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한다 (8)
정치는 어려워
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한다(7) 아렌트와 ‘생각’하는 인간 팔자 좋게도 1년이 넘게 유럽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혹시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광주에 있습니다. 글을 쓸 때에만 잠시 마음으로 유럽에 가 있을 뿐입니다. 유럽에서 머물렀던 때를 떠올리며, 유럽과 광주를 교차시키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점점 얘깃거리가 떨어져 가고 기억도 가물가물해져서 걱정입니다. 조만간 다시 유럽에 다녀와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어느 도시에 가면 좋을까요? 우리는 보통 ‘유럽’에 간다고 말합니다. 제한된 수의 나라와 도시를 방문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시아’에 간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유럽의 국경 개념이 우리와 같지 않아서 이동이 편하고, 또 도시의 역사가 국가의 역..
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한다 (6) 유럽의 시청들 얼마 전에 광주시에서 시청을 좀 더 시민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해 ‘시작(市作)’이라는 이름을 걸고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모으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시청의 변화에 반영될지 무척 궁금합니다. 아이디어를 보태는 마음으로 오늘은 제가 유럽에서 본 시청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시청을 ‘오뗄드빌(hôtel de ville)’, 즉 마을 궁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보통 고급 숙박시설 정도로 알고 있는 ‘호텔’이 프랑스에서는 원래 왕의 궁전이나 귀족들의 대저택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파리 시내에서 ‘오뗄(Hôtel)’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을 보고 착각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왕을 그 정점으로 한 신분 질서가 무너지면서 한때 군주..
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한다(5) 도시와 사람의 흔적 여행의 동기는 사람마다 다를 듯합니다. 어떤 사람은 산해진미를 찾아 여행을 하겠지만, 저에게 음식은 그다지 여행의 동기가 되지 못합니다. 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사람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건 이미 죽은 사람이건 간에 만나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는 일은 언제나 저를 설레게 합니다. 물론 거기에 음식이 함께하면 더 좋겠죠. 그러나 음식만을 위해 어느 곳을 찾아간다는 것은 아직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베를린의 시내 중심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철학자 헤겔이 묻혀 있는 것으로 유명한 공원묘지가 하나 있습니다. 그곳에는 유명한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그의 부인 헬레네 바이겔의 묘도 있습니다. 부부가 마지막 생을 보낸 집이 그 공원묘지 옆에 있..
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한다(4) 도시의 여름, 물이 있는 도시 유럽 선진국의 시민들이 1년에 한 달 여의 휴가를 즐긴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휴가만 긴 것이 아니라 평소의 노동 시간 자체도 짧습니다. 한 달 휴가를 즐기는 대가로서 나머지 열한 달 동안 과로를 해야 한다면 긴 휴가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튼 유럽인들이 긴 휴가를 즐기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심지어 도시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때 비어 있는 도시를 채우는 사람은 관광객과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멀리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시민들입니다. 베를린 유학 시절의 일입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저는 어느 치과 병원 청소 일을 하고..
2014년 1월부터 격월로 발행되는 조선대학교 소식지에 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9월에 다섯 번째 글이 실렸는데, 1회부터 5회까지의 글을 묶어 올립니다.
책 사이에는 지식이, 빵 사이에는 고기가 파리 동남쪽에는 매우 특이한 모양의 거대한 도서관이 하나 있습니다. 이 도서관에는 어떤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 주인은 바로 프랑수아 미테랑이라는 프랑스 최장수 대통령입니다. 그는 (지금은 5년으로 바뀌었지만) 임기 7년의 대통령직을 연임하여 14년 동안 대통령으로서 일했습니다. 그의 두 번째 임기 때 세워진 도서관이 바로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입니다. 독일 베를린의 국립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이 도서관도 이용을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합니다. 참고문헌실을 하루 이용하기 위해 3.5유로, 우리 돈으로 5천 원 가량을 내야 합니다. 제가 파리에 머물던 시기에 아주 운이 좋게도 주말에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어서 토요일 아침에 길을 나섰습니다. 파리의 남쪽 국제대학..
더 다양할수록 더 완전하다 파리의 남쪽 끝에는 대규모의 국제대학기숙사촌(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de Paris)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각국에서 파리로 유학 온 학생과 연구자, 예술가들이 먹고 자는 곳입니다. 130개 이상의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니 그 사실만으로도 놀라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유명한 것이 단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국적이 다양하고 그 수가 많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곳에 있는 40개의 ‘메종’이 그 집에 이름을 부여한 40개의 국가에 의해 지어졌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예컨대, 인도관, 캄보디아관, 일본관, 이탈리아관, 스위스관이 있습니다. 때로는 각각의 집에 고유의 이름이 붙어 있기도 합니..
그 도서관은 아직 거기 있을까 연재를 시작할까 합니다. 가물가물해진 기억의 끈을 조심스레 붙잡고 유럽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결국 광주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저를 통해 광주가 유럽을 만났고, 또 유럽이 광주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도서관을 좋아합니다. 도서관장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곤 할 정도입니다. 도서관의 맛을 알게 된 것은 사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였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일명 ‘독서실’과 도서관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도서관 이용과 관련한 교양과목을 수강하면서 처음으로 개가식 도서관의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에는 온갖 책이 학문분야별로, 그리고 주제별로 나뉘어 꽂혀 있었습니다. 목사인 아버지의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