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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진실성뿐만 아니라 대학의 진실성도 물어야 한다

공진성 2020. 12. 29. 10:30

가수 홍진영의 학위논문이 표절이라는 의혹이 얼마 전 제기됐다. 여론은 그저 홍진영의 사실 인정과 방송 하차 여부에만 관심을 보인다. 계속 방송에 나온다는 사실을 문제 삼는 것을 보면 여론이 원하는 것은 그저 홍진영의 방송 하차, 즉 경제적 손실이 아닌가 싶다. 모든 일에 대해 각자의 관심이 다른 것은 당연하니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나 언론의 연예 담당 기자, 그리고 일반인의 관심이 학문에 있지 않은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다만 대학이 마땅히 기울여야 할 관심은 따로 있고 해야 할 일도 따로 있다.

한때 대학에는 졸업논문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그때의 대학생들은 졸업을 하기 위해 논문을 써야 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이 졸업논문 대신 토익점수 몇 백 점을 요구하는 대학도 있다고 하지만, 이제 대학 졸업의 조건은 사실상 학점 취득이 전부이다. 여전히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논문을 써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반대학원 얘기이다. 특수대학원의 사정은 다르다. 논문을 쓰지 않는 학위과정이 생겨났고 점점 늘고 있다. 한 학기를 더 다니면 논문을 쓴 것으로 쳐준다. 양질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일반대학원에서도 석ㆍ박사 연계과정을 택하면 석사 논문을 쓰지 않고 박사과정에 진학할 수 있다. 그러면 학위논문은 박사과정을 마칠 때만 쓰게 된다. 그러나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을 때 논문을 쓰지 않은 사람이 박사 논문을 쉽게 쓸 수 있을 리 없다. 박사학위 논문에 자꾸 시비가 붙는 이유이다. 그런데 그 시비도 학위논문의 우수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표절률 몇 퍼센트’ 식으로 표현되는 진실성에 관한 것이다. 표절률이 높으면 그 자체로 가치 없는 논문처럼 여겨진다. 또 다른 양질전환이다.

사실 학위취득이라는 양질전환의 기적은 학위과정 중의 작은 기적들이 누적된 결과이다. 학생들은 8학기를 마치면 졸업장을 받듯이 15주를 마치면 학점을 받는다. 물론 그 15주 동안 3/4 이상 출석해야 하고 시험도 치러야 한다. 출석이 부족하면 학점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출석만 충분하면 비록 공부가 부족해도 학점을 받을 수 있고, 학점을 다 모으면 졸업할 수 있다. 3/4 출석과 과제 제출로 표현되는 최소한의 성실성이 학점 취득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다. 그 최소한의 양이 몇 학기 동안 쌓여 질적 전환을 일으킬 것이라는 믿음 위에 오늘날 대학(원)이 서있다.

학점과 학위 취득을 위해 필요한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돈이다.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준비가 되어 있어도 대학에 등록할 돈이 없으면 소용없다. 그러므로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을 투입하면 학위가 나온다. 이것이 오늘날 학생들의 인식이고 대학이 학위를 수여하는 방식이다. 학위논문을 써야 하는 석ㆍ박사 과정에서라고 사정이 다르지는 않다. ‘카피킬러’의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 만한 논문을 쓰는 일이 추가될 뿐이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학생들은 대학(원)에 진학하고 대학(원)은 학위를 수여한다. 다 돈 때문일까? 학위가 있어야 취직도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으며, 학생이 있어야 대학이 운영될 수 있고 교직원에게 월급도 줄 수 있기 때문일까?

홍진영의 논문이 얼마나 ‘진실’한지 여부는 대학의 연구진실성위원회에 의해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그와 무관하게 우리는 대학의 책임을, 우리들 자신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특정인에게 학위를 수여한 사실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학위 자체를 사실상 매매하고 있는 대학의 현실에 대한 우리들 자신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학위제조공장으로 전락한 대학의 ‘진실’은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조사로는 밝혀질 수 없기 때문이다.

※ 이 글은 2020년 11월 30일 발행된 <조대신문> 1129호의 사설로 작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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