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개똥을 밟지 않으려면 본문
요즘 나는 출근길에 땅을 쳐다보며 걷는다. 남이 흘린 동전이라도 주우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똥을 밟지 않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출근길에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걷다가 한두 번 똥을 밟은 뒤로는 경각심이 생겨서 바닥만 보고 걷는다. 그런데 점점 상황이 나빠지는 것 같다. 뭔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1999년 처음 베를린에 도착해 두 달간 서남쪽의 부유한 지역 기숙사에 임시로 살 때는 길거리에 그렇게 개똥이 많은지 몰랐다. 두 달 뒤 이주민이 많이 모여 사는, 집세가 저렴한 지역으로 이사하고 나서야 서양 언어에 ‘똥’이라는 뜻의 욕이 왜 있는지를 알게 됐다. 똥을 밟았을 때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당황과 분노의 외침이 바로 “악, 똥!”이었다.
살면서 보니까 모든 지역에 고르게 개똥이 널려 있지는 않았다. 대체로 가난한 지역의 길거리에 개똥이 많았고 부유한 지역에는 적었다. 가난한 사람이 개를 더 많이 키우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난한 사람이 자기 개 똥을 잘 치우지 않아서일까? 어쨌든 공중도덕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지가 처음에는 빈부나 교육 수준과 관계가 있어 보였다.
독일 하노버에 사는 내 한국인 친구는 개를 무척 좋아한다. 어린 딸을 위해 수년 전 개 한 마리를 샀다. 몇 해 전 그 집에 놀러 갔더니 그사이에 개가 많이 커 있었다. 개를 키우는 일에 관해 궁금한 것들을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곳에서는 개를 기르려면 등록해야 하고, 그 표지를 개의 목줄에 달아야 한다고 했다. 견주가 일정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고, 개를 정기적으로 산책시키고 건강하게 보살피지 않으면 심지어 이웃이 신고한다고도 했다.
십여 년 전 하이델베르크에 처음 갔을 때 ‘철학자의 길’이라고 불리는 산책로 입구에서 재미있는 설치물을 봤다. 쓰레기통이나 담배꽁초 수거함처럼 생긴 철제 함이 세워져 있었는데, 밑으로 나 있는 작은 구멍에 비닐봉지가 살짝 보였다. 견주가 산책을 시작하기 전에 개똥을 주워 담을 봉지를 미리 챙겨갈 수 있도록 비치해놓은 것이었다. 비슷한 설치물을 최근 부산의 해운대 동백섬 산책로 입구에서도 봤다.
4년 전 독일 뮌헨에서 본 모습은 더 인상적이었다. 어떤 남자가 개와 함께 시내의 보도 위를 걷고 있었는데, 한 손에 개의 목줄 외에 뭔가를 더 쥐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검은 비닐봉지였다. 비슷한 모습을 뮌헨의 어느 공원에서도 봤다. 여성 견주가 개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몸에 두른 가방끈에 마찬가지로 비닐봉지가 묶여 있었다. 무슨 용도의 봉지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일정한 조건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는 것이지, 조건과 무관하게 단번에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유한 지역의 길거리에 쓰레기가 없고 개똥도 없는 것은 그곳 주민들이 주위 시선을 더 많이 의식하고 서둘러 치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분리배출에 필요한 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난한 지역이 지저분한 이유는 주민들이 주위 시선을 의식할 만큼 여유롭지 않기도 하고, 쓰레기 분리배출에 필요한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거나 이용하기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민들이 쓰레기를 대충 배출하고, 또 그래서 누가 치우기 전까지 쓰레기가 눈에 더 잘 띄는 것이다. 깨끗한 곳에 쓰레기를 쉽게 버리지 못하고 지저분한 곳에 쉽게 버리는 심리까지 결합해 결국 깨끗한 동네는 계속 깨끗해지고 지저분한 동네는 계속 지저분해진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개인적 해결책이야 땅을 잘 보고 걷거나 깨끗한 동네로 이사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공동체의 해결책이 그런 것일 수는 없지 않을까? 예산이 부족한 자치단체일지라도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개똥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선 집에서 기르는 개를 등록하게 하고, 사회 안에서 개를 기를 때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견주가 배우도록 해야 한다. 이를 강제할 수 없다면 유인책을 쓸 수도 있겠다. 개똥이 자주 발견되는 곳이나 산책로 입구에 비닐봉지와 수거함을 비치하는 것도 좋겠다. 견주 개인의 도덕성에 호소하는 현수막만은 제발 걸지 말자.
오늘도 나는 출근길에 세 번이나 똥을 밟을 뻔했다. 누군가가 이미 밟은 똥,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큰 똥, 그리고 작은 애완견의 소행으로 추측되는 무른 똥... 대책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