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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하다(2) 더 다양할수록 더 완전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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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하다(2) 더 다양할수록 더 완전하다

공진성 2014. 5. 19. 13:42

더 다양할수록 더 완전하다

 

파리의 남쪽 끝에는 대규모의 국제대학기숙사촌(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de Paris)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각국에서 파리로 유학 온 학생과 연구자, 예술가들이 먹고 자는 곳입니다. 130개 이상의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니 그 사실만으로도 놀라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유명한 것이 단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국적이 다양하고 그 수가 많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곳에 있는 40개의 메종이 그 집에 이름을 부여한 40개의 국가에 의해 지어졌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예컨대, 인도관, 캄보디아관, 일본관, 이탈리아관, 스위스관이 있습니다. 때로는 각각의 집에 고유의 이름이 붙어 있기도 합니다. 지하에 카페테리아가 있어서 제가 가끔 들렀던 독일관의 이름은 하인리히 하이네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많은 집들 가운데 한국관은 없습니다. 프랑스가 땅을 제공하고 각국이 건축비를 부담하는 방식으로 이 기숙사촌이 형성되었는데, 건축이 한창 진행될 당시에 한국이 아직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충분히 안정되어 있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130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40개의 메종에는 해당 국가의 사람들만 거주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철저히 개인으로 취급되어 방을 배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관이 아직 없기는 하지만, 예컨대, 한국에서 한국관을 지었다고 해서 그곳에 한국인만 살게 하지도 않고, 한국과 전혀 상관없이 운영되게 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관을 짓지 않고 다른 나라 집에 우리 유학생들을 얹혀살게 하는 편이 경제적으로는 더 이로울지 모르겠습니다. 기껏 돈을 들여 한국관을 지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아서 엉뚱하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더 많이 이용하거나, 한국 사람들이 사용할 방도 모자라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의무적으로 일정 수의 방을 제공해야 해서 정작 한국 사람들이 방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억울할 테니까요. 우리 한국인들 사이에는 이런 이기심과 그로부터 비롯하는 무임승차정신이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독일과 프랑스가 외국인에게도 대학 수업료를 받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제가 들러본 독일관 하인리히 하이네의 집에는 독일어 서적들을 갖춘 작은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들이 곳곳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숙사촌에 사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그 집을 매개로 하여 독일에 접속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독일 학생들은 다른 집들을 매개로 하여 또 다른 나라에 접속하고 있겠지요. 이처럼 씨떼유(Cité U)’라고 불리는 이 기숙사촌에는 130개 이상의 국가들이 40개의 국가별 집을 매개로 하여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무색무취한 개인으로 존재하지도 않고, 자폐적인 국민으로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남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줄 수 있는 문화적 특질을 가진 존재이면서 동시에 남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빌헬름 폰 훔볼트가 제시한 대학교육의 정신, 곧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이 공간적으로 구현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다양성과 상호접촉이 가져다주는 보편적이익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이런 기숙사촌을 만들고 운영할 수 없을 것이고, 130개국에서 온 학생들을 무상으로 교육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대학이, 특히 지방의 사립대학들이, 외국 학생들을 대학의 국제화 지수를 높이고 줄어드는 등록금 수입을 보전하는 수단 정도로만 여기는 것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파리의 국제대학기숙사촌은 저에게 마치 프랑스의, 더 넓게는 유럽의 어떤 정신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제가 보고 싶어 한 것을 그 속에서 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완전함에 대한 다른 생각입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스피노자에게 다음과 같이 곤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신이 완전하다면 왜 사람을 모두 완전하게 만들지 못하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자란 사람을 만들었습니까?” 스피노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신의 완전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재료가 모자라거나 능력이 부족해서 신이 그렇게 창조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런 다양함을 자신 안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 신의 완전함을 표현해주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완전함을 획일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팽배해 있는 듯합니다. 획일적인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고, 학과를 평가하고, 대학을 평가하고, 국가를 평가합니다. 그 기준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는 묻지 않은 채, 어떻게 해서든지 그 기준에 자기를 맞추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완전함이 과연 그런 것인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파리의 국제대학기숙사촌은 어쩌면 완전함에 대한 다른 생각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바로 더 다양할수록 더 완전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기숙사촌의 상징인 여러 언어의 자모를 이용한 독특한 타이포그래피도 그런 생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2013년 여름에 저는 한 달 동안 파리에 머물렀습니다. 이 기숙사촌에 머물고 싶어서 신청서를 보냈지만, 아쉽게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기숙사촌 바로 밑, 그러니까 파리를 벗어나 --프랑스가 시작되는 곳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걸어서 이 기숙사촌에 드나들기 위해서였죠. 이 기숙사촌은 정말로 거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데, 제가 갔을 때가 방학기간이어서 아쉽게도 식당과 수영장 등은 닫혀 있었지만 도서관과 카페테리아는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 뜨겁지 않은 햇살까지 포함하면 정말 저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추어져 있는 셈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인터넷 서핑도 할 수 있었고, 카페테리아에서 맥주도 마실 수 있었으니까요.

 

 

본관 건물의 3층에 있는 도서관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중요한 책들과 잡지들을 소장하고 있었고 별도의 언어실습실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도서관 입구의 게시판에는 언어교환교습을 제안하는 쪽지들이 여럿 붙어 있었습니다. 도서관은 전통과 현대가 결합된 장소였습니다. 나무로 된 의자와 책상, 책꽂이와 창틀, 그리고 책상마다 놓여 있는 노란색 백열전등이 이곳의 전통을 상징한다면, 그 나무 책상에 붙어 있는 갈색의 전기콘센트와 정보검색용 컴퓨터들은 전통에 접목되어 있는 현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기숙사촌의 거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 등록을 해야 했고 약간의 돈을 지불해야 했지만, 어렵지 않게 도서관 출입증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라는 또 하나의 다른존재가 이 기숙사촌에 추가되었습니다. 이 기숙사촌과 그곳의 도서관을 통해 저는 프랑스와 파리를 조금 더 가까이 경험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저를 통해 광주도 다른것을 조금은 더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요.

 

 

 

 

 

 

파리에 머무는 한 달 동안 저는 거의 매일 이 도서관에 나와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과 오고가는 사람들을 내다보기도 했고, 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을 마치 액자 속의 그림을 보듯이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배가 고파지면 1층에 내려가 카페테리아에서 끼쉬를 먹기도 했고, 건물 뒤편의 넓은 뜰이 내다보이는 발코니에 앉아 잔디밭에 엎드려 햇볕을 쬐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구경하며 맥주를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때가 무척 그리워지는군요.

 

 

 

기숙사 이야기가 계획과 달리 많이 길어졌습니다. 아무래도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에 관한 얘기는 다음에 해야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미테랑 도서관 앞에서 만난 엄청난 햄버거 가게 연기를 뿜는 굴뚝(Le Camion Qui Fume)’ 얘기도 해드리겠습니다. 많이 기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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