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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큰 사건은 조국혁신당의 깜짝 등장과 의외의 성공이다. 여당의 참패와 야당의 압승도 조국혁신당의 돌풍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조국혁신당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24.25%의 표를 얻어 제22대 국회에서 12석을 차지하게 됐다. 단독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규모는 아니지만, 애초에 법안을 단독 발의할 수 있는 10석을 목표로 시작한 정당으로서는 만족할 만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대표의 운명과 결부된 이 당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조국혁신당에 한 가지 기대를 품게 됐다. 지난 2월 13일 조국 대표는 자신의 고향 부산에서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선언 장소는 1979년 부마항쟁을 기념하는 민주공원이었다. 다음날 조 대표는 광..
작년에 우리는 두 개의 커다란 선거를 치렀다. 그런데 내년에 또 전국 단위의 선거를 치른다.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이 온통 선거에 맞춰져 있다. 누구 말마따나 선거가 너무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사람들 같다. 정치의 수단에 불과한 선거가 정치 자체를 잡아먹고 있는 양상이다. 민주적 정치의 중요 수단인 정당이 선거를 위한 조직이 되었고 선거전문가 집단이 되었다. 선거에 맞춰 조직을 쇄신하고 인물을 영입하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벌써 내년 총선을 위해 양당 모두 비대위 체제로 전환해야 하는 것 아니냐, 싹 다 물갈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온다. 이제는 각 정당의 지지자들조차 그런 시각에 익숙해져 있는 듯하다. 각종 노래경연대회가 음악의 창작과 공연을 압도하고 있듯이, 선거라는 경연대회가 정치를 ..
“당원 동지 여러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당에 속해 있지 않던 사람이 선거 출마를 위해 정당에 가입한 뒤 마치 늘 정당에 속해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낯설다 못해 이상하기까지 하다. 동지(同志)는 “목적이나 뜻이 같음, 또는 그런 사람”을 뜻한다. 목적이나 뜻이 전부터 같았다면 왜 전에는 당원이 아니었을까? 갑자기 같아진 것이라면 그 목적이나 뜻은 과연 무엇일까? 일찍이 교부(敎父) 아우구스티누스는 국가에 정의(正義)가 없으면 강도 무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익을 위해 뭉친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수가 더 많고, 그래서 강해보일 수 있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그 성향 때문에 결국 서로 더 많이 가지려다가 분열될 수밖..
2024년은 김대중 전 대통령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신안 하의도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자란 청년 사업가 김대중은 1971년 40대의 나이에 야당 대통령 후보로서 박정희와 맞붙었다. 여러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도전한 끝에 그는 결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평생에 걸친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호남이 배출한 20세기 최고의 정치인이기에 그에 대한 호남민의 자부심도 크고 그의 뒤를 이을 정치인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그러나 해마다 그의 기일이 되면 그런 ‘큰 인물’이 나오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탄신 100주년인 올해에도 어김없이 그랬다. 총선을 앞두고 많은 정치인이 스스로 그런 ‘큰 인물’이 되겠다고 외치지만, 그럴수록 부재..
나는 유머 감각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농담도 잘 하지 않는다. 머리 회전이 느려서 그런지 남의 농담도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한참 뒤에야 웃거나 옆 사람의 설명을 듣고서야 뭐가 웃음의 포인트인지를 이해하기도 한다. 이런 나를 두고 어렸을 때 어머니는 ‘형광등’이라고 하셨다. 그런 내가 바로 알아듣고 웃을 수 있는 농담이라면 그것은 일차원적 농담이거나 널리 알려진 농담일 가능성이 크다. 유머 감각이 없는 내가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을 유발하고자 노력할 때 사용하는 방법은 일단 나 자신을 놀림감으로 삼는 것이다. 대머리로서 겪는 각종 애로사항이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대개 재미있어들 한다. 남이 먼저 나의 모발 상태를 가지고 우스갯소리를 한다면 나도 불쾌할 것이고 듣는 다른 사람도 불편하겠지만, 내가 ..
