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칼럼] 왜 자신의 무능과 무지를 인정하는 정치인은 없을까 본문
왜 자신의 무능과 무지를 인정하는 정치인은 없을까
대상포진에 걸렸다. 세 달 이상이 지났지만 신경통이 사라지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에 의사에게 다른 치료법이 없냐고 묻지만 의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운 좋으면 세 달, 운 나쁘면 일 년’이라는 말만 반복한다. 평생 약을 먹는 사람도 있다고 겁을 준다. 조급해 하지 말라는 뜻이지만 나에게는 겁주는 말로 들린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볼까, 피부과에서 더 많이 진료를 한다던데 피부과로 옮겨볼까, 아니면 종합병원에 가봐야 할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본다. 몸에 좋다는 음식과 약도 이것저것 먹어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제 조금만 무리해도 부실한 어금니 하나가 솟구친다. 엑스선 사진을 찍어 봐도 별 이상은 없다고 한다. 의사는 그저 몸이 스스로 바이러스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건강해지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정치를 의술에, 정치인을 의사에 비유한 역사는 꽤 길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의술을 모르는 사람이 환자를 치료해서는 안 되듯이 통치술을 모르는 사람이 통치를 해서는 안 된다면서 아테네 민주정을 비판했다. 또 소크라테스는 철인통치자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의사가 환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의사를 찾는 것이 당연하듯이 피치자가 통치자를 찾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인민의 대표가 되겠다면서 현란한 수사로써 사람들을 미혹하며 경쟁하는 당대의 정치인들을 비판한 것이다.
‘헬조선’의 사람들은 모두 아프다. 너무 아픈 나머지 자살을 택하는 사람이 하루에도 수십 명이나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병원을 바꿔볼까도 고민한다. 어느 한 질병만 전문으로 치료한다는 병원으로 바꿔볼까, 아니면 실력 있는 의사들이 모여 있다는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으로 바꿔볼까 고민한다. 아픈 사람의 심리를 잘 아는 의사들은 시내 번화가의 큰 건물에 화려한 간판을 내걸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최신 장비를 갖춘 병원을 열어 환자들을 유혹한다. 병원 한쪽 벽에는 각종 질병의 끔찍한 사진들이 걸려 있고, 다른 한쪽 벽에는 그 질병을 치료해줄 의사가 어디에서 배웠고 어느 유명 병원에 있었는지를 알리는 증서들이 내걸려 있다. 총선을 몇 달 앞둔 요즘, 아픈 환자들을 유혹하는 의사들의 개업 소식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나는 우리가 아픈 것이 병원을 바꿔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다른 의사가 병원의 원장이 되면 치료될 수 있는 것인지,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에 가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병원 간판을 바꿔달면 환자가 한 명이라도 더 올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 병원에 있는 의사들이 똑같은 사람인데 과연 지금까지 안 낫던 병이 나을 수 있을까. 나이 들고 무능한 의사들을 내쫓고 새로운 의학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의사들을 영입하면 나을 수 있을까. 과연 우리의 병이 나이 든 의사들은 치료할 수 없고 젊은 의사들만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병일까. 세상이 이 모양인데도 그런 유능하고 사명감으로 가득한 젊은 의사들이 어딘가에 눈에 띄지 않게 준비되어 있을까. 기존의 의사들은 모두 돈만 밝히는 사람들이니까 새로운 의사들을 찾아야 한다면 새 의사들은 과연 돈을 밝히지 않고 의사 노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어두운 밤, 광주 시내를 밝히는 조명의 태반이 술집과 병원 간판이고 교회 십자가이다. 그만큼 아픈 사람이 많고 아픈 사람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돈 버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병원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우리의 아픔이 모두 병원에서 치료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병원을 바꾼다고 치료되는 것도 아니고, 의사가 바뀐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게 평생 약을 먹고 사는 사람도 있다고 겁을 준 의사가 고맙다. 과잉진료하지 않고 최소한의 약만을 처방해준 의사가 고맙다. 나의 아픔에 대해 자신의 무능함을 솔직히 시인하고 그저 스스로 건강해지는 수밖에는, 스스로 병에 맞서 싸우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해준 의사가 고맙다. 그런 의사들이 있고 그런 병원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다른 병원을 찾고 큰 병원을 찾고 명의를 찾는다. 어딘가에 우리가 모르는 명의가 숨어 있고 그가 가진 새로운 치료법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헛되이.
※ 이 글은 2015년 12월 14일자 <광주드림>에 칼럼으로 실린 것입니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