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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한다(4) 도시의 여름, 물이 있는 도시

공진성 2014. 11. 5. 08:34

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한다(4) 도시의 여름, 물이 있는 도시

 

유럽 선진국의 시민들이 1년에 한 달 여의 휴가를 즐긴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휴가만 긴 것이 아니라 평소의 노동 시간 자체도 짧습니다. 한 달 휴가를 즐기는 대가로서 나머지 열한 달 동안 과로를 해야 한다면 긴 휴가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튼 유럽인들이 긴 휴가를 즐기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심지어 도시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때 비어 있는 도시를 채우는 사람은 관광객과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멀리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시민들입니다.

 

 

베를린 유학 시절의 일입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저는 어느 치과 병원 청소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진료가 끝난 저녁 시간에 병원에 가서 바닥과 선반 위를 치우고 쓰레기를 모아 버리는 일을 했습니다. 이 병원의 의사는 진료도 그리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에 4, 그것도 하루는 오후에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꼭 여름과 겨울이면 한 달 가까이 가족과 함께 해외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신체적정신적 충전이 필요해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휴가를 떠난다고 문 앞에 써 붙여 두고 말이죠. 환자들의 불만이 없냐고요? 환자들도 모두 휴가를 떠나기 때문에 불만이 있을 수 없죠. 오히려 문을 열어두는 것이 낭비가 되는 상황입니다. 그저 문제는 저처럼 어디 떠날 수도 없는 가난한유학생의 수입이 그 기간에 끊기는 것이었습니다.

 

 

 

 

 

 

파리의 시민들도 오랜 휴가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많은 시민들이 혁명기념일인 714일 전후에 요란하게 잔치를 벌인 후에 한 달 여의 오랜 휴가를 떠납니다. 그러면 정말 시내에는 관광객들과, 직업적으로 그들을 상대하는 사람들, 그리고 휴가 갈 여유가 없는 시민들만 남습니다. ‘파리 플라주’(Paris-Plages), 파리 해수욕장은 이런 배경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2002년부터 파리시는 휴가를 떠나지 못한 시민들을 위해 여름 한 철 동안 도심의 센느강변에 일시적으로 인공 해수욕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름은 해수욕장이지만 실제로 해수욕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모래밭에 드러누워 햇볕을 즐기고 놀 수 있을 뿐이지요. 여성의 톱리스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불쌍한시민들을 위해 만들었던 인공 해수욕장은 그 사이에 관광명소가 되었고, 그래서 해마다 새로운 요소들이, 예컨대 아이들을 위한 암벽등반장이나 비치발리볼 경기장 등이 추가되고 있습니다.

 

 

돈이 그리 많이 들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모래와 야자수 나무, 선베드와 해먹, 그리고 몇 가지 놀이시설만으로 충분합니다. ‘파리 플라주는 필요 경비의 70%를 협찬사 후원과 카페, 레스토랑, 매점의 자릿세로 해결한다고 합니다. 물론 경제성보다는 공익성이 더 중요하겠지요. 공익성이 있다면 경제성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해야 하겠고, 아무리 경제성이 크더라도 공익성이 부족하다면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도시가 기업은 아니니까요.

 

파리 플라주에 사람이 워낙 많아서 감히 그 사이에 끼어 햇볕 아래 드러누울 엄두가 나지도 않았지만, 제가 워낙 물을 좋아해서 수영할 수 없는 곳에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가엾은파리 시민들과 다르게 베를린 시민들은 멀리 휴가를 가지 못하더라도 도시 안에서 충분히 물놀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인공적인 실내외 수영장에서가 아니라 자연적인 호수와 강에서 말입니다. 베를린에는 열한 개의 자연적인 실외 수영장이 있습니다. 어떤 곳은 유료이고, 어떤 곳은 무료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완전히(!) 벗을 수 있고, 어떤 곳에서는 심지어 애견과 함께 수영할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일반적인 실내외 수영장들이 있는데, 이 모두를 하나의 기관이 통합적으로 관리합니다. 개별 수영장의 위치와 특징, 입장료와 시설물 현황, 개장 시기와 시간,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수질과 수온 등의 정보를 이 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베를린의 호수수영장 (Plötzensee)

 

베를린 생활 초기에 저는 이 호수 수영장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시내의 어느 호숫가에 자유로운 신체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 정도만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수영하기를 좋아하는 저는 그래서 처음엔 동네의 인공수영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베를린의 사정에 밝아지면서 서남쪽에 해수욕장에 버금가는 규모의 반제(Wannsee)와 그 밖의 여러 아담한 호수 수영장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적인 호숫가에 모래밭을 만들어 꾸민 수영장은 정말 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햇볕이 뜨거운 여름날 책 한 권과 큰 수건, 간식을 싸들고 그곳에 가면 하루가 정말 평온하고 행복했습니다. 잔잔한 호수에서 얼굴만 살짝 수면 위로 올리고 유유히 헤엄쳐 움직이는 사람들, 모래밭에서 뒹굴고 뛰노는 아이들, 큰 수건을 모래 위에 깔고 눕거나 엎드려 피부를 태우는 사람들, 그리고 소시지와 양념에 재운 고기 등을 숯불 위에서 구워 파는 사람들 사이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도 읽고, 더우면 잠시 물속에 들어가 몸도 식히고, 다시 나와 햇볕 아래 몸을 말리며 피부가 따끔거리는 느낌을 즐기다가 스르르 잠에 드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그립습니다.

 

광주에 이런 도심 야외 수영장이 있으면 어떨까요? 겨울철에 시청 앞에 스케이트장도 임시로 만들어 운영하는데, 여름철에 해변이나 수영장을 광주천변에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때마침 새로 시장님이 선출되셨으니, 이를 한번 제안해 봅니다. 실제로 비슷한 구상을 실천에 옮긴 사례가 서울에 있습니다. 바로 서울의 남쪽 양재천변에 지난 2007년에 만들어진 야외 수영장입니다. 양재천은 광주천과 비슷하게 폭이 좁은 하천인데, 그 천변에 서초구가 2000평 규모의 부지를 조성하여 그곳에 유아용 수영장과 성인용 수영장을 만들고 그 수영장과 주변 녹지에서 시민들이 여름철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광주에서도 광주천이 흘러가는 곳의 구와 시가 협력하여 이런 수영장과 휴식공간을 몇 개 만든다면, 그리고 광주시민과 해당구민에게 그곳을 이용할 때 할인 혜택을 부여한다면, 주민들도 좋아하고 광주에 새로운 여름철 관광명소도 생겨나게 되지 않을까요?

 

 

 

 

 

조건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베를린의 바데쉬프’(Badeschiff)가 더 맘에 듭니다. 베를린의 동남쪽 슈프레강 위에 떠 있는 32.5×8.2m 크기의 거대한 수조입니다. 도시예술프로젝트 공모에서 당선된 작품인데, 화물선의 선체를 이용해 수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강변에 고정되어 있는 수조에서 여름에는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겨울에는 심지어 사우나도 즐깁니다. 강변에 조성된 모래밭에서 낮에는 사람들이 일광욕도 하고 밤에는 영화를 감상하기도 하죠. 물론 디제이와 함께 파티를 하기도 하고요. 광주 서쪽의 극락강변이라면 이런 풍경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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