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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한다(6) 유럽의 시청들

공진성 2014. 12. 18. 13:41

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한다 (6) 유럽의 시청들

 

얼마 전에 광주시에서 시청을 좀 더 시민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해 시작(市作)’이라는 이름을 걸고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모으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시청의 변화에 반영될지 무척 궁금합니다. 아이디어를 보태는 마음으로 오늘은 제가 유럽에서 본 시청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시청을 오뗄드빌(hôtel de ville)’, 즉 마을 궁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보통 고급 숙박시설 정도로 알고 있는 호텔이 프랑스에서는 원래 왕의 궁전이나 귀족들의 대저택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파리 시내에서 오뗄(Hôtel)’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을 보고 착각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왕을 그 정점으로 한 신분 질서가 무너지면서 한때 군주의 집이었던 곳이 시민(부르주아)들이 모이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타운홀(town hall)’ 또는 시티홀(city hall)’이 탄생한 것입니다. 과거에 군주들이 백성들 위에 군림했고, 그래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으며, 신하들을 부렸고, 신하들은 다만 군주가 묻는 말에만 대답했다면, 이제 마을과 도시를 다스리는 행정관들은 동료 시민들의 참여를 폭넓게 허용하며 함께 일했습니다. 독일의 구청과 시청은 라트하우스(Rathaus)’라고 불리는데, ‘라트는 조언을 뜻하기도 하고 조언하는 사람들의 모임, 즉 자문위원회를 뜻하기도 합니다. 시민의 자문 기능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라트하우스’, 즉 시청인 셈입니다. 물론 그곳에는 시장과 그의 시정을 돕는 공무원들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 2013년 여름 파리 시청 앞에서 열린 음악 축제 모습

 

 

제가 본 유럽 도시들의 시청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뛰어난 접근성입니다. 유럽의 시청들이 가진 뛰어난 접근성의 비밀은 그 건물들이 우선 큰 길 가에 있고 건물의 전면에 주차장을 두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이 언제나 거리를 걸어가다가 바로 시청에 들어갈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버스가 바로 그 앞을 지나가도록 되어 있어서 시청에 가기가 무척 쉽습니다. 광주시가 진심으로 시청사를, 그리고 궁극적으로 시정(市政) 자체를 시민들에게 개방하고자 한다면, 먼저 버스 노선을 정비하여 시내버스가 청사 바로 앞을 지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청사 바로 앞길을 검은색 대형차를 탄 높은 분들만 지나고 내릴 수 있게 하지 말고, 모든 시민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지나고 내릴 수 있게 하면 좋겠습니다. 공간이 바뀌어야 삶이 바뀌고, 삶이 바뀌어야 생각도 바뀝니다.

 

 

제가 본 유럽의 시청 앞에는 주차장이 없고, 대신 광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일 수 없게 만들어 놓은 무늬만 광장이 아니라 실제 광장입니다. 서울에서 한때 대규모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었던 여의도광장은 이제 광장의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서울 시청 앞 광장도 한때 잔디를 심어놓고 그 사용을 엄격히 제한한 적이 있습니다. 권위주의적인 국회의원들과 시장들은 자신들의 궁전을 가지고 싶어 하고 그 앞의 광장을 정원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현대판 군주인 짧은 임기의 장()들보다 더 오래 그곳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그 궁전을 최대한 자신들의 편의에 맞춰 이용하고 싶어 합니다. 그 결과물이 청사 앞이나 옆의 대규모 주차장입니다. 시장의 정원과 직원들의 주차장으로 둘러싸인 시청은 그리하여 시민들의 발걸음에서 점차 멀어집니다. 시민들은 일부러 동원되지 않는 한 시청 앞에 자연스럽게 모이지 못합니다.

