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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내가 마지막으로 헌혈을 한 것은 1998년이다. 한때는 나도 기꺼이 헌혈에 동참하는, 피 뽑는 것 정도는 무서워하지 않는 용감한 청년이었다. 문제는 1999년 독일로 유학간 뒤에 생겼다. 영국발 광우병 사태가 유럽 전체를 휩쓸던 2000년, 유럽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유통되던 쇠고기를 전량 수거해 폐기해야 하느냐 마느냐 논쟁이 일었다. 쇠고기 소비가 급감하고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염려가 급증했다. 외국인 유학생들도 마찬가지로 건강을 염려했다.어느날 선배와 저녁에 맥주를 마시러 갔다. 안주로 소시지를 시키자 선배가 먹지 않았다. 쇠고기가 섞여 있을지 모르는 소시지조차 먹기 불안했던 것이다. 당분간 쇠고기는 물론이고 육류 자체를 되도록 먹지 않으려던 선배에게 농담으로 말했다. “이 소시지 먹으..
새로운 위험, 낡은 국가: 메르스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제기하는 과제 국가의 본질은 위기시에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전쟁이나 내란으로 인해 국가의 지위가 흔들릴 때 그 본질이 결국 폭력임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 국가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은 외적의 침입에 의한 전쟁이나 혁명 세력이 일으키는 반란 따위가 아닌 것 같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확산이 가져다준 공포는 현대의 위험이 무엇이고 국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과거에 국가는 지배자 또는 지배집단의 소유물이었다. 이들이 국가에 대한 소유를 주장할 수 있었던 근거는 자신들이 국가를 외적의 침입과 같은 위험으로부터 지키고, 그럼으로써 그곳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피지배자들을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지배집단은 그 보호의 대..
2014년 4월 16일은 최소한 한국인에게 잊히지 않을 중요한 날이 될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 날을 어떤 날로서 기억해야 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아직은 사태를 더 수습해야 하고, 수많은 무고한 죽음을 더 애도해야 한다. 이 날의 의미는, 잊지만 않는다면, 천천히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드러난 부실한 안전 조치들은 지금 당장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사법적ㆍ정치적 책임은 나중에 물어도 되지만, 안전 조치는 지금 당장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당국에서 검사할 때 취한다고 하면 똑같은 사태가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그 동안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경쟁에서 어떻게든 이기려고 온갖 위험을 무릅써왔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