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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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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같은 ‘큰 인물’은 어디에서 나올까

공진성 2024. 1. 22. 17:51

2024년은 김대중 전 대통령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신안 하의도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자란 청년 사업가 김대중은 1971년 40대의 나이에 야당 대통령 후보로서 박정희와 맞붙었다. 여러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도전한 끝에 그는 결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평생에 걸친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호남이 배출한 20세기 최고의 정치인이기에 그에 대한 호남민의 자부심도 크고 그의 뒤를 이을 정치인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그러나 해마다 그의 기일이 되면 그런 ‘큰 인물’이 나오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탄신 100주년인 올해에도 어김없이 그랬다. 총선을 앞두고 많은 정치인이 스스로 그런 ‘큰 인물’이 되겠다고 외치지만, 그럴수록 부재의 현실만 더 크게 느껴진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심심치 않게 나오는 또 다른 말이 있다. 그래서 호남이 득 본 게 뭐가 있냐는 것이다. 이 말에는 ‘우리’ 지역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 ‘우리’ 지역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숨어 있다. ‘다른’ 지역 출신의 대통령들이 ‘다른’ 지역만 발전시켰다는 소외감과 비교 의식에서 비롯하는 생각이다. 박정희 시대가 뿌린 지역주의의 어두운 그늘은 참으로 길다. 그러나 ‘우리가 남이가’와 우리 지역 출신 대통령을 뽑아 우리 지역도 잘살아 보자는 것은 ‘패권적 지역주의’와 ‘저항적 지역주의’를 구분하더라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0년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살고 싶은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살고 싶은 곳의 하나는 광주이고 또 하나는 목포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고장, 5‧18민주화운동의 고장, 망월동이 있는 민주 성지, 그리고 나와는 끊을 수 없는 광주이다. 또 하나는 나의 고향 항구 목포이다. 유달산, 삼학도, 영산강, 그리고 「목포의 눈물」의 목포! 대안동에 집을 짓고 고하도가 병풍처럼 둘러싼 호수 같은 목포항 입구를 보면서 살고 싶다.”

광주와 목포를 사랑한 호남 사람 김대중은 그러나 자신이 호남의 정치인으로 축소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가 사후에 광주나 대전의 국립묘지가 아니라 서울의 현충원에 묻힌 것은, 반공주의와 독재의 상징 박정희가 묻혀 있는 곳에 마치 그 대립이면서도 대립을 넘어선 종합인 것처럼 묻힌 것은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김대중은 일생을 대한민국의 정치적 민주화와 서민 대중의 참여를 통한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 그리고 한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 더 나아가 자연과의 신인도주의적 공생을 위해 일했지, 광주와 전남, 호남의 이른바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지 않았다. 그에게 특정 지역의 발전은 그 상위의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달성될 일이었다. 그는 결코 특정 지역을 배타적으로 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많이 발전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김대중 같은 ‘큰 인물’은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헌신했으며, 호남민도 그런 ‘큰 인물’을 보며 대의에 동의해서 함께 노력하고 헌신했다. 그러나 지금의 호남민은 언제까지 우리만 이렇게 저발전 상태에 머물러야 하냐며 지역 발전을 정치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으며, 지역에 연고를 둔 정치인들도 그 수준의 작은 인물들로 축소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서도 누가 지역의 이익을 대변할 사람인지, 예산 몇 푼이라도 더 끌어올 사람인지가 관심 대상이 되고, 현직 의원들도 자신이 지역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경쟁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인류의 평화적 공존과 번영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지역 언론은 ‘큰 인물’을 찾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그 ‘큰 인물’은 어떤 인물인가? 중앙의 언론과 유튜브 채널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인가? 국회의 예산심의 과정에서 힘을 쓸 수 있는 인물인가? 아니면 그저 당대표나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는 인물인가?

김대중 같은 큰 인물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올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우리가 우리 이익과 우리 지역의 발전에만 신경 쓰고, 그런 이익의 대변과 그런 발전을 위해 노력할 정치인을 ‘큰 인물’로 여기는 한, 앞으로 호남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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