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번역] "푸틴은 제국적 기회주의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헤어프리트 뮌클러의 생각(인터뷰) 본문
“푸틴은 제국적 기회주의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의 생각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 2022년 3월 2일)
인터뷰: 바샤 미카(전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편집장)
뮌클러 교수님, 러시아는 자기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건가요?
러시아가 꿈꾸는 것이 그 것뿐만은 아니겠죠. 그러나 적어도 블라디미르 푸틴은 제국을 다시 건설하는 데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 목표는 정치적ㆍ경제적으로 큰 위험을 감수하고 국제공동체의 모든 규칙과 가치를 짓밟을 만큼 그에게 큰 가치가 있습니다.
푸틴은 러시아가 다른 국가의 영토에 대해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국 이후의 상황은 – 1991년 이후 러시아와 1918년 이후 터키와 독일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유사한데요 — 제국적 환상통(Phantomschmerzen)으로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특정 공간이 한때 자기네 지배영역에 속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 영역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에 상응하는 역사정책을 추진합니다. 이런 서사들을 통해 그 공간을 회복할 필요성을 증대시킵니다. 에르도안은 약 10년 전에 신(新)오스만 정책을 추구하면서 오스만 제국이 한때 오늘날의 터키보다 훨씬 더 컸다는 것을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환상통: 몸의 한 부위나 장기가 물리적으로 없는 상태임에도 있는 것처럼 느끼는 감각을 지칭함.
발칸 지역에서도 사람들은 1990년대에 비슷한 수정주의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세 개의 거대한 다민족, 다종교, 다언어 제국, 즉 합스부르크 왕조, 차르 제국, 오스만 제국의 몰락의 흔적들이 부분적으로는 그럭저럭 안정적인 국민국가의 형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발칸 지역에서 드러났듯이, 또한 불안정한 공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만약 옛 중심권력이 오스트리아처럼 수축되지 않은 경우에는 과거의 위대함을 향한 소망이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푸틴은 독특한 사례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핵무기를 고려할 때 그는 평범한 행위자들과는 전혀 다른 선택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제국적 환상통은 절단 후에 언제든지 다시 생길 수 있나요?
어쩌면 통증이 다시 생길 때 적용되는 어떤 법칙성 같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독일인들이 1918년 이후 새롭게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즉각 다시 군복을 입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뒤에는 보복에 대한 생각을 매우 또렷하게 드러냈습니다. 마찬가지로 소련이 몰락하고 십년 뒤 푸틴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뒤따른 것이 조지아와의 전쟁, 그리고 시리아 전쟁에의 개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세력권을 지키는 일 역시 제국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크리미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분명히 푸틴은 먹다보니 식욕이 생겼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는 매우 큰 규모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소련의 붕괴를 푸틴이 괜히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지칭하지 않았군요.
나는 결코 푸틴을 이해하자는 사람(Putin-Versteher)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연히 사람은 상대방의 동기와 행위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에게 전략적으로 필적할 수 있기 위해서 말입니다. 1989년 후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것도 그 일에 속합니다. 당시 서방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우리가 이겼다! 그때 사람들은 패자도 승자의 몫이라는 사실을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자유를 얻은 것이 러시아에게도 기쁜 시작인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타난 것은 집단적 굴욕 같은 것이었고, 그것이 푸틴에게, 그리고 그에게만 아니라 [러시아 국민들에게도] 뚜렷하게 새겨졌습니다.
갈등을 피하려면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고, 상대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갈등이론은 말합니다. 이 점에서 서방이 실패한 걸까요?
어쩌면 실패하지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동유럽 국가들의 자기결정권을 그 국가들의 동맹구조와 관련해 강조함으로써 딜레마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것이 러시아의 관점에서 볼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토는 러시아가 사실상 포위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갈등이론적 의미에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만…
맞습니다. 러시아가 포위된 것처럼 느끼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죠. 물론 러시아는 그런 것처럼 행동하면서 위협강박을 고조시킵니다. 그렇지만 현재 상황에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인들은 중국에, 유럽인들은 자기 자신에게 몰두해 있기 때문에 그런 강박은 현재로서는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 푸틴은 이 약점을 오히려 기록해두었고, 그 약점을 군사적 수단을 이용한 포괄적 수정주의 정책을 위해 이용했습니다.
푸틴의 환상 속에서 러시아는 차르 치하 또는 스탈린 치하에서처럼 다시 위대해져야 하는 건가요?