내가 차가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운전면허조차 없다고 하면 더 놀란다. 요즘 세상에 면허 없고 차도 없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차를 한 대라도 줄이는 것이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이라 생각해서 지금껏 차 없이 살고 있다. 그렇게 작정하고 나니 차 없이도 살 수 있는 방식으로 살게 됐다. 가끔 온라인쇼핑을 하긴 하지만 대형 상점은 거의 가지 않고 웬만한 것은 다 집 앞 가게에서 산다. 집도 직장 근처에 마련해 걸어 다닌다. 시내를 돌아다닐 일이 없지 않지만, 필요할 때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가용 차를 몰고 다니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차도가 늘어났고 인도가 줄어들었다. 걷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이상한 길들이 많아졌다. 차도 위에도, 인도 위에도..
지난 8월 학생들과 함께 독일에 다녀왔다. 지역사회 공동체성 제고를 위한 선진 이민사회 방문조사였다. 함부르크 반츠벡 구의 초청을 받아 그곳을 먼저 방문했다. 독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베를린과 함부르크에는 그만큼 이주민 수도 많다. 베를린 주민의 약 36%가, 함부르크 주민의 약 37%가 이주배경을 가지고 있다. 구청장과의 대화 시간에 한 학생이 물었다. 이주민 통합을 위해서는 선주민의 생각과 태도도 함께 변해야 하는데, 어린이는 학교에서 정규교육을 통해, 한창 일할 나이의 성인은 직장에서 같이 일하면서 통합에 필요한 지식과 태도를 배운다면, 은퇴자처럼 나이 든 사람을 교육하는 정책은 있나? 리첸호프 구청장은 이렇게 답했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어떤 생각이나 태도를 시민에게 주입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권리는 어디에서 비롯할까? 17세기 영국의 두 철학자는 서로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후배 존 로크는 자식을 잘 양육하는 것이 신의 명령이라고 생각했다. 부모에게 순종할 자식의 의무도, 자식을 잘 길러야 할 부모의 의무도 모두 신(자연)의 뜻에서 찾았다. 이 신적 의무에서 권리도 생겨난다. 부모의 양육을 받을 자식의 권리나 자식의 복종을 받을 부모의 권리는 각자에게 부여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할 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로크는 이 권리나 의무가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만 유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권리와 의무를 근거로 이미 성인이 된 백성을 지배할 왕의 권리와 의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선배 토마스 홉스는 백성에 대한 주권자의 권리를 한편으로는 사람..
요즘 나는 출근길에 땅을 쳐다보며 걷는다. 남이 흘린 동전이라도 주우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똥을 밟지 않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출근길에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걷다가 한두 번 똥을 밟은 뒤로는 경각심이 생겨서 바닥만 보고 걷는다. 그런데 점점 상황이 나빠지는 것 같다. 뭔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1999년 처음 베를린에 도착해 두 달간 서남쪽의 부유한 지역 기숙사에 임시로 살 때는 길거리에 그렇게 개똥이 많은지 몰랐다. 두 달 뒤 이주민이 많이 모여 사는, 집세가 저렴한 지역으로 이사하고 나서야 서양 언어에 ‘똥’이라는 뜻의 욕이 왜 있는지를 알게 됐다. 똥을 밟았을 때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당황과 분노의 외침이 바로 “악, 똥!”이었다. 살면서 보니까 모든 지역에 고르게 개똥이 널려 있지..
5월에는 광주에 많은 손님이 찾아온다. 5월 18일 공식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그날을 비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그저 사람이 많이 몰리는 때를 피해 늦게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10일간의 항쟁이 끝난 뒤 죽은 누군가를 추모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지난 5월 27일에도 김의기 선배의 죽음을 추모하는 서강대 후배들이 광주를 찾았다. “피를 부르는 미친 군홧발 소리가 고요히 잠들려는 우리의 안방에까지 스며들어 우리의 가슴팍과 머리를 짓이겨 놓으려고 하는 지금,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무참한 살육으로 수많은 선량한 민주시민들의 뜨거운 피를, 뜨거운 눈동자와 가슴을 오월의 하늘 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봉기가 유신잔당들의 악랄한 언론탄압으로 왜곡되고 거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