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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키워야 지킬 수 있다

공진성 2020. 12. 29. 10:27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그동안 전 세계는 미국 대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후보 한 사람의 당락에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지는 한반도 평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경쟁하는 두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대한민국 정부는 철저히 대비했을 것이다.

일국의 대통령 선거에 이처럼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만큼 미국의 힘이 막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의 대선에 투표와 같은 방식으로 참여할 수 없다. 사후적으로 우리 정부를 통해 대응할 수 있을 뿐이다. 자국 정부를 구성하는 선거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그것이다. 정부가 우리 삶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만, 우리 삶에 대한 타국의 직간접적 영향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약소국 국민은 이중적으로 서럽다. 국가가 국민에게 좋은 것을 충분히 공급해주지도 못하지만, 외국의 부정적 영향을 제대로 막아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서럽다고 하소연해봐야 바뀌는 것은 없다.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국권을 빼앗긴 민족의 설움을 잘 아는 한국인은 그래서 바깥 상황에 민감하고 늘 힘의 비교에 신경 쓴다. 강해지려는 욕구가 때로는 강자에게 줄서기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사립대학의 처지도 비슷하다. 가난한 지자체의 주민은 부유한 지자체의 주민보다 환경 변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부실한 집에 사는 사람이 튼튼한 집에 사는 사람보다 추위와 같은 외부 환경 변화에 더 많이 영향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개인의 생존 전략으로서는 강대국으로 이민가고, 더 부유한 지자체로,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 합리적이겠지만, 모두에게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집과 우리가 사는 곳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

최근 지자체들 간의 통합 논의가 쏟아지고 있다.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이라는 다가올 한파 앞에서 서둘러 집을 정비하려는 것이다. 지금처럼 잘게 쪼개진, 그래서 수도권 자치단체들에 비해 무력하면서도 얼마 되지 않는 이권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자치단체들로는 주민의 삶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조금 더 큰 공급 능력과 보호 능력을 갖추기 위해 규모를 키우려는 것이다. 광주와 전남, 대구와 경북, 그리고 이른바 ‘부울경’의 통합 논의가 그것이다.

통합의 핵심은 힘을 키우는 것이고, 다시 그 핵심은 주민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주민의 삶을 안전하게 보호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주민에게 필요한 행정 능력을 갖추는 것이 목적이고, 통합은 어디까지나 그 수단이다. 혼동해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 덩치만 큰 비효율적 행정 기구가 탄생할 수도 있다.

지자체들이 이렇게 통합을 서두르며 추운 겨울을 대비할 때 대학들은, 특히 지방의 사립대학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나? 당장 눈앞에 닥친 코로나19에 대응하기 바빠서 다가올 상황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입학 정원을 줄이고 학과 몇 개를 통합하고 새로운 학과를 몇 개 만든 것으로 충분한가? 그런 대응마저 교육부의 지침 아래 이루어진 것은 아닌가? 언제까지 대학 교육을 교육부 관료들과 정치인의 결정에 속수무책으로 내맡길 것인가? 미국의 대선 결과에 촉각을 세우는 약소국의 모습과 지금 대학의 모습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

더 좋은 교육을 공급하고 학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대학은 힘을 키워야 한다. 자강할 수 없다면, 협력을 통해 힘을 키워야 한다. 지역 차원에서의 학문과 교육의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다른 지역의 대학들과 형식적인 협력을 할 것이 아니라, 지역 내의 다양한 교육기관들과 실질적 협력체계를 구성해야 한다. 캠퍼스의 공간적 효율성도 높여야 한다. 비효율적으로 퍼져 있는 캠퍼스 공간의 물리적 재배치가 어렵다면, 사이버 캠퍼스를 통해서라도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폐쇄적 플랫폼으로는 바깥과의 협력체계를 이룰 수 없다. 개방적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지속할 수 있는 대학의 발전 전략을 세워야 한다.

※ 이 글은 2020년 11월 9일 발행된 <조대신문> 1128호의 사설로 작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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