저는 그것이 푸틴에게 열려 있다고 믿습니다(웃음). 차르 시대도, 스탈린 시대도 푸틴은 그때그때 참조할 공간으로 이용합니다. 푸틴은 제국적 기회주의자입니다. 그는 전략적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서방이 서투르게 행동한 우크라이나의 경우처럼, 그 기회를 이용합니다. 나토는 러시아가 공격해올 경우 미국의 잠수함을 흑해로 보내 그곳에서 깃발을 바꿔 달아 우크라이나 핵잠수함으로 변신시켜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모스크바를 향해 발사할 수 있도록 무장시키는 방안을, 그것이 가능하고 신속한 대응이었을 텐데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핵전쟁이요? 지금 그것을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죠?
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면, 그렇게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분명히 말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핀란드화, 그러니까 동맹정치적 중립이 당신들이 가질 수 있는 최선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잡아먹힐 것입니다. 왜냐하면 러시아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당신들은 이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방은 자신들이 선포한 가치를 보장하고 관철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능력도 없으면서 우크라이나에게 동맹정치적 문제에서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말하는 부당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러시아는 자기의 제국적 힘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릅니까?
러시아는 비싼 대가를 치릅니다. 푸틴은 그 비용을 러시아인들에게 강제로 부과했습니다. 러시아인들 가운데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에 맞섭니다. 그것은 푸틴 치하의 러시아에서 매우 용감한 태도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말로 독재에 맞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응해 푸틴은 민족적 영광과 제국적 자의식의 통제를 이용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 국민에게 그 이상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재화가 별로 없기 때문에 그는 자기 국민을 집단적 자부심으로 달래려고 합니다.
러시아 학자들은 러시아의 공론장 역시 팽창에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그 나라가 스스로 성공적인 민족이라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은 공동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지배영역을 통해 각인되기 때문에, 팽창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묘사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러시아인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사실 제국적 행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제대로 작동하는 시민사회를 형성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일정한 물질적 행복과 개인적 자유, 그리고 민족적 자부심과 희생 사이에서 결코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습니다.
왜 교수님은 러시아에서 시민사회가 작동한다는 것을 부인하십니까? 아무리 사람들이 억눌리고 감금되어 있더라도 말이죠.
러시아에 있는 야당을 낮춰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러나 야당은 한 번도 강력한 지위를 획득한 적이 없습니다. 시민사회도 실패할 수는 있습니다. 여기에서 러시아가 여러 지역들 안의 매우 상이한 문제들을 가진 거대 제국이라는 사실이 역할을 합니다. 게다가 경제가 소련 붕괴 후에 과두체제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가부장적 질서는 거의 단절 없이 지속되었습니다. 시민사회를 특징짓는 것, 즉 정치적 수직관계에 대항해 수평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아버지가 하듯이 국민을 대하는, 정점에 있는 그 남자와 함께 거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옐친의 시대가 끝나면서 사회의 대부분이 그로부터 돌아섰고 강한 지도자를 희망했습니다. 러시아에게 1990년대는 수평적 질서의 기획이 실패한 기억이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한 번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진짜 기회를 가지지 못했습니까?
많은 제국적 기획들이 유혈낭자하게, 그리고 과도한 비용 지출 아래 종결되었던 서유럽 사회들과 달리 러시아인들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폴레옹에 맞선 조국전쟁에 대해, 그리고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국방군에 맞선 위대한 조국전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집합적 기억 속에서 지배적일 때, 그 이야기들은 오늘날의 세대들에게도 제국적 차원을 가지게 됩니다. ‘이봐! 당신들은 당신네 아버지와 할아버지 못지않게 당신들이 가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해!’ 그것은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서사와 관련됩니다. 그 서사를 푸틴은 — 물론 자신이 전쟁으로 나아가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거리낌 없이 이어 붙인 것이지만 - 최근에도 자신이 등장할 때 반복했습니다. 사실 지금 살아 있는 세대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무엇을 구속력 있게 결정할 수 있으려면 이 역사정치적 이야기들은 잊혀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집합적 기억은 간단히 지울 수 없지 않습니까.
집합적 기억은 투쟁의 대상입니다. 저는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둘러싼 논쟁을 함께 겪은 세대에 속합니다. 그것 역시 역사적 기억을 둘러싼 투쟁이었습니다. 저장된 것 중에서 무엇이 중요합니까? 저장된 것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웁니까? 이 점에서 역사서술은 언제나 권력문제인 것입니다. 역사서술을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우리는 제국주의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믿지 않았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언제나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서구의 구상이 매우 취약하다고 가정합니다. 만약 거기에 규칙과 가치를 관철시킬 수호자가 없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지를 시험해 보려는 훼방꾼의 초대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도취를 당시에 저는 결코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교수님은 지속가능하고 인간적인 세계질서를 상상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할까요?
(웃음) 대천사 가브리엘의 도래?
(번역: 공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