 

유럽 도시의 시청 앞 광장은 실제로 시민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이 연재의 첫 번째 글에서 제가 베를린에는 오랜 분단으로 인해 뭐든지 두 개씩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서베를린이 비록 서독의 수도는 아니었지만 그곳에도 시청은 있었고, 동독의 수도였던 동베를린에도 시청은 있었습니다. 한때 동베를린의 시청이었던 일명 붉은 청사(Rotes Rathaus)’는 분단 전에도 베를린의 시청이었고 통일된 지금도 베를린의 시청입니다. 그런데 그곳은 시위 장소로서 아주 유명합니다. 시청 앞의 광장뿐만 아니라 청사 자체도 시위의 장소가 되곤 합니다. 지난 8월에는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의 활동가들이 청사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청사 전면에 대형 현수막을 걸고 무려 일곱 시간이나 시위를 벌였습니다. 물론 그런 시위가 법적으로 허용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시청과 그 주변 공간이 그 도시의 정치적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 베를린 '붉은 시청' 앞 광장의 흔한 시위 광경

 

 

▲ 베를린 시청사 건물에 매달려 시위하는 사람들

 

분단 시절 서베를린의 시청은 쇠네베르크 구청이었습니다. 대로변에 있는 그 청사는 1963626일에 이루어진 미국 대통령 케네디의 방문 연설과 함께 매우 유명해졌습니다. 시청 앞 도로를 가득 메운 서베를린의 시민들 앞에서 케네디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2천 년 전에 자신을 가장 자랑하는 말이 나는 로마 시민이다였다면, 오늘날 자유의 세계에서 그것은 나는 베를린 사람이다입니다. …… 모든 자유인은, 그가 어디에서 살건 간에, 베를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인으로서 내가 베를린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동독 정부가 설치한 장벽에 둘러싸여 고립된 서베를린 시민들에게 자신의 연대감을 표현한 말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청사의 전면에는 그때의 연설을 기념하는 편액이 붙어 있습니다. 굳이 시청 앞에 인공적인 광장을 만들어 시민들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도로를 필요할 때에 광장처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 서베를린 시청 앞에서 연설하는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시청 앞 도로에 운집한 시민들의 모습

 

저에게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시청은 독일 하노버의 신()시청입니다. 새 것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색하게도 건설된 지 이미 100년이 지난 낡은 건물입니다. 2013년 여름에 하노버를 방문했을 때 저는 이 시청에 들렀습니다. 중앙역에서 출발해 관광 코스를 알려주는 도로 위의 붉은 색 선을 따라 여기저기 둘러보며 천천히 걸어가니까 금세 시청이 나왔습니다. 다른 청사들에 비하면 큰 길에서 조금 안으로 들어가 있었지만, 접근은 매우 용이했습니다. 일요일이었던 그날은 마침 자전거 동호회가 자전거 대회 행사를 치르고 도착점인 청사 앞에서, 그것도 바로 입구 앞에서, 독일의 맥주정원(Biergarten)’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폭이 좁고 기다란 책걸상을 늘어놓고 맥주를 마시며 쉬고 있었습니다.

 

 

▲ 하노버 시청 앞에서 자전거 경주를 마친 후 맥주를 마시며 쉬고 있는 시민들

 

 

청사 안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하노버 도시의 과거 모습, 특히 두 차례의 세계대전 전후의 모습과 오늘날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는 모형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100년 전에 건설된 이 청사의 꼭대기를 매우 특이한 곡선형 승강기를 타면 올라가 볼 수 있습니다. 비좁은 곳이어서 많은 사람이 한 번에 올라가볼 수는 없지만, 그 곳에서 하노버 시내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대개 이런 전망 좋은 곳에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있지만, 이 건물의 돔은 워낙 좁아서 그냥 전망대만 있습니다. 그 대신에 하노버 시청은 건물 뒤편의 호수가 내다보이는 자리에 카페와 레스토랑을 만들어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그 호젓한 분위기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광주 시청의 뒤뜰을 이렇게 시민들이 광주천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꾸미면 어떨까요? 그리고 청사의 맨 꼭대기 전망 좋은 곳을 광주의 사방을 내려다볼 수 있는, 광주시의 옛 모습과 현재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일종의 전망대로 만들면 어떨까요?

 

 

▲ 하노버 시청 꼭대기 전망대에 표시되어 있는 시내 주요 건물과 독일 각 도시까지의 거리 안내

 

▲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는 하노버 시청 뒤편의 호숫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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