할 수 있을까? 통합의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이번 총선에서 제공된 선택지가 과연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관건은 행위자의 이기적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보편적 이념을 어느 정당이건 간에 확립하고 보유할 수 있느냐이다. 그런 이념이 없으면 결국 대중의 즉각적 요구에 부응하는 대중추수 정당이 되거나, 정치인 개개인의 사익추구가 원심력으로 작용해 결국 당이 해체될 것이다. 지금 보수 정당들이 지리멸렬한 이유도 그들 각자의 사익추구를 억제할 보편적이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 각자가 또는 모두가 신봉하는 이념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이념이 그들 모두를 자제하고 복종하게 만들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은 결코 그 자체로 이념이 아니며, 이념이 없는 정치는 결국 무의미한 권력 추구에 불과한 것이 된다. 안철수가 왜 탈이념과 실용주의를 주창하는지는 알겠지만, 그때그때의 이슈에 끌려다니지 않고 중도실용의 노선에 동의하는 사람조차도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사익추구의 원심적 경향을 제어하려면 강력한 이념, 즉 사명(使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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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의 민주당의 국정운영에 대해 말들이 많다. 당파적인 비난과 그에 대한 당파적인 옹호의 말들 사이로 진실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 말들에 대한 동의 여부에 따라 이번 총선에서 개별 유권자의 선택이 갈릴 것이다. 몇 가지 생각해봐야 할 말들이 있다.

먼저, 80% 이상의 국민과 그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탄핵에 동의했는데, 그 결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와 이들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을 (적폐로 몰지는 않더라도) 국정운영에서 배제했다는 것이다. 배제까지 하지는 않았더라도 포함하지 않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포함하려는 대통령의 의지가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대통령제 하에서 차기 집권을 노리거나 문재인 정부와 책임을 나누어지고 싶지 않은 야당이 제안을 거부한 탓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애초에 함께할 생각도 없었고 함께하기에는 입장도 너무 다른 정당이 당파적 이유에서 현 정부가 야당을 협치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고 소리 높이며 자신이 가진 거부권만을 휘둘렀다. 그래서 결국 자기만 합의에서 배제되었다. 그러자 대통령과 민주당이 정치적 경쟁의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면서 적폐청산을 내세워 제거하려 한다거나 정치를 종교화하고 내전화한다고 주장했다. 야당과 언론, 그리고 일부 지식인들의 이런 주장에 영향을 받은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이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서서히 철회했고, 그 와중에 이른바 조국사태가 벌어졌고 청와대 하명수사 사건까지 터졌다.

대통령과 민주당이 정말 위선적인 권력집단인 것일까, 아니면 반전의 기회를 노리는 제1야당과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사고방식대로 대통령과 여당을 오해하고서 매도하는 것일까? 대통령과 청와대가 정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보수세력의 국민에 대한 무력함이 대통령과 청와대를 마치 견제 받지 않는 전제권력처럼 느끼게 하는 것일까? 민주당은 시효가 지난 민주화 이념을 팔아 자신들의 사익을 채우는 기만적인 집단일까, 아니면 그것이 민주적인 제도 안에서 자신들이 마치 중요한 유권자 집단을 대변하는, 그러므로 보존되어 마땅한 집단인 것처럼 주장하며 퇴장을 거부하는 반공 보수세력의 악의적 선동일까? 이런 당파적 주장과 해석들 사이에서 총선을 앞둔 호남민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민주당을 선택함으로써 대통령을 계속해서 지지해주는 것이 정말 적폐를 청산하고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평화 정착에 기여하는 길일까, 아니면 호남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친문 세력의 확장과 사적 이익추구만을 돕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정당을 선택해봐야 당선 가능성도 낮고 몇몇 사람이 당선된다고 한들 대세에 지장을 줄 만큼의 의미가 없다면, 차라리 확실히 민주당을 밀어주고 그 대가로 지역에 대한 과감한 투자라도 요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 또 잘하면 호남 출신 대통령이 민주당에서 배출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여부를 정확히 알 수도 없지만, 앎 자체가 믿음에 의해 경도되는 상황이다. 사실을 알기 위해 노력하거나 그냥 자신의 믿음을 긍정하는 것 말고, 아예 다른 방식으로 선택의 이유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나는 한국 정치의 정상화, 즉 정당들을 통해 유권자의 다양한 이익과 성향이 대표되기 위해서도 단기적중기적으로는 전국적 수준에서 일단 중도세력이 강해져서 냉전적 반공 보수세력을 극우의 자리로 밀어내 궁극적으로 정당정치의 장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또한 비례대표제보다 단순다수대표제가, 의회중심제보다는 대통령제가 유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상황에서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면 오히려 극단적 이념을 표방하는 세력과 지역주의 세력이 온존될 우려가 있고, 그것이 기존의 왜곡된 대표체계의 잔여적 지속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의 중심세력이 반공주의 세력에서 자유주의 세력으로 완전히 교체된 후에야 비로소 의회중심제와 같은 합의제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뀐 선거제도 하에서 나와 우리의 선택이 어떤 결과와 정치적 효과를 만들지 면밀히 따져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는 보수가 먼저 정상화해야 호남 정치가 정상화할 수 있고, 결국 진보도 정상화할 수 있다. 그래야 남북 화해와 평화, 5.18 진상규명을 그저 외치는 것만으로 진보연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진보의 현재적 불충분을 근거로 현재의 비정상적 보수를 옹호하여 온존시키면 호남의 정치는 앞으로도 계속 정상화할 수 없게 되고, 호남에서의 유의미한 정당간 경쟁이 계속 부재하게 되면, 결국 진보 역시 정상화할 수 없게 된다. 결국 호남 정치가 과거와는 다른 의미에서 한국 정치의 진정한 민주화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도 호남의 유권자들은 호남 지역에서의 후보자간 경쟁만을 보지 말고, 전국적 차원에서의 정당체계의 변화와 궁극적 정상화 가능성을 봐야 한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선택의 구도 속에서 차선이나 차악을 선택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선택의 구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 이 글은 2020년 2월 6일 (사)광주전남발전정책포럼 주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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