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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을 밟지 않으려면

공진성 2023. 7. 17. 15:03

요즘 나는 출근길에 땅을 쳐다보며 걷는다. 남이 흘린 동전이라도 주우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똥을 밟지 않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출근길에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걷다가 한두 번 똥을 밟은 뒤로는 경각심이 생겨서 바닥만 보고 걷는다. 그런데 점점 상황이 나빠지는 것 같다. 뭔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1999년 처음 베를린에 도착해 두 달간 서남쪽의 부유한 지역 기숙사에 임시로 살 때는 길거리에 그렇게 개똥이 많은지 몰랐다. 두 달 뒤 이주민이 많이 모여 사는, 집세가 저렴한 지역으로 이사하고 나서야 서양 언어에 이라는 뜻의 욕이 왜 있는지를 알게 됐다. 똥을 밟았을 때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당황과 분노의 외침이 바로 , !”이었다.

살면서 보니까 모든 지역에 고르게 개똥이 널려 있지는 않았다. 대체로 가난한 지역의 길거리에 개똥이 많았고 부유한 지역에는 적었다. 가난한 사람이 개를 더 많이 키우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난한 사람이 자기 개 똥을 잘 치우지 않아서일까? 어쨌든 공중도덕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지가 처음에는 빈부나 교육 수준과 관계가 있어 보였다.

독일 하노버에 사는 내 한국인 친구는 개를 무척 좋아한다. 어린 딸을 위해 수년 전 개 한 마리를 샀다. 몇 해 전 그 집에 놀러 갔더니 그사이에 개가 많이 커 있었다. 개를 키우는 일에 관해 궁금한 것들을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곳에서는 개를 기르려면 등록해야 하고, 그 표지를 개의 목줄에 달아야 한다고 했다. 견주가 일정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고, 개를 정기적으로 산책시키고 건강하게 보살피지 않으면 심지어 이웃이 신고한다고도 했다.

십여 년 전 하이델베르크에 처음 갔을 때 철학자의 길이라고 불리는 산책로 입구에서 재미있는 설치물을 봤다. 쓰레기통이나 담배꽁초 수거함처럼 생긴 철제 함이 세워져 있었는데, 밑으로 나 있는 작은 구멍에 비닐봉지가 살짝 보였다. 견주가 산책을 시작하기 전에 개똥을 주워 담을 봉지를 미리 챙겨갈 수 있도록 비치해놓은 것이었다. 비슷한 설치물을 최근 부산의 해운대 동백섬 산책로 입구에서도 봤다.

4년 전 독일 뮌헨에서 본 모습은 더 인상적이었다. 어떤 남자가 개와 함께 시내의 보도 위를 걷고 있었는데, 한 손에 개의 목줄 외에 뭔가를 더 쥐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검은 비닐봉지였다. 비슷한 모습을 뮌헨의 어느 공원에서도 봤다. 여성 견주가 개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몸에 두른 가방끈에 마찬가지로 비닐봉지가 묶여 있었다. 무슨 용도의 봉지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일정한 조건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는 것이지, 조건과 무관하게 단번에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유한 지역의 길거리에 쓰레기가 없고 개똥도 없는 것은 그곳 주민들이 주위 시선을 더 많이 의식하고 서둘러 치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분리배출에 필요한 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난한 지역이 지저분한 이유는 주민들이 주위 시선을 의식할 만큼 여유롭지 않기도 하고, 쓰레기 분리배출에 필요한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거나 이용하기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민들이 쓰레기를 대충 배출하고, 또 그래서 누가 치우기 전까지 쓰레기가 눈에 더 잘 띄는 것이다. 깨끗한 곳에 쓰레기를 쉽게 버리지 못하고 지저분한 곳에 쉽게 버리는 심리까지 결합해 결국 깨끗한 동네는 계속 깨끗해지고 지저분한 동네는 계속 지저분해진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개인적 해결책이야 땅을 잘 보고 걷거나 깨끗한 동네로 이사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공동체의 해결책이 그런 것일 수는 없지 않을까? 예산이 부족한 자치단체일지라도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개똥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선 집에서 기르는 개를 등록하게 하고, 사회 안에서 개를 기를 때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견주가 배우도록 해야 한다. 이를 강제할 수 없다면 유인책을 쓸 수도 있겠다. 개똥이 자주 발견되는 곳이나 산책로 입구에 비닐봉지와 수거함을 비치하는 것도 좋겠다. 견주 개인의 도덕성에 호소하는 현수막만은 제발 걸지 말자.

오늘도 나는 출근길에 세 번이나 똥을 밟을 뻔했다. 누군가가 이미 밟은 똥,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큰 똥, 그리고 작은 애완견의 소행으로 추측되는 무른 똥...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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