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내가 차가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운전면허조차 없다고 하면 더 놀란다. 요즘 세상에 면허 없고 차도 없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차를 한 대라도 줄이는 것이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이라 생각해서 지금껏 차 없이 살고 있다. 그렇게 작정하고 나니 차 없이도 살 수 있는 방식으로 살게 됐다. 가끔 온라인쇼핑을 하긴 하지만 대형 상점은 거의 가지 않고 웬만한 것은 다 집 앞 가게에서 산다. 집도 직장 근처에 마련해 걸어 다닌다. 시내를 돌아다닐 일이 없지 않지만, 필요할 때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가용 차를 몰고 다니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차도가 늘어났고 인도가 줄어들었다. 걷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이상한 길들이 많아졌다. 차도 위에도, 인도 위에도..
지난 8월 학생들과 함께 독일에 다녀왔다. 지역사회 공동체성 제고를 위한 선진 이민사회 방문조사였다. 함부르크 반츠벡 구의 초청을 받아 그곳을 먼저 방문했다. 독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베를린과 함부르크에는 그만큼 이주민 수도 많다. 베를린 주민의 약 36%가, 함부르크 주민의 약 37%가 이주배경을 가지고 있다. 구청장과의 대화 시간에 한 학생이 물었다. 이주민 통합을 위해서는 선주민의 생각과 태도도 함께 변해야 하는데, 어린이는 학교에서 정규교육을 통해, 한창 일할 나이의 성인은 직장에서 같이 일하면서 통합에 필요한 지식과 태도를 배운다면, 은퇴자처럼 나이 든 사람을 교육하는 정책은 있나? 리첸호프 구청장은 이렇게 답했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어떤 생각이나 태도를 시민에게 주입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권리는 어디에서 비롯할까? 17세기 영국의 두 철학자는 서로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후배 존 로크는 자식을 잘 양육하는 것이 신의 명령이라고 생각했다. 부모에게 순종할 자식의 의무도, 자식을 잘 길러야 할 부모의 의무도 모두 신(자연)의 뜻에서 찾았다. 이 신적 의무에서 권리도 생겨난다. 부모의 양육을 받을 자식의 권리나 자식의 복종을 받을 부모의 권리는 각자에게 부여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할 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로크는 이 권리나 의무가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만 유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권리와 의무를 근거로 이미 성인이 된 백성을 지배할 왕의 권리와 의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선배 토마스 홉스는 백성에 대한 주권자의 권리를 한편으로는 사람..
요즘 나는 출근길에 땅을 쳐다보며 걷는다. 남이 흘린 동전이라도 주우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똥을 밟지 않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출근길에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걷다가 한두 번 똥을 밟은 뒤로는 경각심이 생겨서 바닥만 보고 걷는다. 그런데 점점 상황이 나빠지는 것 같다. 뭔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1999년 처음 베를린에 도착해 두 달간 서남쪽의 부유한 지역 기숙사에 임시로 살 때는 길거리에 그렇게 개똥이 많은지 몰랐다. 두 달 뒤 이주민이 많이 모여 사는, 집세가 저렴한 지역으로 이사하고 나서야 서양 언어에 ‘똥’이라는 뜻의 욕이 왜 있는지를 알게 됐다. 똥을 밟았을 때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당황과 분노의 외침이 바로 “악, 똥!”이었다. 살면서 보니까 모든 지역에 고르게 개똥이 널려 있지..
5월에는 광주에 많은 손님이 찾아온다. 5월 18일 공식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그날을 비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그저 사람이 많이 몰리는 때를 피해 늦게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10일간의 항쟁이 끝난 뒤 죽은 누군가를 추모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지난 5월 27일에도 김의기 선배의 죽음을 추모하는 서강대 후배들이 광주를 찾았다. “피를 부르는 미친 군홧발 소리가 고요히 잠들려는 우리의 안방에까지 스며들어 우리의 가슴팍과 머리를 짓이겨 놓으려고 하는 지금,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무참한 살육으로 수많은 선량한 민주시민들의 뜨거운 피를, 뜨거운 눈동자와 가슴을 오월의 하늘 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봉기가 유신잔당들의 악랄한 언론탄압으로 왜곡되고 거짓..